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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88959524747
· 쪽수 : 336쪽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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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란차는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전에 헤드랜턴이 달린 헬멧과 낡은 축전지를 건네주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군요. 여러분의 물건입니다. 무기는 돌려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며 란차는 어깨에 메고 있던 칼라슈니코프를 내밀었다. 이반 일행이 장님들에게서 빼앗은 총이었다.
"그 안에는 총알을 열여덟 개 넣어두었습니다. 더 구하고 싶었지만 그 이상은 어렵더군요."
"괜찮아요. 또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닌걸요." 하고 이반이 말했다.
"축전지가 얼마나 갈지 모르겠어요. 제 머릿속에 전기공학 책들을 봤던 기억이 선명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도 책장을 넘겨보지 않았거든요."
이반은 그의 농담에 소리 내어 웃었다.
우버퓨러가 천천히 다가왔다. 지루한 오페라를 듣느라 지친 모습이었다.
"잘 가요, 우버퓨러." 란차는 '천사' 특유의 고음을 내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우버퓨러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 조심스럽게 악수를 했다. 란차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우버퓨러는 점점 더 세게 손을 움켜쥐었다.
란차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여전히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역시 남자로군요. 존경스럽소. 감사했습니다." 우버퓨러가 빨개진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마침내 그들은 작별인사를 마쳤다. 그때 우버퓨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를 위해 노래해주지 않겠소? 오페라 말고 좀 더 쉬운 노래로 부탁해요."
"안 될 것 없죠." 란차는 환하게 웃었다.
"젊은 날의 4월, 오래된 공원에 쌓였던 눈이 녹아 내리고……." 란차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의 노래는 마치 어린아이와 여자가 함께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사방으로 메아리쳤다. 흡사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 같았다.
"그네가 흔들거리고." 란차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이반과 그의 동료들은 란차의 노래를 들으며 초르나야 레치카 역으로 향하는 터널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맑고 강인했다. 마치 크리스탈처럼…….
저 멀리서 망령이 머리를 치켜들고 노랫소리를 듣고 있었다. 회색 망령은 서서히 자리를 옮기며 얼굴을 찌푸렸다. 망령은 감정표현도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고음의 노랫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고음은 세상을 왜곡하고 앞을 볼 수 없도록 한다. 복잡하게 얽힌 터널은 망령에게 혈관처럼 느껴졌다. 회색 망령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단번에 얼마나 많은 공기를 들이마시는지 안다면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렇게 공기를 들이마시고 나면 한동안 숨쉬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망령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망령은 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았다. 그가 보는 세상은 방사능이 가득하고, 인간과 모든 생명체는 자신들의 방사능 수치를 냄새로 알려주었다.
방사능의 형광으로 가득한 세상, 여기저기 갈라진 세상이었다.
회색 망령은 뭔가 불안한 낌새를 느꼈다. 그가 쫓는 자는 육감이 뛰어났고, 수상한 낌새를 눈치챌 만큼 신중했다.
망령은 그가 쫓는 자와 대면할 순간이 얼마나 중요할지 예감했다. 번개가 치는 것처럼 파란 불꽃이 일어나고 오존 냄새가 날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식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