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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7074510
· 쪽수 : 296쪽
책 소개
목차
<방콕의 네크워크>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①
서문|모심, 화엄개벽의 길
줄탁을 생각한다
촛불을 생각한다
나를 향한 제사와 내 마음이 곧 네 마음
육임제의 의미와 세 번 숨고 세 번 드러남
수운 시에서 배운다
운하에서 바다로! 횃불에서 촛불로! 마당극에서 마당굿으로!
생명과 평화와 촛불
『촛불, 횃불, 숯불』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②
서문|촛불, 횃불, 숯불
마당과 일원상
새로운 생명운동의 길
기독교 이야기
동아시아 시인의 역할
촛불 모심
가만히 좋아하는
당파
『새 시대의 율려, 품바품바 들어간다』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③
사타구니가 대해탈의 첫 샘물
촛불, 바람 소리냐 비냐
생명·평화·통일
호혜를 전면에, 교환을 일상으로, 재분배를 준비하며
음개벽
기위친정에 관하여
촛불과의 대화
산 촛불
생명 세계의 위기와 기독교 비전
《법보신문》이 만난 생명사상가 김지하 시인
『디지털 생태학』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④
서문|붉은악마에서 이미 촛불을 보다
붉은악마
촛불
사이버 시대의 생태학적 전망
한국의 생태담론
나의 삶, 나의 시를 말한다
아이 살림에 대한 다섯 가지 생각
생명에 관한 한 생각
나의 시, 70년대 어둠으로부터의 비전
한류, 생명 평화의 문화
동아시아 태평양 신문명의 예감
저자소개
책속에서
6월 10일 이후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한쪽은 낡아빠진 보수 꼴통들이요, 다른 한쪽은 좌파 시위꾼들이다. 이것은 순수한 촛불을 훼손했다. 바로 이 폭력 선동자, 폭력 조장자 양쪽을 나는 ‘까쇠’라고 이름 지어 부르기로 한다. 촛불세대는 분명히 한 가지 입장만을 고수하지 않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을 존중한다.
프랑스에서는 시민들의 평화적인 데모 때마다 복면을 쓰고 나타나 폭력 선동을 일삼아 그 결과를 난장판으로 귀결시키는 파괴자들을 가리켜 ‘Casseur, 까쇠르’라고 한다. 나는 이것을 ‘키워드’로 떠올리기로 한다. 이 키워드(촛불세대의 문화)를 통해 사태 전모를 인식하며 위험을 제거하고 비판해야 할 문제점을 순식간에 이 혁명과 인식해야 하는 것이 신세대 문화이다.
‘까쇠’는 ‘까부수는(파괴하는)’ ‘까부는(난동을 부리는)’ ‘까발리는(선동만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쇠놈(마당쇠의 쇠)을 뜻한다. ‘까쇠르’를 이제부터 ‘까쇠’로 부른다. ‘까쇠’는 정부에도 반정부 좌파에도 있다(종북전술단위). 이들의 목적은 (시민에게) 아무 이익도 없는 파괴뿐이다. 인터넷에도 있고 활자 신문에도 있다. 인터넷에는 ‘댓글알바’가 그것이고 신문에서는 ‘극우선동꾼’이다. 인식과 이 이름 부르기를 대중화시키는 것은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 <방콕의 네트워크> 23~24쪽 중에서
현대는 개체 중심의 융합입니다. 촛불은 인터넷을 하는 친구들로부터 시작됐고, 이들은 저마다 홍길동입니다. 거기에 가서 김지하가 이리로 가자고 하면 ‘너나 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대가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지금까지 공동체, 국가, 민족으로 묶어놓았던 것에서 해방되기 시작하면서 개체성이 튀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진화론도 크게 바뀌었습니다. 종 전체 중심의 진화가 아니라 개체가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천 개의 다른 개체들이 자기 안에 있는 하나의 큰 우주적 달을 전부 다 자기 스타일로 나름 나름 자기조직화하는 게 현대적 진화입니다. 바로 촛불들이 그렇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이 사는 스타일은 우리 시대와는 다릅니다. 그게 월인천강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바로 화엄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후천개벽 모양으로 커다란 개혁을 한번 해야 합니다. 불교는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끌어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불교가 갖는 원래의 큰 잠재력을 누가 현실에 맞게 뽑아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 <새 시대의 율려, 품바품바 들어간다> 209쪽 중에서
촛불!
촛불이다.
촛불은 제사다. ‘붉은악마’의 거칠고 불타는 생명력, 그 축제에 비하면 보드랍고 고즈넉한 영적 사건, 즉 제사요 음 陰이요 그늘이요, ‘밤에 켜는 제사로서의 촛불’이니 바로 ‘흰 그늘’이다.
촛불은 바슐라르의 물질신비주의의 영감의 원천이다. 촛불은 유럽 문화의 골수인 기독교신비의 중핵 ‘파스카 부활, Pascha’의 상징이다. ‘자기를 태워 빛을 발하는 예수 희생 제사’의 상징이다. 그것은 ‘넘어감’ 즉, ‘통과’의 의례다.
‘붉은악마와 촛불.’
마침내 현대 한국 민중의 새 세대 문화의 신비는 꼴을 갖춘다. 태극, 또는 ‘태극궁궁’의 음양통합이 나타난다. 붉은악마 ‘치우’의 숭고함과 ‘촛불’의 심오함이, 치우의 생명력(外有氣化)과 촛불의 무의식(內有神靈)이 통합된다.
아, 촛불!
나는 한동안 긴 침묵 속에서 혹시라도 내 생애와 촛불이 지닌 공유의 지점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 - <디지털 생태학> 43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