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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7074121
· 쪽수 : 288쪽
· 출판일 : 2008-08-01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세 시간이라고 했다. 하늘과 바다에 잇닿아 세 시간이면 족히 닿을 수 있는 땅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가기까지 꼬박 스물여섯 해가 걸렸다. 떠나던 날의 흥분과 격정이 여전히 심장 한구석에 돌올한데, 세월은 매정했다. 가차 없었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청년은 장년이 되고, 장년은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노년의 삭은 몸이 되었다.
누구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지나버린 젊은 날을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애당초 후회를 모르는 천품이 애달프지 않다. 후회는 미련이다. 지난날 가졌던 것과 가지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어리석은 속셈이다. 처음부터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갖고파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소용없는 주먹구구다.-본문 중에서
하지만, 하지만 이 세상에 나를 믿어주던 그이가 더 이상 없다면 나는 무엇을 푯대 삼아 달려야 하나. 무릎이 저리다. 아버지의 머리는 식은땀에 절어 쉰내를 풍긴다. 척척하다. 그래도 행여 내 무릎을 벤 아버지가 불편할까봐 엉덩이 한번 들썩 못한다. 곤한 잠에 빠져든 아버지의 표정은 한없이 평화롭다. 집요하게 괴롭히던 병마도 잠시 꿈자리를 비껴간 모양이다.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군입을 다시는 걸 보니 꿈속에서 감주라도 드시나.
나는 여태껏 아버지께 술 한 잔 안주 한 접시 사드리지 못했다. 이대로 아버지를 떠나보내면 영영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할 테다. 굵은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져 아버지 콧등에 맺힌다. 그래도 아버지는 미간조차 찡그리지 않고 꿈결에 내 손을 더듬어 찾는다. 삭정이 같다. 겨울 산의 나목마냥 헐벗고 앙상하다. 눈물범벅이 된 내 뺨을 닦아주던 크고 따뜻한 손은 어디로 갔나. 혈기 왕성한 젊은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졌나.-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