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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54670272
· 쪽수 : 116쪽
· 출판일 : 2020-03-23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거미와 나
간이역 / 거미와 나 / 풍금 / 침대 / 구름 속의 산책 / 몽환의 마을 / 은행나무숲으로 가는 기린 / 음악회 / 중독 / 밤에 쓰는 편지 / 가을 / 밤이면 / 손님 / 열대의 밤 / 비
2부 나선의 마을
구름 / 녹색 뱀 / 기린 / 알데바란 / 낮잠 / 아다지오 / 알레그레토 / 낮은 담 / 겨울 / 기억의 고집 / 황사 / 나선의 마을 / 연못 / 붉은 기린 / 기린
3부 기괴한 서커스
염소 / 이상한 마을 / 똑같은 여인숙이 있는 마을 / 선인장 / 노랫소리 / 기괴한 서커스 1 / 기괴한 서커스 2 / 기괴한 서커스 3 / 기괴한 서커스 4 / 겨울 / 유령의 세계 / 벌목 / 보름 / 거미와 나 / 아득한 거리
4부 내가 그린 그림들
백합 / 외발자전거 / 눈 / 내가 그린 그림들 / 그녀가 그린 그림들 / 그림 벽지로 도배된 방 / 아코디언 / 피아니스트 / 안개 / 초록 도마뱀의 방 / 개미와 나 / 저수지 / 물푸레나무숲 / 발자국에 관한 단상 / 대저를 지나며
해설|뿔을 단 거인과 이미지의 시학
|김경복(문학평론가)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녀가 거꾸로 매달린 남자와 여자를 그리는 동안 나는 음악을 들었어요. 그녀가 피뢰침 가득한 들판을 그리는 동안 천둥이 쳤고 벼락이 떨어졌어요. 날은 흐리고 습했지만 갑자기 천둥이 칠 줄은 몰랐지요.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음악만 듣고 있었어요.
그녀가 그린 눈 내리는 거리는 내가 그린 그림 속에 있어요. 그녀는 내 그림 속에 있지요. 그녀는 내 그림 속에서 그녀의 그림을 그려요. 그녀가 그린 그림엔 피뢰침이 있고 피뢰침 꼭대기엔 팔 없는 여자가 다리 없는 남자와 함께 거꾸로 걸려 있어요.
건물 꼭대기마다 피뢰침이 길게 솟아 있는 내 그림에는 작은 인형을 든 유령들이 걸어다니고 있어요. 그들은 내가 그린 그림 속 파란 의자에 앉아 눈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린 남자와 여자를 그리는 내 그림 속 그녀를 우두커니 바라보기도 하지요.
─「그녀가 그린 그림들」 전문
밀밭에서 놀던 기린이 우리집으로 온다 마늘밭 지나고 도랑 건너 돌무더기와 대밭 사이 좁은 길 따라 우리집으로 온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긴 목 위에 있는 기린의 얼굴을 본다 참 슬픈 얼굴이다 보리밭에서 놀던 기린이 돌담 사이 좁은 길 따라 우리집으로 온다 대문 앞 텃밭에 외할머니가 심어놓은 고구마를 넝쿨째 뽑아 먹으며 기린이 온다 밭에서 잡초 뽑던 이모가 고개를 들어 슬픈 얼굴의 기린을 올려다본다 나는 대문을 연다 열린 문틈으로 당근과 가지가 자라는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비닐하우스 위로 새털구름 흘러간다 정오가 되면 배고픈 기린들이 우리집으로 몰려온다 굴뚝에서 모락모락 올라와 구름을 향해 새처럼 가볍게 날아가는 연기를 꿀꺽꿀꺽 삼킨다
─「기린」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