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53152007
· 쪽수 : 408쪽
· 출판일 : 2025-11-26
책 소개
목차
이 책을 읽는 법
프롤로그. 오라, 신학의 자리로!
Part 1. 신뢰할 만한 하나님
: 그분은 진리를 말씀하신다
1. 침묵의 우주, 말씀하시는 하나님
2. 이제, 지적 나태의 늪에서 나오라
3. 스스로 진리의 기준이 되려는 오만 버리기
4. 성경, 혼미한 지성을 깨우는 빛
5. 모든 것을 아시는 그분께 온전히 맡기다
Part 2.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
: 그분은 만족을 주신다
6. 영혼의 미각을 잃어버리다
7. 창조주를 아버지라 부르는 즐거움
8. 하나님이 아득히 느껴질 때
9.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 숨으시는 분
10. 내 마음을 따를수록 소멸되는 기쁨
Part 3. 승리하신 하나님
: 그분은 통치하신다
11. 과연 어디까지 하나님이 다스리실까?
12. 고난과 악이 판칠 때 그분은 어디 계시는가
13. 불안의 해법, 신의 권좌에서 내려오기
14. 세상에 ‘어쩌다 일어난 일’은 없다
15. 인생 구덩이에서 전능하신 아버지를 부르라
Part 4. 영원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 그분은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16.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는 창조주
17. 모든 영광을 독점하는 이기적인 신일까?
18.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춤에 동참하기
19. 객관적 도덕 속에서 만나는 사랑의 하나님
20. 적삼위일체의 간교한 계략에 맞서라
Part 5. 구원의 하나님
: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신다
21. 복음은 반드시 나쁜 소식으로 시작한다
22. 십자가,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이 만나는 곳
23. 나만의 거룩한 헛수고를 멈추다
24. 죄인의 구원에 은혜는 어느 선까지 개입할까?
25. 그분이 작정하신 구원 계획, 실패란 없다
Part 6. 예술가 하나님
: 그분은 아름다움을 창조하신다
26. 하나님을 밀어내려 선택한 맹신들
27. 인간의 의식 세계, 더없이 신비롭게 설계되다
28. 하늘을 수놓은 별을 지으신 분께 나아가라
29. 삶의 모든 경이로움, 그분께로 이끄는 등댓불
30. 삶으로 예수를 말하는 하나님의 걸작들
에필로그. 나의 온 존재로, 이 하나님을 경외하리
감사의 말
주
책속에서
신학자는 투쟁하는 사람, 곧 투사(鬪士)여야 한다는 내 말은 타인을 해치는 물리적 폭력이나 다른 형태의 폭력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 바울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라"(롬 8:13, ESV),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 3:5),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라고 말한 그 의미다. 훌륭한 신학자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청교도의 표현처럼 실제로 "죄를 죽인다." 자신의 마음을 위협하는 모든 고질적 죄를 성령의 능력으로 힘써 죽인다. 머리와 가슴을 가장 빠르게 갈라놓는 길, 올바른 교리가 무력해지는 가장 확실한 길, 영적 불모지와 허무주의의 황무지로 가는 지름길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죄를 죽이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 청교도 존 오웬이 좀 더 잘 말했다. "신앙생활의 생명과 활력과 위안은 상당 부분 우리의 죄를 죽이는 데 달려 있다. …… 죄를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죄에 막혀 비쳐 들지 못한다. 그분의 자녀로 입양된 것이 특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 죄를 죽이라. 그렇지 않으면 죄가 당신을 죽일 것이다."
결국 신학자란 누구인가? 신학자는 바보요, 광신자이며, 괴짜이고, 투사인 동시에 노예다. 우리가 자아와 자신의 입지를 섬긴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매 순간 필요함을 잊는다면, 고질적 죄를 묵과한다면, 성경책에 먼지가 앉게 둔다면, 하나님을 알고 즐거워하는 게 아니라 그분에 대한 지식에 안주한다면, 교만하게 아는 체한다면, 우리는 신학이라는 신성한 일에서 실패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모두를 '경외'라는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지성(知性)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신의 지성을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과연 경외심이 얼마나 있을까?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깨작거리기만 하는 사람, 자신의 죄를 죽이지 않고 내버려두는 사람, 자신을 창조하신 분의 명예보다 자기 명예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할까? 틀림없이 경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성경에 300번도 넘게 등장하는, 가장 많이 반복되는 명령 가운데 하나를 어기는 것이다. 바로 여호와를 "이르아"하라, 즉 주님 앞에서 두려워하고 경외하고 경탄하라는 명령이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창조주를 탐구하는 일만큼 우리의 교만을 꺾고 깊은 기쁨과 생명을 가져다주는 값진 일도 없다. 지금부터 우리는 진리를 말씀하시고, 우리를 만족시키시고, 통치하시며, 사랑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고, 아름다움을 창조하시는 하나님께 경탄을 표하려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랑하는 친구여, 이 구절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이 문구에 생사가 달려 있으니 그 깊은 뜻을 놓치지 말라. 음울한 가상 실험을 해 보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가장 진지한 순간이나 때로 몽롱한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는 실존적 의문에 어떻게 답하겠는가? 과학은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말할 수 있어도 왜라는 질문에는 하나도 답할 수 없다. 과학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이유를 묻는 화급한 의문은 과학을 다 동원해도 풀리지 않는다. 오락, 술, 오르가슴, 재물, 집요한 자기 분석에 답이 없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왜라는 질문의 답을 정치가에게 위임하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전체주의의 과대망상에 희생된 사람이 수억 명에 달한다. 그들의 망령이 한목소리로 "당신의 영혼을 팔지 말고 저항하라!"라고 외친다. 그래서 우리는 내면으로 향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우주는 침묵하고 이데올로기는 거짓말할지 몰라도 우리 마음은 길을 알지 않을까? 그러나 "답은 내면에 있다"고 조언하는 이들은 당신의 자존심에 아첨하여 뭔가를 팔려는 사람이거나 안으로 충분히 더 들어가지 못해 우리의 깊은 속에 도사리는 온갖 모순과 타락을 보지 못한 사람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민 23:1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시 119:89-90).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말씀하시기에 우리는 이유를 묻는 의문에 답하려다가 우주의 미아가 될 일이 없다. 카뮈가 말한 침묵의 우주에서 자살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필요도 없다. 깊은 신뢰가 가능해진다. 과학자와 정치가와 우리 자신 등 모든 인간보다 무한히 더 신뢰성 있는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