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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중국사 > 중국근현대사(아편전쟁 이후)
· ISBN : 9788954634632
· 쪽수 : 624쪽
· 출판일 : 2015-01-27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부국강병: 중국은 어떻게 돈과 힘을 움켜쥐었는가
1장. 행기유치: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힘이다 -위원
2장. 자강: 수치심을 느껴야 강해진다 -풍계분
3장. 체용: 지키되 구하라 -서태후
4장. 신민: 근본적 변화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량치차오
5장. 일반산사: 흩어진 모래는 파도에 쓸려갈 뿐이다 -쑨원
6장. 신청년: 죽지 않는 것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 중요하다 -천두슈
7장. 통일: 응집된 힘, 하나된 마음을 이길 것은 없다 -장제스
8장. 혁명: 밀려오는 파도를 두려워하지 마라 -마오쩌둥(1)
9장. 불파불립: 파괴 없이는 건설도 없다 -마오쩌둥(2)
10장. 흑묘백묘: 혁명보다는 생산, 이념보다는 실리 -덩샤오핑(1)
11장. 동란: 후퇴하는 자는 반드시 패한다 -덩샤오핑(2)
12장. 입세: 강해지고 부유해진 후에야 행동할 수 있다 -주룽지
13장. 몰유적인: 원한으로 사상을 오염시키지 마라 -류샤오보
나오는 글. 부흥: 돈과 힘, 그 이후는?
리뷰
책속에서
1842년 8월 11일에 징하이 사에서 저 유명한 난징조약의 협상을 위해 영국 대표단과 청국 대표단이 마주앉았다. 영국군이 하루라도 빨리 떠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던 중국인들은 굴욕적 조건마저 넙죽 받아들였다. (중략)
위원은 서구 세력이 가하는 위협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한 중국이 충격적인 역사적 결말을 맞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견했고 ‘부강’을 강조한 법가 사상에 더욱 몰두하여 이를 개혁의 기초로 삼게 됐다. - <1장. 행기유지: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이 힘이다>중에서
1895년 중국이 전쟁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한 것을 계기로 옌푸는 그때까지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즉 전쟁에서의 패배가 옌푸의 사고 창고의 빗장을 풀어주었다. 옌푸는 이렇게 주장했다. “서양과 중국 간에는 절대 좁혀지지 않을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중국인은 과거를 중시하고 현재를 무시하는 반면, 서양인들은 옛것(과거)을 극복하고자 새것(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옌푸와 량치차오 두 사람 다 새로워지는 방법, 즉 조국의 근대화 방법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옌푸는 중국이 다시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지성, 덕성, 힘’을 갖추도록 중국인들을 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4장. 신민: 근본적 변화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중에서
5·4운동 이후 정부의 탄압과 억압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고 결국 천두슈의 바람 하나는 이루어지게 됐다. 6월 11일에 마침내 천두슈가 당국에 체포되고 말았던 것이다. 신세계유예장 내 한 극장의 난간에서 ‘베이징 시민 선언’이라는 제목의 전단을 뿌린 혐의였다. 이는 5·4운동을 진압한 군벌정부를 향해 몇 가지 요구사항을 적은 전단이었다. (중략)
천두슈는 83일간의 감금생활 끝에 감옥에서 나왔다. 투옥생활은 천두슈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천두슈는 투옥되기 사흘 전에 이런 글을 썼다. “세계 문명의 원천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연구실이고 나머지 하나는 감옥이다. 중국 청년들은 굳은 의지를 지녀야 한다. 한번 연구실에 있었으면 그다음에는 감옥으로 가고 감옥에서 나오면 다시 연구실로 가라. 이것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는 삶이다. 이 두 가지 원천에서 비롯된 문명만이 생명력과 가치를 지닌 진정한 문명이다.” - <6장. 신청년: 죽지 않는 것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 중요하다>중에서
그리고 1870년대에 자강파가 주창했다가 실패한 국외 유학정책도 긍정적으로 재고할 준비가 돼 있었다. 외국에 대한 중국인의 극단적 혐오와 반감은 오만과 불안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결코 중국과 중국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덩샤오핑은 ‘젊은이들이여, 서구 유럽으로 가라’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덩샤오핑은 유럽으로 가는 경제사절단에 이렇게 말했다. “폭넓게 경험하고, 꼼꼼히 조사하고, 열심히 연구하라. 경제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라. 우리는 자본주의국가의 성공적인 경험을 배워 그것을 중국에 적용해야 한다.” 이 외국 방문단에 속했던 사람들은 귀국 후 귀중한 인적 원이 됐다. 이 가운데 한 사람이 시진핑이라는 젊은이였다. 1980년에 군사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 국방부를 방문했고 1985년에는 농업사절단으로 아이오와 주를 방문했던 시진핑은 현재 중국 국가주석이자 중국 공산당 총서기다. - <10장. 흑묘백묘: 혁명보다는 생산, 이념보다는 실리>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