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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127180
· 쪽수 : 116쪽
· 출판일 : 2023-07-12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든, 태기는 동의서의 2조 5항에 적힌 문구를 반복해서 읊는 식으로 대응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로봇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로봇식의 대꾸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감정적 호소가 통하지 않는다면 고객의 목소리는 차차 누그러들기 마련이었다.
딘은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오른쪽 엄지손가락 끝부분을 꾹 누르더니 눈을 감았다. 창수는 차창 밖을 멀거니 바라봤다. 육상과 창공, 지하도로로 쉴 새 없이 차들이 오가는 중이었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차들의 형태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도로들 틈새로 난 위험한 통로 위로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차를 살 형편이 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제대로 씻지 못해 눈에는. 눈곱이 끼어 있고 영양부족으로 피부에는 버짐이 피어 있었다.
‘저 중에 누군가가 내 차에 낙서했을 거야.’
창수는 갑자기 화가 났다. 무력하게 걷고 있는 그들 중 한 사람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어졌다.
그녀가 수영복 위에 방수 재킷을 걸치고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굳은 목과 어깨를 푸는 장면, 풀장 안에서 장난을 치는 어린이들을 부드럽게 타이르는 모습 같은 것들이 연이어 떠올랐다. 준영은 몇 개월 동안 그녀를 보면서 느꼈던 안도감, 반가움, 설렘, 편안함 같은 다채로운 감정들의 무늬가, 사탕 세트를 고르는 저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를 떠올릴 때 느끼는 감정들의 무늬와 다르지 않다고 확신했다.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