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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4345046
· 쪽수 : 104쪽
· 출판일 : 2025-10-20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시, 담배, 술
북향
두 세계 사이에서
박쥐들
피뢰침
마루에 놓인 침대
호모 사피엔스
담배
담배는 몸에 해롭다
불빛 환한 집
화요일
초현실 대통령
행운목과 기타
한밤의 전화
가덕, 2021
2부
목련
동백
녹색 망토
식물성
광합성
광물성
내 마음의 돌
둥근 돌과 파도
검은 돌
다시, 검은 돌
빗방울 노래
도마뱀의 길
나비
초현실 정원
늦여름
3부
새들은 하늘길 따라
흰 사슴 노래
칠산
거미들
네 개의 귀를 위한 즉흥곡
트럼펫
Jazz
초현실 치과
밀실
가자미
춤추는 원숭이
비단뱀의 여행
녹색 잠옷 유령들
빙점 아래서
눈사람
4부
사천반점
양평
길고 이상한 밤
유령들
비밀결사
어둡고 끝없는 꿈
산책
겨울
Jazz
삼천당三川堂
아주 커다란 그림책
오아시스
해설 장은영(문학평론가)_ 돌과 나
저자소개
책속에서
마감은 코앞인데 써 놓은 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싹 갈아엎고 새로 써야 하나. 예전엔 마감날 곧잘 썼는데 이제는 잘 안된다. 그래, 잠깐 쉬고 하자. 오래전 죽은 흑인 연주자의 몽롱한 기타에 취하는 시간. 예전엔 레코드점에서 엘피판 구해 음악 들었지. 레코드에 바늘 올릴 때까지 내내 설레었는데. 이제는 손가락 까딱하면 음악 흐르는 세상. 그래, 참 좋은 세상이다. 설렘도 떨림도 없는 참 좋은 세상.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난다. 좀 전에 피웠는데 또 생각난다. 투명한 잔에 맥주를 붓고 얼음 동동 띄워 티스푼으로 휘휘 젓는다. 담배에 불붙이고 흰 연기 뿜어대며 한 모금 마셔본다. 시원하고 좋다. 이 좋은 걸 대체 왜들 끊는지 모르겠다. 이 심심한 세상에 술 담배 빼면 대체 무슨 낙이 있다고. 마감은 코앞인데 술 담배 기운에 나는 약간 몽롱해져서, 써 놓은 시를 그냥 보내기로 한다.
― 「시, 담배, 술」
북향 4층 건물, 다소 묘한 그 건물 1층에서 나는 일 년을 일했다. 삼십 년 전이다. 사무실엔 직원이 꽤 많았다. 같은 사무실을 썼지만 우리는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우리 사무실과 똑같은 구조의 사무실들이 우리 사무실에서부터 서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사무실엔 볕이 들지 않았다. 감옥은 아니지만, 감옥 같았다. 가끔 옆 사무실 직원이 우리 사무실을 찾아와 싸움을 벌이곤 했다. 의자가 박살 나고 유리창이 깨졌고 누군가 쓰러졌다. 우리는 그런 싸움을 볕이 들지 않는 탓으로 돌렸다.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 옆 공터에 모여 우리는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했다. 잠깐 볕을 쬐다 우리는 각자의 사무실로 흩어졌다. 어제는 사무실을 같이 쓰던 옛 동료의 근황을 들었다. 북향 4층 건물 1층 동쪽 끝에 있던 사무실과 사무실 옆 공터에 줄지어 서 있던 벚나무들이 떠오른다. 옛 동료의 얼굴도 하나둘 떠오른다. 옆자리에서 늘 꾸벅꾸벅 졸던 한 사내의 인상도 떠오른다. 그는 키가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에 늘 웃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가 하는 부업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복날이 다가오면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낙동강 일대를 돌며 웃는 얼굴로 개를 잡아갔다. 북향 4층 건물, 다소 묘한 구조의 그 건물을 향해 가는 통근버스는 개 시장 옆을 지나쳐 달려갔다. 껍질 벗겨진 개들이 가득하고 행인들로 붐비고 악취가 진동하던 그곳을 기억하는 이는 이제 별로 없으리라. 개 시장은 없어졌고 세월은 제법 흘렀으니까. 북향의 4층 건물, 다소 묘한 구조를 한 그 건물 2층에서 나는 다시 1년을 일했다.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 「북향」
기차가 서행하자 유리창 밖 풀밭을 기어가는 초록 뱀 한 마리 보이는, 조금 나른한 오후. 짧은 꿈을 꾸었다. 할머니 등에 업혀 본 웅덩이엔 초록 뱀들이 있었다. 이상하기도 하지. 저 뱀들은 그대로인데 나는 왜 이렇게 커버린 걸까? 생각에 잠긴 사이 기차는 두 세계 사이에 멈춰 있다. 창밖에서 풀밭을 기어가는 초록 뱀들, 나타났다 사라지고 나타났다 사라진다. 완행열차 타고 가며 안팎 없는 꿈을 꾸었다. 초록 뱀들이 자꾸만 나타나 풀밭에서 노는 이상한 꿈이었다.
― 「두 세계 사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