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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448970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23-05-31
책 소개
목차
봄순, 1998년으로 돌아오다
2015년, 평양행 기차 앞
결혼의 굴레
봄순의 주유소
항생제와 초상화 금고
남편의 함정
저승의 감옥살이
피눈물의 재도전
화폐개혁 전쟁
봄날의 기차는 출발한다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봄순의 삶이 따스했던 적은 없었다. 항상 추웠다. 부모와 두 자식을 다 잃었고, 남편에게는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당에 충성하며 화학공장 설계실을 매일 다녔지만 결국 아이의 약 하나 못 구하는 형편이었다. 지금도 자신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핏물이 눈앞을 가렸지만 아스팔트 바닥의 차가움이 더 살벌하게 느껴졌다.
봄순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분명 그랬다.
주유소 수익이 고조에 오를 무렵, 봄순은 덜컥 임신을 했다. 아, 드디어! 봄순은 기뻐서 눈물이 날 뻔했다.
지난 삶을 떠올려보니 그때도 딱 이때쯤 임신이 되었었다. 그때 철욱은 처음으로 봄순에게 조그만 선물을 주었고, 시어머니도 먹을 것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이는 두 달 뒤에 유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 후 칠 년 동안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이 아이는 절대 유산되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럼 칠 년 뒤에 미애가 태어나더라도 언니나 오빠가 굳건히 미애를 지키겠지.’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봄순은 이제야 자신의 삶에 봄이 오는가 싶었다.
온돌 아랫목에 비닐 박막을 깔고 그 위에 나무틀로 만든 건조설비가 놓였다. 봄순은 세척한 덩어리를 나무틀 위에 쏟아부었다.
덩어리를 툭툭 쳐서 골고루 펴고는 한 시간가량 나무주걱으로 쉬지 않고 저었다. 그러자 보드라운 하얀 분말이 만들어졌다. 다시 빽빽한 여과망으로 분말을 걸렀다. 카나마이신 원료 분말이 수북이 쌓였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분말 같았다. 성공이었다.
“아버지, 성공이에요!”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의 얼굴이 붉어졌다. 젊은 날의 활기가 눈동자에 실려 있었다. 오랜만의 기쁨으로 손수건을 꺼내 든 영민이 어느새 눈가를 훔쳤다.
“너는 할 수 있어. 뭐든지 말이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감동에 젖어 있었다. 옛날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