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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698894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3-03-27
책 소개
목차
1미터는 없어 009
수상 소감 187
수상작가 인터뷰 | 이희주(소설가) 193
심사평 205
작가의 말 217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녀가 유령을 언급하는 대목은 내가 일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그 부분을 읽기 전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천재나 운명이라는 말을 이해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나는 천재가 무엇인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천재란 다름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이다.
“흔히 우리은하와 가장 가까운 은하를 안드로메다은하라고 하죠. 사실 그건 엄밀히 말해 틀린 이야기예요.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 사이에 왜소 은하들이 있거든요, 마젤란은하 같은. 작아도 은하는 은하죠.”
작아도 은하는 은하다. 어떤 말보다 그녀의 가치관을 잘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은 유령이다. 왜냐하면 제대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큰 것도 유령이다. 왜냐하면 제대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은 것과 큰 것은 같다.
그녀의 일기를 읽으면서 나 역시 지오이드에 대한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연구 노트는 전문용어로 가득했기 때문에 나는 쉬운 설명을 찾아 구글에 지오이드를 검색해보았다. 검색되어 나온 이미지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구는 둥글지 않았다. 지구를 본떠 만들었다는 지구본과도 닮지 않았다. 오히려 지오이드는 오랫동안 소파 뒤에 방치되어 얼룩덜룩 곰팡이가 핀 감귤에 가까웠다. 그게 지구의 본모습이었다.
나는 오르는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세상의 울퉁불퉁한 굴곡을 많이 봐왔다고 자부했었다. 그러나 모험가를 자처하면서도 나는 지구의 형태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나는, 내가 오르려는 지구의 높이를 한 번이라도 의심해봤어야 했다. 내가 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