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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58245117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4-11-21
목차
1편 수필
그리움
어머니의 기억 … 15
포구(浦口)의 석양 … 19
망부 묘(望夫 墓) … 23
무지개를 잡으러 간 소년 … 27
별 … 31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 … 36
엄마 가지 마요 … 40
봄꽃 아쉬움 … 44
사랑의 변화 … 47
자귀나무 꽃 … 51
작은 바램 … 55
노가리와 생맥주 … 59
잡초 … 63
장마 … 68
그리움 … 72
기다림
울림 … 79
포옹 … 83
각자쟁이의 눈물 … 87
동네 미용실의 사람들 … 92
장인, 장모님의 늙어 변한 모습 … 97
추석 전날 괴산 버스터미널의 노부부 … 102
작은 섬 … 106
애국자 … 110
헤어지는 부부들 … 114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 118
단기출가(短期出家) … 122
열매와 쭉정이 … 127
씨앗을 품은 열매 … 131
말(言)과 삶 … 135
가을의 길목에서 … 140
작은 섬의 오후 4시 반 … 144
그를 만나다 … 148
2편 단편소설
용이와 월선의 섬진강 연가(戀歌) … 155
황혼(黃昏) … 183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머니의 기억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날씨는 을씨년스러웠지만, 바깥마당에는 색도 고운 오색의 꽃가마가 놓여 있었고 어린 소년은 다른 집에는 없는 물건이 우리 집은 있다는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안마당에서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것이 무슨 잔치가 있는 듯싶었다. 잠시 후 잔치 날이라 생각했던 집 안마당에서 할머니의 애끊는 곡소리가 시골집 추녀에 부딪히자 이내 소년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따라 울기만 했고, 그렇게 꽃가마라 생각했던 꽃상여는 동구 밖을 벗어났다.
입동 지난 찬 바람에 그리 펄럭이던 앙장도 산허리 사이 비추어지는 햇살에 그만 살포시 내려앉은 흰 구름 마냥 얌전한데, 요령 소리가 멀어져 가는 길 양옆으로 이파리 떨군 미류나무가 서겁게 서 있다.
그때의 어린 소년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어머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만일 그 마지막 손을 잡아준 순간에라도 고개를 돌려 아랫목을 보았더라면‥‥, 지금껏 살아오며 늘 후회했고, 또 더 살아있는 날까지 그 순간을 후회하며 살 것이다.
나이가 들어 친구들의 부모님 장례식에는 빠짐없이 참석했지만, 회갑연에는 참 참석하기 싫었다. 회갑은 고사하고 사십 대로 접어들지도 못하고 가신 어머니가 생각나고 또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죄책감이 언제나 그런 자리를 피하게 하였다. 꽃보다도 어여쁠 나이에 전쟁을 겪고, 고난의 피난길을 다 헤쳐오셔서 겨우 십여 년 조금 넘는 시간 살다가 떠나셨는데, 머나먼 고향 땅이 그리도 사무치게 그리우셨을까.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갈 때가 되면 나는 제일 먼저 어머니 산소의 흙 한 줌을 떠서 내 어머니 육신의 고향 땅 황해도 황주에 뿌려 드려야 내 후회의 한 자락을 삯일 듯싶은데, 그런 날이 내게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일부>
사랑의 변화
청춘의 사랑을 보면 한없이 부러움을 느낀다.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오로지 좋아하는 상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지금보다 젊었을 때의 내 사랑의 기준은 언제나 내가 주어야만 하는 것을 사랑이라 여기며 살았던 듯싶다. 바라보여지는 사람이 아픈 삶이어야 하고 슬픈 삶이어야 진정한 사랑의 감정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살아온 환경이 불행하고 또 처한 삶에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있어야만 사랑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너무도 완벽한 일상을 갖고 밝고 아름다운 사람의 사랑은 오히려 욕심이자 가식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하여 그런 사람이 가지는 마음을 왜곡하여 생각했고 제대로 헤아리지도 못했다. 결국, 밝음 뒤에 감추어진 아픔을 나는 보지 못했던 것이고, 밝음 뒤에도 순수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나는 늘 주는 사랑에만 익숙해져 있었기에 받는 사랑에 대해서는 어설펐다. 내가 받는 사랑에 대해서는 왠지 모르게 불편스러워했고, 그 때문에 나는 늘 마음 편한 주는 사랑을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듯 사랑은 살아온 세월에 따라 그 모습도 변하는 듯싶다. 청초하기만 했던 시절의 사랑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순수함이 있는 사랑이었다면, 현실적인 삶에 마주한 사람 간의 사랑은 이해관계가 이입된 사랑이었지 않나 싶다.
물론 사랑을 일반화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없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사랑의 범주에 나의 사랑도 속해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내가 가진 사랑의 감정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 듯싶다. 그 때문에 철없던 시절의 아련한 짝사랑도 또 젊었을 때의 아프고 시린 사랑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오래 묵은 장 마냥 오래 두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면 좋을 듯싶지만, 현실은 그조차도 마음과 같지 않다.
- <일부>
잡초
질경이가 자리 잡은 보도블록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가장자리가 남천으로 조성된 울타리 안에 작은 공터가 있고 그 가운데는 고운 결의 잔디가 단비를 맞아 푸릇푸릇 잎을 뻗는데 한가운데에 잡초인 토끼풀 무리가 자리 잡고는 그 위세를 맹렬히 떨치고 있다.
보는 사람으로서는 그 공터가 잔디밭이든 토끼풀밭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인근 여고생들이 학교가 파한 햇볕 따스한 오후에 그 잔디밭 가운데의 토끼풀 무리에 옹기종기 모여서는 네 잎 클로버를 찾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잔디밭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오지 않아 토끼풀이 있지만 얼마 지나면 토끼풀 무리가 자리했던 곳은 모두 뜯겨나가고 그 자리엔 옛적 아이의 기계총 머리 자국처럼 휑할 것이다.
이렇듯 잡초는 누구든 될 수 있다.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잡초라는 말은 바뀔 수 있다. 잔디밭에 토끼풀이 자라면 토끼풀은 잡초다. 또 토끼풀밭에 잔디가 자라면 그 잔디 또한 잡초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어느 때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잡초인지 아닌지 구별될 뿐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 무리에서든 내가 쓰임새가 있는 존재라면 나는 잡초가 아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결국 잡초일 뿐일 것이다.
한편 질경이는 여리할 때는 산나물로도 채취되고 또 한약재로도 쓰인다. 보도블록의 그 질경이도 고운 환경에서 자랐으면 귀한 대접을 받았을 것인데 본인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그 엄혹한 장소에서 태어났기에 살아내려 하는 것일 뿐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살아보려 애쓰는 것으로 보였던 그 작은 질경이는 주말을 지나고 나온 아침 길에 더 이상 그 모습을 내게 보여주지 않았다.
- <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