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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449915
· 쪽수 : 244쪽
책 소개
목차
소설 테레사의 오리무중
올드 레이디 버드
장례 세일
에세이 테레사와 나의 오리무중
해설 자아를 분리한 노동자와, 그들의 연대 가능성 - 선우은실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자아를 향한 울분이 점점 악성종양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이것이 실은 기존의 자아를 향한 살해 의지를 가진 새로운 자아의 태동이라는 건 알지 못한 채 테레사는 매일 조금씩 더 분개했다. 나는 매일 과민성대장증후군에 시달리며 맘 편히 모닝 똥 한번 못 싸고 출근해서 언젠가는 그 놀라운 자아를 실현하고야 말 자매님을 위해 성실히 근로하는데, 자매님은 하루 종일 집에서 잠이나 자고 빈둥거리는 게 전부라니. 나가서 고된 노동을 하거나 사람들 틈에서 시달리며 고달프게 돈을 벌어오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고 싶다던 자아실현, 그 위대하고 고상하신 자아를 실현하라고 판을 깔아줬는데 왜 집구석에 틀어박혀 그거 하나를 제대로 못 하는가 말이다. (「테레사의 오리무중」)
주경은 알고 있었다. 그냥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주경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었으니까. 집안의 빚을 갚는 동안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대출업체의 전화를 받았다. 나중에는 그 전화가 싫지 않았고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빚 독촉 전화가 아니라면 내게 전화를 걸 사람도, 내 안부를 걱정하고 내가 매일 살아 있는지 궁금해할 사람도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 후 주경은 대출업체의 추심 팀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자아를 두고 다니는 법을 익혔다. 내 입에 풀칠하겠다고 입으로 지은 많은 죄들, 내 자아는 소중하다고 집에 곱게 모셔두고 타인의 자아를 손상시키기 위해 애써온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주경은 다만 한 가지 기도를 했다. 늦게 갚아도 좋고 날짜를 지키지 못해도 좋아요. 대신 전화만 받아요. 잠적하지 말아요. 사라지지 말아요. 언제든 연락이 닿기만 해줘요. 살아만 있어요. (「테레사의 오리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