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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이주노동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일제 강점기 중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김태웅 (지은이)
  |  
아카넷
2016-08-25
  |  
12,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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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책 정보

· 제목 : 이주노동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나 (일제 강점기 중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88957335017
· 쪽수 : 224쪽

책 소개

대우휴먼사이언스 시리즈 11권. 역사학자의 시각에서 일제 강점기 중국인 노동자와 한국인의 관계를 사료를 통해 세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오늘날 이주노동자 문제를 풀어갈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문제작이다.

목차

머리말 일제 강점기 중국인 노동자를 되돌아본다

1장 중국인 노동자가 이 땅에 들어오다
1. 화교 상인을 따라 들어온 중국인 노동자 1882~1910
2. 중국인 노동자의 증가 1911~1919
3. 중국인 노동자의 대거 입국 1920~1931년 화교배척사건 직전

2장 중국인 노동자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1. 중국인 노동자 가족의 구성 변화·
2. 중국인 노동자의 연망
고력방
향방과 기타 연망
3. 종사 직종과 노동조건

3장 한중 노동자가 충돌하다
1. 만주사변 이전 한중 노동자의 갈등 양상
2. 1931년 화교배척사건과 일제 당국 및 한국인 식자층의 동향

4장 일제의 대륙 침략 후 중국인 노동자의 선택
1. 일제의 대륙 침략과 중국인 노동자의 집산
2. 중국인 노동자의 정체성 혼란과 삶의 끝자락

뒷이야기 떠나가는 화교, 남아 있는 화교

저자소개

김태웅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정부기록보존소 학예연구관과 군산대학교 조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대한제국과 3·1운동』(휴머니스트, 2022), 『어윤중과 그의 시 대』(아카넷, 2018), 『신식 소학교의 탄생과 학생의 삶』(서해문집, 2017), 『이주노동자,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나』(아카넷, 2016), 『국사교육의 편제와 한국근대사 탐구』(선인, 2014),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6: 근대』(가람기획, 2013), 『한국근대 지방재정 연구』(아카넷, 2012), 『한국사의 이해』(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등이 있으며,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우리말로 풀었다. 논문으로는 「일제강점기 김옥균 추앙과 위인교육」(『역사교육』 74, 2000), 「1910년대 전반 조선총독부의 취조국·참사관실과 ‘구관제도조사사업’」(『규장각』 16, 1994),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의 규장각 관리와 소장 자료의 활용」(『규장각』 33, 2008), 「일제하 관립전문학교의 운영 기조와 위상 변화」 (『연희전문학교의 학문과 동아시아 대학』, 혜안, 2016) 등이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청국 멸시관은 단순히 관념적인 배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화교의 경제 침투와 연계되어 있었다. 즉 한국인들은 국민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내 상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화교의 경제 활동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특히 《독립신문》의 주필 서재필은 1896년 5월 21일자 논설에서 청국인이 조선의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중략)
화교들의 경제 활동이 조선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거머리’와 같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들의 경제 활동이 조선 국내의 경제 활동을 자극하지 못할뿐더러 조선인의 고용 효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반면에 오히려 조선 상인의 영업 활동을 방해하고 영업 이익과 소득을 본국으로 빼돌린 데서 찾고 있다. (「화교 상인을 따라 들어온 중국인 노동자 1882-1910」 32~33쪽)


중국인 노동자의 임금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임금보다 적다. 특히 일본인과 비교하면 성년 노동자의 경우, 중국인의 임금은 일본인 임금의 4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시간당 임금으로 산정하면 3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 노동자의 임금은 한국인 노동자에 비교하여 조금 낮다. 당시 한국인 비숙련 노동자들의 생활 상태가 한국인 계층 중 가장 빈궁한 토막민의 생활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의 생활 상태도 짐작할 수 있겠다. 노동시간의 경우, 한국인 성년공이 일본인 성년공보다 1시간 많으며 중국인 성년공이 한국인 성년공보다 1시간이 더 많다. 이처럼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순으로 구성된 노동시장의 위계구조 속에서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착취당하면서 중국인과 경쟁해야 했던 것이다. (「종사 직종과 노동조건」 73~74쪽)


일본인 자본가들은 중국인 노동자를 대체 인력으로 고용함으로써 저임금에 따른 이윤의 극대화를 도모하였다. 나아가 그들은 중국인 노동자를 방패 삼아 한국인들의 노동운동을 유효적절하게 통제하였으니 한국인 노동자들이 임금 문제로 파업에 들어가면 곧바로 중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곤 하였던 것이다. 당시 어느 자본가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에 대해 “그렇트래도(파업을 해도)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였다. 이러한 엄포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들 자본가는 외국인 노동자 사용 규정을 위반하고 중국인 노동자를 수용하기도 하였다. 함경북도 웅기 같은 국경 지대 토목 공사장에서는 노동자의 80퍼센트가 중국 국적일 정도였다. 수리 공사 또는 토목 공사 같은 업종에서 중국인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였다. (「만주사변 이전 한중 노동자의 갈등 양상」 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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