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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어린이 > 사회/역사/철학 > 세계사
· ISBN : 9788953335578
· 쪽수 : 184쪽
· 출판일 : 2024-06-20
책 소개
목차
1장 카이사르의 등장
• 영웅의 탄생……12
- 평범하게 자랐어요
- 로마는 혼란에 빠졌어요
- 해적에게 붙잡혔어요
- 최고 제사장이 되고 싶었어요
- 빚쟁이들이 몰려들었어요
- 집정관이 되고 싶었어요
• 삼두 정치의 시작……24
- 폼페이우스를 찾아갔어요
로마 이야기 배움터 삼두 정치에 힘을 보탠 로마의 세리……26
- 율리우스와 카이사르가 집정관이었어요
-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관계는 단단해졌어요
• 갈리아 정복……32
- 갈리아 총독이 되었어요
- 첫 전투를 치렀어요
- 무찌르고 또 무찌르고
- 셋이 다시 뭉쳤어요
- 삼두 정치가 깨졌어요
- 갈리아가 마침내 항복했어요
로마 이야기 놀이터 틀린 것 고르기……44
2장 주사위는 던져졌다
• 로마 내전……48
- 원로원은 폼페이우스 쪽으로 기울었어요
- 원로원이 최종 권고를 내렸어요
- 루비콘강을 건넜어요
- 폼페이우스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 로마 시민들은 카이사르 편에 섰어요
• 카이사르의 로마 입성……58
- 폼페이우스가 포위 작전을 짰어요
- 폼페이우스가 로마를 떠났어요
- 카이사르가 로마로 들어왔어요
- 서쪽을 치러 떠났어요
- 아드리아해가 중요해졌어요
- 카이사르가 다시 집정관이 되었어요
로마 이야기 배움터 로마의 지배를 받은 속주……70
•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정면 승부……72
- 폼페이우스가 전쟁을 준비했어요
- 디라키움 전투가 벌어졌어요
- 원로원 의원들이 담판을 요구했어요
- 파르살루스에서 맞닥뜨렸어요
로마 이야기 놀이터 다른 그림 찾기……80
3장 카이사르의 눈부신 활약
• 내전의 마무리……84
- 폼페이우스가 이집트로 떠났어요
- 카이사르가 이집트에 도착했어요
로마 이야기 배움터 이집트를 다스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88
- 이집트를 함께 통치하라!
- 나일강에서 벌어진 전쟁
• 카이사르가 제일 잘나가……94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아프리카로 떠났어요
- 카이사르가 개선식을 열었어요
로마 이야기 배움터 콜로세움에서 열린 모의 해전……100
- 카이사르가 관용을 베풀었어요
- 카이사르의 권한이 막강해졌어요
• 카이사르의 개혁……106
- 로마 시민을 늘리고 달력을 고쳤어요
로마 이야기 배움터 자유와 권리를 지켜 준 로마 시민권……108
- 법과 복지 제도가 바뀌었어요
- 종신 독재관이 등장했어요
- 카이사르를 의심했어요
로마 이야기 놀이터 순서대로 번호 쓰고 이야기 만들기……116
4장 카이사르의 죽음
• 암살……120
- 카이사르를 제거하기로 결정했어요
로마 이야기 배움터 카이사르가 파르티아 원정을 계획한 이유는?……122
- 카이사르가 암살당했어요
- 암살 이튿날이 밝았어요
- 유언장의 내용은 놀라웠어요
- 유언장을 보고 실망했어요
• 혼란에 빠진 로마……132
- 원로원이 한자리에 모였어요
- 옥타비아누스는 누구일까요?
- 안토니우스가 야심을 드러냈어요
-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맞붙었어요
- 두 번째 삼두 정치가 시작되었어요
• 로마 공화정의 종말……142
- 로마에 피바람이 불었어요
- 카이사르가 신이 되었어요
로마 이야기 배움터 황제가 된 이름, 카이사르……146
- 필리피 전투가 벌어졌어요
- 로마 공화정이 막을 내렸어요
로마 이야기 놀이터 숨은그림찾기……152
5장 안토니우스 대 옥타비아누스
• 안토니우스의 전성시대……156
-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만났어요
- 옥타비아누스가 때를 기다렸어요
- 브린디시에서 협정을 맺었어요
-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했어요
• 안토니우스의 위기……164
- 파르티아 전쟁에서 패배했어요
- 이집트에서 개선식을 열었어요
- 옥타비아누스가 인기를 끌었어요
- 안토니우스의 유언장이 공개되었어요
- 서로를 비난했어요
• 결전의 시기……174
- 각자 전쟁을 준비했어요
- 악티움 해전이 시작되었어요
- 전쟁이 끝나 갔어요
-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했어요
로마 이야기 놀이터 알맞은 것끼리 연결하기……182
로마 이야기 놀이터 정답……184
〈부록〉 로마 제국 연표
책속에서
집정관이 되고 싶었어요
카이사르는 39세에 에스파냐의 총독이 되어 2개 군단을 지휘했어요. 그리고 로마의 지배를 거부하던 이베리아반도의 부족들을 굴복시켰지요. 1년의 임기를 마치고 로마로 다시 돌아올 때 카이사르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어요. 바로 개선식 거행과 집정관 출마였어요. 개선식을 치러 로마
시민들에게 인기를 끈 뒤 집정관에 출마할 생각이었지요.
원로원은 민중파인 카이사르가 집정관에 출마하는 게 영 못마땅했어요. 카이사르에게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요구했지요. 카이사르는 개선식을 포기했어요. 그러자 원로원은 강력한 인물 두 명을 집정관 후보로 내세웠어요. 카이사르가 믿을 구석은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시민들은 카이사르의 집정관 출마 소식을 듣고 시큰둥했어요.
"카이사르? 개선식도 안 치렀잖아. 그런 인물이 어떻게 집정관을 하겠어."
셋이 다시 뭉쳤어요
기원전 56년 봄에 삼두 정치 인사들은 이탈리아의 루카에 모여 회담을 열었어요. 그 자리에서 각자 맡을 속주를 결정했어요. 원로원의 뜻은 완전히 무시되었지요. 폼페이우스는 오늘날의 에스파냐에 해당하는 지역을 맡기로 했고 크라수스는 오늘날의 시리아 지역을 차지했어요. 두 사람의 임기는 각각 5년으로 결정했지요. 카이사르의 임기도 거기에 맞춰서 6년 더 연장되었어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가 거느릴 수 있는 병력도 각각 10개 군단으로 결정되었어요. 세 사람이 임기가 끝날 때까지 10개 군단을 마음대로 지휘한다는 것은 로마를 휘두르겠다는 뜻이었어요. 셋은 군사 동맹까지 맺은 셈이었지요. 원로원은 어쩔 수 없이 삼두 정치의 영향 아래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