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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서양철학 > 서양철학사
· ISBN : 9788955968224
· 쪽수 : 656쪽
· 출판일 : 2017-11-3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일러두기
준비운동
고대로 부치는 철학편지
001. 탈레스에게 - 철학의 시작, 자연의 근원을 묻는다
002. 아낙시만드로스에게 - ‘정해지지 않은 것’을 묻는다
003. 아낙시메네스에게 - 공기의 의미를 묻는다
004. 퓌타고라스에게 - 영혼의 정화를 묻는다
005. 헤라클레이토스에게 - 변화와 불변을 묻는다
006. 파르메니데스에게 - 존재의 진리를 묻는다
007. 엠페도클레스에게 - 뿌리와 애증을 묻는다
008. 아낙사고라스에게 - 종자와 정신을 묻는다
009. 데모크리토스에게 - 원자와 공허를 묻는다
010. 프로타고라스에게 - 만유의 척도, 인간을 묻는다
011. 고르기아스에게 - 불확실성을 묻는다
012. 소크라테스에게 - 영혼의 개선을 묻는다
013. 플라톤에게 - 정의와 이데아를 묻는다
014. 아리스토텔레스에게 - 실체와 행복을 묻는다
015. 디오게네스에게 - 인간을 묻는다
016. 퓌론에게 - 판단유보를 묻는다
017. 에피쿠로스에게 - 쾌락을 묻는다
018. 제논에게 - 금욕을 묻는다
019. 플로티노스에게 - 신과 세계를 묻는다
중세로 부치는 철학편지
020. 유스티누스에게 - 신에게로 가는 길을 묻는다
021. 테르툴리아누스에게 - 불합리와 신앙을 묻는다
022. 아우구스티누스에게 - 신의 나라를 묻는다
023. 보에티우스에게 - 철학과 보편을 묻는다
024. 에리우게나에게 - 자연의 구분을 묻는다
025. 안셀무스에게 - 지식과 신앙을 묻는다
026.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 신의 존재를 묻는다
027. 에크하르트에게 - 신과의 합일을 묻는다
028. 둔스 스코투스에게 - 의지의 우위를 묻는다
029. 옥캄에게 - 개체의 우위를 묻는다
르네상스시대로 부치는 철학편지
030. 쿠자누스에게 - 대립의 합치를 묻는다
031. 피코 델라 미란돌라에게 - 인간의 존엄을 묻는다
032. 마키아벨리에게 - 군주를 묻는다
033. 모어에게 - 유토피아를 묻는다
034. 루터에게 - 종교개혁을 묻는다
035. 몽테뉴에게 - 지적 겸손을 묻는다
036. 갈릴레이에게 - 자연법칙을 묻는다
근세로 부치는 철학편지
037. 베이컨에게 - 우상과 귀납을 묻는다
038. 홉스에게 - 인간과 국가를 묻는다
039. 데카르트에게 - 명증한 사고를 묻는다
040. 파스칼에게 - 인간의 본질을 묻는다
041. 로크에게 - 경험을 묻는다
042. 스피노자에게 - 신과 자연을 묻는다
043. 라이프니츠에게 - 단자와 최선을 묻는다
044. 버클리에게 - 존재와 지각을 묻는다
045. 흄에게 - 인과를 묻는다
046. 루소에게 - 자유와 평등을 묻는다
047. 칸트에게 - 인식과 행위를 묻는다
048. 피히테에게 - 자아를 묻는다
049. 셸링에게 - 자연과 자아를 묻는다
050. 헤겔에게 - 정신을 묻는다
부록
·철학사 주요인물
·철학사 주요저작
·철학사 주요개념
고대철학 관련 지도
저자소개
책속에서
생각해보면 당신의 시대나 나의 시대나, 당신의 그리스나 나의 한국이나, 끝도 없이 ‘문제’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인간들이 서로 얽혀 사회를 이루고 그 사회 속의 모든 성원이 제가끔 욕망을 추구하며 산다는 본질적 구조가 있는 한, 인간들의 욕구는 충돌하기 마련이고 거기서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 모두 다 인간의 욕망이라는 공장에서 생산된 ‘문제’들이었습니다.
─플라톤에게 정의와 이데아를 묻는다
당신은 퀴벨레의 신전에 있던 큰 술통을 주거로 삼고 있었고, 또 여름에는 달구어진 모래 위를 굴러다니고, 겨울에는 완전히 눈으로 덮인 조각상을 끌어안고는 했다지요? 또 당신은 여름용 망토를 이중으로 해서 입고 다니다가 그것을 몸에 감고 자기도 했고, 망태주머니를 들고 다니며 그 속에 든 음식을 먹기도 했습니다. (…) 인간이야 거리에 얼마든지 다니고 세상천지에 넘쳐나는 것이 인간이지만, 당신의 눈으로 보면 이 인간이란 이름에 합당한 인간은 없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인간을 당신은 찾은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 이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도 작은 웃음을 웃어봅니다.
─디오게네스에게 인간을 묻는다
당신의 방식은 달랐습니다. 역설적이라고 할까, 허를 찌른다고 할까, 기독교의 불합리성을 ‘구차하게’ 변호하기보다 너무나도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 불합리성을 오히려 전면에 내세웠던 것입니다. (…) 세상 일들이 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기대난망입니다. 나는 일찌감치 그 기대를 반쯤 접었습니다. 노력을 통해 일이 제대로 되는 경우는 참으로 적습니다. ‘합리의 한계’는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그러나 절반의 ‘기대’는 남아 있습니다. 이른바 기독교적 철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성립되는 것이지요).
─테르툴리아누스에게 불합리와 신앙을 묻는다
그러한 대립들은 작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크게는 반목을 넘어 전쟁을 일으키고 세계를 파멸로 이끌기도 합니다. (…) 그러나 아무리 심각한 대립이라도 우리가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결국은 별것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립은 결국 유한한 인간들의 좁은 시야에서 생겨나는 것들입니다. (…) 그 ‘대립의 합치’가 한갓된 철학적 개념으로 그치지 않고, 지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지혜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그렇게 해서 이 지상의 쓰잘 데 없는 대립들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쿠자누스에게 대립의 합치를 묻는다
이른바 ‘에세이의 효시’로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철학자로서도 (…) ‘끄 세 주?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당신의 유명한 말은 물론 불변하는 진리에 대한, 그리고 인간 이성의 능력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우리가 진정으로 알아야 할 내용들이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음미를 촉구하는 문구로도 이해될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확대해석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나는 이 시대의 지식인들을 향해서 당신과 함께 호소하고자 합니다. ‘끄 세 주?’ ‘나는 무엇을 아는가?’ ‘알아야 할 것을 아는가?’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가?’
─몽테뉴에게 지적 겸손을 묻는다
당신을 향해 붓을 들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나는 당신의 매력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맞고 틀리고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당신은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독보적인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 그것은 내가 지향하는 ‘인생론’의 관점에서 볼 때 한 치도 틀림이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말한 그 이성 내지 정신도 진실이라 믿고 자유 실현을 향한 그 자기 전개에 나도 기대를 걸어보기로 하겠습니다. 현실 속에 역사 속에 정말로 그런 게 있어 작용하고 있다면야 그보다 든든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친애하는 헤겔, 이제 당신의 등 뒤로 근세의 해가 저물어가는군요. 그러나 그만큼 당신의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현대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 쪽으로. 아주 깊숙이.
─헤겔에게 정신을 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