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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36439002
· 쪽수 : 172쪽
· 출판일 : 2023-03-17
책 소개
목차
기하
재하
기하
재하
인터뷰 성해나×김유나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내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는 강북에 있는 오십년 넘은 적산가옥을 개축해 일터 겸 거주지로 삼았다. 가옥은 가벽 하나를 두고 이편은 사진관, 저편은 세칸의 방을 둔 가정집으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두 공간을 넘나들며 아버지와 백반을 시켜 먹고, 「태조 왕건」이나 프로야구를 시청하고, 문제집을 풀거나 콘솔 게임을 했다. 그러다보면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간혹 알은척을 할 때도 있었다.
쇼윈도에 걸린 사진, 아저씨 아들내미 맞죠?
그럴 때 아버지는 내 머리칼을 마구 흩트리며 웃었다.
맞아요. 우리 아들놈.
재하 어머니는 내가 저기요, 하고 불러도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라고 부르길 강요하지도 않았다. 가타부타 없이, 그저 속없는 사람처럼 그러마고 할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재하 어머니는 객(客) 같았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젠가는 떠날 사람. 그렇게 생각한 탓인지 시간이 지나서도 그녀에게 뭘 부탁하거나 전하는 게 영 어렵기만 했다.
검진이 있는 날이면 재하는 평소보다 더 말이 많아졌고 더 크게 웃었다. 겁이 나는 걸 감추려 안간힘 쓰는 게 빤히 보였다. 내가 모르는 재하의 표정. 그런 것이 언뜻 비칠 때마다 그애를 향한 묵은 오해나 염오가 한층 누그러졌다. 면을 건져 먹는 재하를 보며 저 애가 내 친동생이라면 어땠을까, 잠시 가정해보기도 했다. 투박하고 거침없이 속엣말을 쏟아내며 보다 친밀해질 수 있었다면. 서로에게 시큰둥하다가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끈끈한 우애 같은 것을 우리가 처음부터 나눌 수 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