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657594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19-08-30
책 소개
목차
장갑
다기조
흰개들
고요를 닮은 아이
아내의 손
51번 접수자
손 없는 자들에게는 죄가 없다
감염되다
어둠의 끝
사라진 아이들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
두고 간 성명판
따뜻한 손, 단단한 등
검은 구름 주간
복구되는 땅
어떤 사람들은 이 삶을
되찾은 손
모래마을을 떠나다
새로운 이름
우리들에게 일어난 일
피프린의 도시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새로운 병이 나타났다는 것은 새 시대가 출현했다는 것과 동일한 뜻이오.”
그게 그날 강연에서 청장의 마지막 말이었다. 당장에는 전염병으로 인한 혼란 때문에 온갖 해석이 쏟아져나오겠지만, 다기조가 뜻하는 것은 단지 세대가 달라졌다는 것, 새로운 물결이 시작되었다는 것일 뿐이라고 청장은 말했다. 그러므로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이 이 도시의 시민들에게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그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곧 내 주변의 사람들을 잊게 되리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바탕화면에 폴더를 하나 만들고, 내가 아는 사람들의 사진을 넣어두었다. 파일명에는 그들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어떤 사람의 얼굴은 이미 알아볼 수 없었다.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는데도 그가 누군지, 어디서 만나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지금은 연락하는 사이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떤 여자가 유독 사진에 자주 등장했다. 갈색으로 염색한 파마머리를 늘어뜨리고 내 어깨에 기댄 채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여자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웃고 있었고, 사진만으로도 나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그 여자와 나는 연인 관계였으리라. 아니면 함께 살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결혼을 한 적이 있었을까 궁금했다.
그다음 사진은 어떤 여자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얼핏 치타를 연상케 하는 또렷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내 어깨에 기대고 있는 여자와 그 여자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그 두 사람이 어쩌면 어머니와 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내가 그들의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폐기물을 태운 연기가 모래마을의 하늘을 온통 검게 뒤덮었다.
“왜 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는 걸까요?”
“아까 말했듯이 돈이 되지 않는 거예요. 당신은 여기에 거대한 음모나 엄청난 계획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봐요. 그게 어쩌면 이 세계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일지도 모르겠어요. 이 지경으로 엉망이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의미 같은 게, 해석되어야 할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게 내가 보기엔 당신의 기대인 것 같아요.”
나는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저 이렇게 하는 게, 하나의 마을을 완전히 매몰시키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니까 이렇게 하는 겁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그저 그에 저항할 힘이 없는 가장 가난하고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