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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별곡

중앙은행 별곡

(혼돈의 시대)

차현진 (지은이)
인물과사상사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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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별곡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중앙은행 별곡 (혼돈의 시대)
· 분류 : 국내도서 > 경제경영 > 경제학/경제일반 > 경제사/경제전망 > 한국 경제사/경제전망
· ISBN : 9788959064021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6-06-28

책 소개

대한민국의 금융 발전 과정을 다룬 경제 교양서. 이 책은 '중앙은행 오디세이'라는 이름으로, 저자가 2014년 9월부터 '중앙SUNDAY'에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목차

여는 글

1 19세기 초까지는 금리 동결이 중앙은행의 미덕
2 위폐 사건을 계기로 반공 사회가 된 한국
3 만물박사 다산 정약용도 ‘중앙은행’은 몰랐다
4 ‘돈이 모이는 곳’인가, ‘돈을 바꾸는 곳’인가
5 민간이냐 정부냐 아니면 괴물이냐
6 조선 궁터에 세워진 대한제국 중앙은행의 숙명
7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 노릇한 조선은행
8 중앙은행끼리 원조교제, 최선인가 탈선인가
9 일본 정부에 순종하다가 수렁에 빠지다
10 개인의 머리에서 나왔나, 정부가 법률로 만들었나
11 일제강점기에도 치열했던 금융감독 밥그릇 싸움
12 금융위기 잉태한 일본 제국주의의 후진 정치
13 ‘야만의 유산’인가, ‘자유무역 확산’의 기수인가
14 껍데기만 남은 조선은 금본위제도의 변방이자 이단아
15 조선은행법은 식민지 모순구조의 거울
16 금본위제 고수하던 일 대장상, 우익 청년에게 살해되다
17 ‘일본-조선-만주’는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 서열 구조
18 일선만 블록, 일만 블록으로 대체되다
19 미국, 은값 조작으로 동북아를 뒤흔들다
20 식민지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로 전비 조달한 일본
21 지속 불가능한 전쟁의 결말은 초인플레이션
22 과로와 풍토병에 시달린 조선은행 임직원
23 조선인에게 조선은행은 선망과 좌절의 일터
24 소련군을 피해 남쪽으로 간 북조선의 인재
25 미 군정 업고 금융계 실세가 된 김진형
26 등거리 외교를 통해 존재감 키운 조선은행
27 자주권 확보를 위한 대통령의 결심
28 중앙은행 제도 수입에 의기투합한 미국 박사 삼총사
29 재무장관-연준 의장의 냉전이 만든 우정
30 관료 몫이던 통화정책 결정권이 금통위로 가다
31 힘들게 세상에 나왔으나 생일을 잊은 한국은행

참고문헌
금융사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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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차현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을 졸업했다. 1985년부터 한국은행에서 37년 6개월을 근무한 베테랑 ‘한은맨’으로 조사국과 금융시장국, 자금부 등을 거쳐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지냈고,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 등에서도 일했다. 현재는 예금보험공사 이사로 재직중이며, 경제뿐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화폐와 중앙은행제도에 관한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외환위기 전부터 금리 중심의 통화정책을 제안했으며, 외환위기 직후에는 정부와 함께 지금의 국채시장을 디자인했다. 코로나19 위기 초기에는 과감한 특별융자를 제안해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에 8조 원을 공급하도록 하는 데 물꼬를 텄다. 저서로는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의 학술서와 『중앙은행 별곡』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 오디세이』 등의 교양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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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당시 신탁통치 찬반 문제는 지식인들끼리의 관념적인 문제였던 반면, 위조지폐 문제는 전 국민을 금방 빨아들여 흥분시키는, 무섭도록 폭발적인 문제였다. 은행에서 100원짜리 지폐 수취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가운데 공산당은 불법 단체로 낙인찍혔다. 주범 박낙종과 이관술은 종신형에 처해지고(한국전쟁 중 처형), 조선공산당 당수 박헌영은 북으로 도망갔다. 『해방일보』는 매각되어 오늘날 『경향신문』으로 전환되었다. 이것이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전말이다. 해방 직후 순진했던 남조선은 소공동 74번지(오늘날 조선호텔 앞) 지하에서 벌어진 위조지폐 사건을 계기로 순식간에 반공 사회가 되었다. 돈의 타락은 자본주의를 붕괴시키지만, 그 실패는 공산주의를 추방시킨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돈의 ‘짝퉁’은 그 어떤 ‘짝퉁’보다도 위태롭다. 원래 ‘돈의 타락’은 위조지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레닌이 말한 돈의 타락이란, 진짜 돈의 범람이었다. 레닌은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면 자본주의가 붕괴된다고 믿었다. 즉, 무능한 중앙은행에 의한 화폐 남발이 화폐 불신을 초래해서 자본주의의 씨앗인 화폐를 사라지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2 위폐 사건을 계기로 반공 사회가 된 한국」)


중국인들은 금융기관을 ‘전장錢莊’ 즉, ‘ 돈錢이 모인莊 곳’이라고 불렀고, 일본인들은 ‘료가에兩替’ 즉, ‘돈兩을바꾸는替곳’이라고 불렀다. 중국은 국내금융(여수신)에, 일본은 국제금융(환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것이 중국과 일본의 차이였다. 차이는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짱께’들은 회표會票를 발행하고, 조선의 개성상인들은 어음於音을 발행했다. 중국, 조선 모두 개체로서 금융기관과 결제 수단은 발달했으나, 시스템을 보는 눈은 없었다. 그런데 일본은 미국의 은행법을 보자마자 ‘bank’를 ‘은행(집합체)’이라고 번역했다. bank를 집합명사로 번역한 것은, 동업자들이 서로 얽혀 망網을 이룬 채 어음과 수표를 교환하는 지급결제 업무가 은행업의 핵심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료가에’들이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해석이었다. 그렇다. 동업자 간 네트워크야말로 은행산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 네트워크가 없었을 때는 직접 돈을 운반하는 수밖에 없었다(송금-배달-결제). 이제 막 시작된 한국의 ‘카톡 결제’와 중국의 ‘알리페이’도 은행 네트워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들의 서비스는 은행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네트워크에 기생하는 것에 가깝다. 오늘날 은행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중앙은행이 있다. 은행을 상대로 지급준비금을 관리하는 중앙은행의 지급결제망이 없다면, 정부의 세수와 재정지출도 아주 불편해진다. 그런 점에서 중앙은행의 지급결제망은 국가경제의 중추신경이다. 미국은 중앙은행 없이 연방정부가 홀로 국고금을 관리하다가 1914년 연준 설립과 더불어 야만상태를 벗어났다. 처음에 미국을 모방했던 일본은 그 점에서는 미국보다 빨랐다.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경제 전체를 엮는, 지급결제망의 큰 모습을 32년 먼저 완성한 것이다.
(「4 ‘돈이 모이는 곳’인가‘돈을 바꾸는 곳’인가」)


일본은 국가총동원 체제 유지를 위해 국적 선택이나 포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센징’은 어디에 있건 내선일체의 원칙이 적용되고 징병의 대상이 되었다. 안수길의 소설 『북간도』에는 중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끼어 변발흑복과 창씨개명을 동시에 강요받는 1등 국민이자 ‘3등 국민’들의 애달픈 삶이 그려진다. 조선족의 또 다른 별명은 ‘가오리방쯔高麗棒子’였다. ‘방쯔’는 거지라는 뜻이다. 20세기 초 만주로 간 조선인들은 사실 거지꼴이었다. 몸뚱이밖에 없던 여자들 중에는 성매매로 빠지는 일도 많았다(다른 민족에 비해 매춘 인구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성병 감염률이 낮다고 알려져서 몸값은 비쌌다. 『동아일보』편집국장이던 춘원 이광수는 현지 조사를 마친 뒤 “중국인보다 청결한 조선 여자들은 인육 장사(성매매)에서도 환영을 받는다”며 기쁜 듯이 기록했다. 남자들도 비슷했다. 초기에는 거의 대부분 농사에 매달렸고, 일부는 중국인 밑에서 소작농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악착같은 생활력을 발휘해 곧 형편이 나아졌다. 부농 출신인 시인 윤동주 집안이 그랬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상업과 운수업에서도 놀라운 약진을 보였다.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처럼 재력을 바탕으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의 똑똑한 젊은이들은, 일본 주류 사회에서 만주 인맥의 부상과 만주 동포들의 성공 사례를 보고 만주행을 결심했다. 그들 중에는 의사, 변호사, 교사뿐만 아니라 행정관료(최규하·강영훈)나 장교(박정희·정일권·백선엽)를 꿈꾸는 사람도 있었다. 비좁은 조선을 벗어나 광활한 만주를 향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꿈은 호연지기였으나, 체제에 순응했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소시민적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누구보다도 혁혁한 공로를 세운 그들이 소시민적이었다는 사실은, 암울한 시대가 만든 역설이다. 선계 일본인들이 1등 국민인 동시에 3등 국민이었던 것처럼.
(「18 일선만 블록, 일만 블록으로 대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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