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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88959524730
· 쪽수 : 320쪽
책 소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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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반은 철창에 이마를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녹슬고 차가운 철창의 한기가 온몸에 퍼지면서 엄청난 일이 닥칠 것이라는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이반이 몸을 바르르 떨자 기름칠하지 않은 철창도 덩달아 삐걱거렸다. 이반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했다.
'누가 어떻게 이런 짓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일단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
놈들은 바실리섬 역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훔쳤다. 발전기는 역의 보물이자 태양과도 같은 존재였다. 바실리섬 역에서는 낮에 발전기를 이용하여 조명을 밝히고, 낮 동안 충전된 축전지를 이용하여 야간조명을 밝혔다. 아직까지는 야간조명이 꺼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야간조명을 그대로 밝혀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도 상황을 깨닫고 동요하기 시작할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불을 밝히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바실리섬 역 사람들은 고통받게 될 것이다. 농장의 당근, 배추 등 온갖 채소들도 더 이상 재배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동안 비타민 공급원이던 채소들을 섭취하지 못하면 기근은 물론이고 괴혈병과 아이들의 구루병이 발생할 것이다.
말 그대로 재앙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사조노프는 놈들을 뒤쫓아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놈들을 붙잡았다면 디젤발전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이반은 새벽녘에 총을 해체한 채로 잠들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필이면 이런 때 총을 조립해두지 않았다는 걸 후회했다.
이반 주변의 사람들은 바퀴벌레처럼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것 좀 보세요!"
누군가 소리쳤다.
"뭐야? 무슨 일이야?"
역의 경찰들이 디젤발전실로 뛰어들어 갔다. 가끔 경찰들은 설레발을 치며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보안체계가 뚫렸어! 이런 제길! 어떻게 이런 일이!"
경찰들의 아우성치는 목소리가 한데 뒤섞이면서 귀가 웅웅거렸다. 이반은 다친 갈비뼈가 벽에 닿지 않도록 팔꿈치로 지탱하며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쪽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사건현장을 조사하는 것은 이반의 일이 아니긴 했다. 이반이 이끄는 수색대원들의 임무는 적군의 영역을 습격하는 것이었다. 그곳이 다른 역이든 지상의 파괴된 도시이든 상관없었다. 누가 디젤발전실을 지키고 있었는지, 어째서 보안체계가 뚫렸는지 판가름하는 것은 이반과 수색대원들의 일이 아니었다.
"이것 좀 보세요!"
누군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이반은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섰다. 발전실 한쪽 구석에 경찰관이 서 있었다. 그는 이반이 돌아다보자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깔려 있던 방수포를 걷었다. 바닥에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반은 아픈 다리를 이끌며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이반은 알 수 없는 그림을 내려다보며 의아해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미하일이 소리쳤다.
"대장님!"
이반은 여전히 그림을 응시하며 미하일에게 말했다.
"누가 예술작품이라도 그려놓은 건가?"
그러자 미하일은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장님, 이건 예술이 아니라 살인입니다……."
이반은 천천히 미하일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뭐? 지금 농담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