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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54637473
· 쪽수 : 140쪽
· 출판일 : 2015-12-1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아무도 몰라보는 봄
에둘러오는
돌배나무 아래
새잎이라는 짐승
한 번도 본 적 없는
달
플라타너스 옛 그늘
아직 지나가지 않은 기차
백 마리의 닭
에게 해의 비유
양이나 말처럼
조방앞
그 짐승들에 관해서는
그때 아주 잠시
입춘
얼음 여자
데드맨
환승 주차장에서
보리
2부 그렇지 않니 꽃들아 검둥이들아
움직이는 중심
내력
자귀나무
나 잠시 눈감았다가
먼지 때문에
사파리 카리바
죽지 않았다
차오르는 붕어빵
저 나비같이
편통
한달에한번묵자 계(契)
미냥
어쩌다 아주 가끔
기침 한 번만으로
추문(醜聞)
헝그리 복서
오체투지
내 소매 가득한
3부 부지하세월이다
흰 밭
연을 끊다
이 많은 모래알들
달에 관한 진술
짙푸른 손바닥
관
모로 누운 사슴
안개의 사생활
혈가(穴哥)
이동
아침에
달과 함께라면
내 입속에 담긴
특별한 순간
봄밤
4부 누워서 듣는 소리
목을 매다
의자
유언
그녀에게 대처하는 방식
누워서 듣다
벌거숭이 새
발정기
곱슬머리
개화
마당 가득히
봄
누구나 아는 말
팬지
어제
해설|우울 발랄 그로테스크
|이문재(시인)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는 쉽게 벗겨지는 양말을 가졌다 쉽게 벗겨지려 하는, 양말의 재단사인 나는
양말을 위해 두 발을 축소시키거나 길게 늘여보기도 하는데
나는 양말에 내 발을 꼭 맞춘다 나는 양말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다 원래 나의 생업은 양말이었지만
양말은 너무 쉽게 벗겨지므로 양말은 이제 스스로 양말이 되려고 한다
이쯤 되면 양말은 그냥 양말이 아니라 양, 말이라는 전혀 새로운 동물로 변이된 것이어서 언젠가
해가 반쯤 저물던 저녁, 양말이 한 마리 야생 숫양처럼 두 발을 까짓것 들어올렸다가
온 뿔을 밀어 다른 양말을 향해 돌진하는 걸 보았다 그러니까 양말의 재료는 캐시밀론이 아니라 숫제,
양이나 말처럼 단백질로 이루어진 한 마리 초식동물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과연 나는 이제 그 숫, 양말을 어떻게 신을 것인가
양말은 뜨거운 피를 가졌고 딱딱한 뿔을 가졌고 이내 발가락 끝에서도 뿔이 자랄 것이므로
뿔은 양말을 뚫고 자라서 걸음을 뗄 때마다 누군가가 돋아난 뿔에 찔리거나
개중에는 스스로 부딪혀와서 피 흘릴 것이므로
지금은 한밤,
지금은 양말,
늙은 사냥꾼의 체중을 견디고 있는,
이제 막 예민한 사유를 시작한 한 마리의 동물인 양
―「양이나 말처럼」전문
이것은 그릇에 담긴 자두
쫙 펼쳐놓고 먹기 좋은 자두
이제 누구의 것도 아니라 내 것인 자두
그런데 방금까지 왕왕거리던 초파리들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나 참 미묘한,
커다란 그릇에 좀전까지 담겼었는데
이렇게 감쪽같이 줄거나 느는 식구들은 또 어떤가
가령 이웃의 조무래기들이 왁자하게 집안을 뛰어다니다가
한꺼번에 놀이터로 몰려나간 뒤 남은 텅 빈 거실
이런 걸 어쩔 줄 몰라 하는
이게 진짜 문제다
그게 초파리였든 아이들이었든
내 눈에는 방금까지 여기에 있었다는 거
확실히 담겨져 있었다는 사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이 빈 그릇 속에 버려진 것일까
저곳에서 이곳까지
잘 움직이는 중심이 너무 많다
―「움직이는 중심」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