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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88959400249
· 쪽수 : 538쪽
· 출판일 : 2006-03-24
책 소개
목차
일러두기 / 책 머리에
제1장 한국의 ‘마지막 선비?그 저항의 불꽃
‘마지막 선비’ 김창숙 / 을사늑약 체결에 분노하다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하다 / 중국에서 벌인 항일 구국 투쟁
나석주 의사의 거사와 피체 / ‘단정수립반대운동’과 성균관 복원 / 노구 이끌고 반독재 투쟁 선봉에 / 조선 선비의 상징으로
제2장 출생과 학문의 도정
한미한 가정의 고집이 센 아이 / 방종한 생활 접고 학문의 길에 / 한주학파와 남명학파 세례받아
제3장 기우는 나라 붙들고자 발버둥
단연회 조직과 국채보상운동 / 역적을 치지 않는 사람도 역적이다 / 일제 헌병대에 끌려가 협박당하고 / 고향에 사립학교 세워 민중교육
제4장 「파리장서」주도
좌절과 통음의 세월 /「파리장서」 휴대하고 망명길에 / 파리행 중단하고 상해 체류
제5장 중국에서 독립운동과 국내 잠입활동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 제1, 2차 유림단 사건 주도 / 비밀결사 신건동맹단 조직 / 나석주 의거 주도하다
제6장 앉은뱅이 되도록 고문받아
왜경에 피체되어 ‘환국’ / 생사를 뛰어넘은 옥중 투쟁 / 무기 구형에 14년 징역 선고 / 대전 형무소에서 옥중 투쟁
『일선융화론』읽고 산산이 찢어
제7장 7년 만에 석방되어 시작詩作으로 울분 달래
백양사에서 수양 / 백양사 시절의 우국 시편
제8장 암흑기에 외롭게 지킨 고절
거대 감옥으로 변한 조선 천지 / 어머님 묘소 앞에서 3년 추상 / 창씨개명 거부하며 저항 / 선비의 길, 지절의 길 / 둘째 아들, 망명중 불귀객
제9장 해방은 되었지만 새 압제는 시작되고
암흑천지에 새날이 오다 / 그때 ?그들?은 어디에 있었나? / 옥중에서 맞은 해방의 소식 / 행정권 이양받은 여운형 만나
남한의 군정 수립과 신탁통치안 / 다시 만난 이승만에 실망
제10장 찬반탁의 격랑 속에서
임정 요인 위문받고 임정의 건국 노선 지지 / 정파에 초연하면서 반탁운동에 앞장서다 / 공산당 질타와 반탁 담화 발표
이승만과 갈등 관계 심화 / 미.소공위 관련 외로운 투쟁
제11장 성균관대학을 설립하다
유림의 친일?부패 세력 숙정 / 유림계 설득하여 유학대학 설립 / 젊어서 싹튼 교육사상
제12장 분단과 단정체제 굳어지고
이승만 단정 수립 충격 발언 / 남북협상론 제기와 한국전쟁 예언 / 북행길 김구 만나 평양회담 조언
제13장 이승만의 폭정에 맞서다
반분단 반독재 투쟁의 선봉 / 윤봉길 의사 14주기 추념사와 두 개의 정부 / 김구의 서거와 '반귀거래사'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 이 대통령 「하야 경고문」으로 투옥
제14장 고독한 선비의 길
남들이 가지 않는 길 / 경무대에 친서 보내 이승만 질타 / 성균관대학에서 쫓겨나 / 이승만 타도에 온 몸 던져 / 청빈한 실천 유학의 표상으로
제15장 4월 혁명 뒤로 하고 백발청안 지사 영면하다
마침내 쟁취한 4월 혁명 /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 사회장으로 영결식 거행 / 후세 학자들의 평가 / 심산 선생 일화
심산 선생 비문과 조가
연보 / 심산 관련 참고 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1919년 2월 어느 날 심산은 서울에 있는 동지 성태영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3월 2일 광무제(광무 황제)의 인산(因山)을 이용하여 국내 인사들이 모종으 ㅣ거사를 준비중이니 빨리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심산은 때마침 모친의 병환 때문에 날짜가 지연되어 2월 그믐께야 겨우 상경할 수 있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기회를 놓친 심산은 3월 1일 발표된 선언서에 천교도·기독교·불교 대표들의 이름만 나열되거 있고 유교 대표는 한 명도 없음을 보고 "망국의 책임을 져야 할 유교가 이번 독립운동에도 참여치 않았으니 세상에서 오유(汚儒, 세상 물정에 어두운 선비)·부유(腐儒, 정신이 아주 완고하여 쓸모없는 선비)라고 매도할 때에 우리는 어찌 그 치욕을 견디겠는가"라고 통탄하였다.
그러나 심산은 곧 자기의 할 일을 깨달았다. 3.1독립선언이 민심을 고동시켜 국내적으로 큰 전기를 마련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국제적 활동이다. 다시 말하면 고조된 국내 민중운동을 배경으로 국제사회에 대한 호소와 공작을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병희 등 각 종교 대표들은 곧 구속이 될 것이고 불행중 다행으로 유교 대표들이 남았으니, 국제 활동의 사명을 유교 쪽에서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 본문 109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