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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가톨릭 > 가톨릭 성서 > 성서의 이해
· ISBN : 9788958660927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10-11-30
책 소개
목차
글을 시작하며
1부 : B. C.
문명의 탄생 / 아브라함, 유일신 역사의 시작 / 10년 후 / 이사악의 우울증? / 레베카의 선택 / 하비루, 히브리, 이스라엘 / 12 / 창세기의 끄트머리에 서서 / 모세의 탄생 / 탈출 / 율법 / 아! 모세 / 주사위는 던져졌다 / 진격, 진격, 또 진격… / 전쟁 그 후… / 판관 시대 / 맞수 / 왕의 등장, 최초의 왕 사울 / 사울 VS 다윗 / 다윗, 영웅으로 떠오르다 / 예루살렘 점령 / 다윗은 어떤 인물이었나 / 왕자들의 암투, 그리고 솔로몬의 등장 / 끊이지 않는 망치 소리 / 왕국의 분열 / 방황 / 북이스라엘의 멸망 / 순망치한(脣亡齒寒) / 유대인들, 나라를 잃다 / 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 유대교의 정착과 발전 / 귀향 / 느헤미야 / 뒤바뀐 세계 판도 / 그리스의 박해 / 쇠망치 / 새로운 왕조의 시작 / 분열과 혼란, 그리고 로마의 등장 / 대왕 헤로데 / 유대인 예수
2 부 : A.D
로마인, 그리스인, 그리고 유대인 / 감도는 전운(戰雲) / 로마! 움직이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메시아? / 탈무드 / 반목과 갈등 / 이슬람제국 안에서의 유대인들 / 십자군 / 저희들은 어디로 가야합니까 / 게토(Ghetto) / 희망의 불씨, 그러나… / 드레퓌스 대위 / 동상이몽(同床異夢) /목 놓아 쏟는 통곡의 전주곡 / 학살 / 건국 / 중동전쟁 / 험난한 평화의 길
글을 마치며
참고 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창세 17, 5)
“너의 아내 사라이를 더 이상 사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사라가 그의 이름이다.”(창세 17, 15)
참으로 송구한 일이다. ‘아브라함’에서 ‘아브’는 아버지라는 뜻이고 ‘함’은 백성 혹은 민족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은 나를 민족의 아버지, 백성의 아버지로 세우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아내의 새 이름 ‘사라’도 ‘여왕’이라는 뜻이니, 영광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나와 아내는 하느님에 의해 민족들의 아버지와 여왕이 되었다.
하느님은 더 나아가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창세 17, 7)고 약속하셨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의 말씀이 있을까. 하느님은 또한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겠다”(창세17, 8)라고 하셨다.
(30페이지)
할례는 당시 가나안 토착민족을 비롯한 인근 다른 민족들에겐 없는 풍속이었다. 일부 이집트인들이 위생 문제 때문에 할례를 하기는 했지만, 유대인들처럼 할례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할례의 방법에서도 유대인들은 돌로 만든 칼로 시행하는 전통, 곧 아브라함까지 소급되는 전통을 고수했다.(탈출 4, 25 ; 여호 5, 2-3)
하지만 할례는 처음에는 그리 중요한 규정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명기〉에서 할례를 두 번 언급하는데, 두 번 다 ‘마음의 할례’를 말한다.(신명 10, 16 ; 30, 6) 예레미야 예언자도 ‘마음의 할례’를 역설한다.(예레 4, 4) 하지만 뒤에 유배 시대에 가서는 할례가 안식일 준수와 함께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두 행위가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결속의 표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할례는 유대인 박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할례는 사실 다른 민족들이 볼 때 튀는 행동이었다. 유대인들을 지배하는 그리스와 로마의 통치자들은 할례를 박해의 꼬투리로 삼았다. 이방계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할례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나타냈다.
할례와 함께 유대 민족을 다른 민족과 구별하게 하는 뚜렷한 또 하나의 표지가 ‘안식일 규정’이었다. 안식일 규정의 배경을 놓고 학자들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80페이지)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는 과정을 보면, 조선왕조 초기에 왕자들이 벌인 왕위 다툼과 판박이다. 역사를 보면 위대한 왕 뒤에는 항상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왕자들이 있다.
솔로몬은 그 ‘왕자의 난’ 속에서 살아남았고, 결국에는 왕위에까지 올랐다.
다윗 왕국판 ‘왕자의 난’의 씨앗은 다윗 왕의 맏아들 암논 왕자에 의해 뿌려졌다.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에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다윗의 맏아들 암논 왕자가 이복 누이동생 타마르 공주를 성폭행하는 패륜을 저질렀다.(2사무 13, 1-14) 그런데 타마르 공주에게는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남동생, 압살롬 왕자가 있었다. 이 압살롬 왕자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분노한 압살롬 왕자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형 암논을 죽인다.(2사무 13 ,23-30) 이유야 어찌되었건 동생이 형을 죽인 것이다. 당연히 압살롬 왕자는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려 했다. 처음에는 반란이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성공 직전에 실패하고, 압살롬 왕자는 살해된다.(2사무 15, 1-18, 17)
이후 벌이지는 일은 점입가경이다. 한 번 흐트러진 질서는 회복하기 힘들다. 넷째 아도니아 왕자도 왕권에 도전했다. 그러나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와 그 측근들의 발 빠른 움직임 덕분에 실패했고, 결국 솔로몬이 다윗왕의 후계자로 지목된다.(1열왕 1, 5-53 참조)
(145∼147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