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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88958072546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09-03-20
책 소개
목차
1. 이라크 사람들이 나를 죽일 거야
2.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출근할 겁니다!”
3. 알라시드 호텔에서의 첫날밤
4. 내게 맨 처음 마음의 문을 연 눈먼 갈색곰 새디아
5. 약탈꾼들
6. 독재자 사담과 우다이의 사자들
7. “당신, 미국사람?”
8. 동물우리 청소하기
9. 지구상 최악의 동물원 루나 공원 구하기
10. 기독교인 이라크 수의사 파라의 시련
11. 세계 최고의 혈통을 가진 사담의 종마(種馬) 구출대작전
12. 바그다드 동물원에 쏟아진 구호의 손길과 후샴에게 닥친 재난
13. “헤더와 제나는 발톱이 뽑혔어. 어떻게 사냥하라는 거야!”
14. 사자 이송 문제를 둘러싼 아델 박사와 바버라의 갈등
15. “사자가 더 무섭죠. 이제 사담은 사라졌잖아요!”
16. 아직 끝나지 않은 ‘지구를 위한 투쟁’
감사의 글
지구기구(Earth Organization)가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편지
리뷰
책속에서
그 병사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자기들은 목숨을 내놓고 싸우고 있는 판인데, 이 미친놈은 겨우 짐승들을 살리겠다고 전선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고? 그는 내게 무슨 일이냐고 다시 한 번 물었다. 방금 내가 한 말이 도무지 말 같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좀 더 세게 허가증을 흔들며 말했다.
“여기 연합군본부에서 받은 인증도 들어 있습니다.”
미군은 종이를 샅샅이 살펴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빙긋 웃었다.
“남아공이라, 참 멀리서도 오셨네요.”
그는 무선으로 상황을 알리며 지시를 요청했고 내게 차를 탱크 옆에 세워놓고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에이브람스 탱크 그늘에 주차하고는 호기심에 가득 차 나를 쳐다보는 병사들에게 알은체를 했다. 탱크는 엄청나게 큰 괴물처럼 보였는데 무척 더러웠고 닳아 있었다. 첫 번째 바리케이드의 극도로 긴장된 병사들과 달리 이쪽 젊은이들은 비교적 우호적이었고, 두세 명은 탱크에서 뛰어내려 악수를 청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서는 몇 달간 비누 구경을 못해 본 듯한 냄새가 진동했다.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요? 동물원은 바로 이 뒤에 있습니다. 담장을 가로질러 가면 보여요. 그쪽에서 총탄이 날아온 적도 있었죠.”
한 병사가 동물원에 대해 아는 체를 했다.
“일부러 여기까지 왔다고요?”
또 다른 병사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정신이 아니시네요. 나라면 당장 되돌아서서 애인한테 달려갈 텐데……. 이곳은 시궁창이에요. 싸워서 뺏을 가치도 없는 곳이라고요.”
그런 말을 들으려고 거기까지 간 건 아니었다. 그때 AK-47(세계 3대 돌격소총이라는 평가를 받는 구소련 산 자동소총이다. AK-47이라는 이름은 자동식 칼라슈니코프(Automat Kalashnikov)의 머리글자와 총기 개발연도의 조합이다―옮긴이) 소총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지나갔다. 나는 그 병사가 탱크 옆에 차를 세워두라고 했던 이유를 그제야 눈치 챘다. 그 거리에서는 탱크만이 유일한 방어막이었다. 22-23쪽
직원들이 주변에서 그릇처럼 생긴 것을 모조리 챙겨 물을 길러 간 사이, 나는 살아남은 동물이 있는 우리를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날 이후 매일 나 혼자 치르는 의식이 돼버렸다. 사자든 호랑이든, 아니면 수줍은 오소리든 동물들을 하나씩 살피러 갔다. 동물들이 철창 가까이 오면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안과 격려의 말을 전했다.
내게 맨 처음으로 가까이 온 것은 눈먼 갈색 곰 새디아였다. 녀석은 두려움에 떨며 태아 같은 모습으로 웅크렸던 자세를 떨쳐버리고 철창 가까이 다가왔다. 눈은 우유처럼 희뿌옇지만 나는 새디아가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다고 느꼈다.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널 지켜주마. 너를 위해 먹이를 가져왔단다. 마실 물도 있어. 날씨가 많이 더워지면 시원하게 샤워도 하게 해줄게. 다시는 폭탄이 떨어지는 일도 없도록 할게!”
새디아는 머리를 곧추 세웠다. 나는 새디아가 내 말을 알아듣고 감사의 표시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은근한 표정이나 작은 몸짓으로 감사의 표시를 주고받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나는 그 다음 우리로 차례차례 다가가 동물들이 약간이라도 알은척을 할 때까지 인사했다. - 80-81쪽
마지막으로 나는 개와 새끼 사자들을 같이 살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사자와 개를 같이 두는 것이 위험해 보여 격리시켰다. 그런데 서로를 그리워하는 게 분명해 보다 못한 우리가 인도적인 판단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개와 사자들의 상봉 장면은 감격 이상이었다. 개들은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고 사자새끼들은 허둥지둥 뛰어나와 개들을 반겼다. 아무리 냉혈한이라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개들은 행여 새끼사자들이 어떻게 될까 봐 안달이었고 사자들은 우리가 개들에게 가까이 가기라도 하면 개들을 보호해 주려고 쏜살같이 달려왔다. 개와 사자의 눈물겨운 우정에 관한 소문은 금세 병사들 사이에 퍼졌다. 병사들은 그 사자와 개들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왔다. 사자와 개들은 외부 세상에 우리 동물원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랑이나 사자를 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개와 함께 살게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새로 태어난 사자나 호랑이 새끼를 개와 함께 살게 하면 새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개가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게 된다. 그러면 개가 사람을 믿는 것처럼 그들도 사람을 믿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개가 사자나 호랑이의 밥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자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면서도 친구들을 잡아먹기보다 차라리 굶는 쪽을 택한 사실은 설명하기 힘들어 보인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연민이라는 감정이 맹수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일 것이다. - 146-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