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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외국시
· ISBN : 9788954626484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4-11-27
책 소개
목차
우리의 선조들
남쪽 바다 · 10
선조들 · 16
숫염소 신 · 19
풍경 I · 22
고향 떠난 사람들 · 24
풍경 II · 26
과부의 아들 · 28
8월의 달빛 · 30
예전에 살았던 사람들 · 32
풍경 III · 34
밤 · 36
그 이후
만남 · 40
고독을 찾아 · 42
계시 · 44
여름 · 45
아침 · 46
야상곡 · 48
풍경 VII · 49
번민 · 50
정열의 여인들 · 52
메마른 땅 · 54
인내 · 56
시골 창녀 · 58
데올라의 생각 · 60
담배 두 개비 · 62
그 이후 · 64
시골 속 도시
세월은 흐르고 · 68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 70
건축 공사장에서 · 73
시골 속 도시 · 76
유전(遺傳) · 78
모험 · 80
고대 문명 · 82
율리시즈 · 84
규범 · 86
풍경 V · 88
방종 · 90
작가의 초상 · 92
9월의 그라파 · 94
발레 · 96
아버지 I · 98
애틀랜틱 오일 · 100
모래 채취꾼들의 황혼 · 102
마차꾼 · 104
피곤한 노동 · 106
어머니
계절 · 110
밤의 쾌락 · 112
쓸쓸한 저녁식사 · 114
풍경 IV · 116
기억 · 118
목소리 · 120
어머니 · 122
뱃사공의 아내 · 124
술 취한 노파 · 126
풍경 VIII · 128
타지 않는 나무
바깥세상 · 130
한 세대 · 132
폭동 · 134
타지 않는 나무 · 136
포조 레알레 · 138
정치가의 말 · 140
종이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 142
아버지
지중해 · 146
풍경 VI · 148
신화 · 150
소박함 · 152
본능 · 154
아버지 II · 156
새벽별 · 158
지붕 위의 천국 · 160
부록
시인이라는 직업 · 165
아직 쓰지 않은 시들에 대하여 · 182
체사레 파베세 연보
옮긴이의 말-삶을 향한 열정, 죽음과 만나다 · 195
리뷰
책속에서
피곤한 노동
집에서 달아나기 위해 길거리를 가로지르는 것은
소년이나 하는 일, 하지만 하루종일 거리를 배회하는
이 사내는 더이상 소년도 아니고,
집에서 달아난 것도 아니다.
여름날의 오후
광장마저 텅 비어 있고, 저물어가는 태양 아래
길게 늘어져 있는데, 이 사내는 쓸모없는
가로수 길에 이르러 걸음을 멈춘다.
더욱 외로워지기 위해, 홀로 있을 필요가 있을까?
사방을 둘러보아도 광장과 거리는
텅 비어 있다. 지나가는 여자라도 있으면,
말을 걸어 함께 살자고 해볼 텐데.
아니면, 혼자 중얼거려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밤에 술 취한 사람이 말을 걸고
자기 인생 계획을 늘어놓기도 한다.
물론 황량한 광장에서 누군가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은
이따금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둘이라면
함께 길을 걸을 수도 있고, 여자가 머무는 곳이
곧바로 집이 될 수도 있으니, 해볼 만하다.
밤이 되면 광장은 다시 황량해지고
배회하는 이 사내는, 쓸모없는 불빛 사이에서
집들을 바라보지도 않고, 눈을 들지도 않는다.
자신의 손처럼 거친 손으로 다른 사람들이
만든 돌 포장길을 홀로 느낄 뿐이다.
텅 빈 광장에 남아 있는 건 옳지 않다.
애원하면 집으로 이끌어줄
그 거리의 여자가 분명 어딘가 있으리라.
9월의 그라파
아침은 강기슭을 따라서 쓸쓸하게 흘러간다,
청명하게. 어둑어둑한 초록빛을 거느리며
새벽안개 걷히고 해가 뜨길 기다린다.
저 들판 끄트머리 길갓집 사람들이 파는 담배는
물기에 젖어 있고, 검은빛 머금은
진한 냄새가 난다. 푸르스름한 연기를 낸다.
그곳엔 물처럼 투명한 그라파도 판다.
모든 것이 멈추고 익어가는 순간이 왔다.
멀리서 나무들은 말없이 차분함을
더하고, 한번 흔들면 후드득 떨어질지도 모를
열매들을 감춘다. 흐트러진 구름들도
열매처럼 잘 익어 둥글어진다. 멀리서 거리의
집들도 햇살의 따스함에 익어간다.
이 시간 그곳엔 여자들뿐. 여자들은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고, 양지바른 곳에 서서
과일처럼 따스한 햇볕만을 쪼인다.
차가운 대기의 안개를 조금씩 홀짝이면
그라파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맛을 낸다.
강물도 출렁대며 기슭을 들이켜
하늘 밑으로 강이 잠기게 한다, 여자들처럼
거리도 가만히, 서서히 익어간다.
이 시간이 되면 누구라도 걸음을 멈추고
거리의 모든 것이 어떻게 익어가나 지켜보리라.
산들바람은 구름을 움직이게 하진 못해도,
흩어지지 않게 푸르스름한 연기를
피우게 할 만큼 세다. 그건 스쳐가는 새로운 맛.
담배는 그라파에 젖어 있다. 이렇게
아침을 즐기는 것은 여자들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