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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테마로 보는 역사 > 경제사
· ISBN : 9788959593132
· 쪽수 : 334쪽
책 소개
목차
서설 _ 8
1장 중세 상업의 전개
중세 이전의 상업 _ 14
알렉산더 대왕 _ 17
로마 멸망 이후의 세계 _ 21
부활하는 상업 _ 26
도시의 등장과 역할 _ 33
도시의 대변화 _ 38
길드 _ 40
중세 무역 _ 44
바이킹 무역 _ 47
한자동맹 _ 49
상파뉴의 정기시 _ 54
베네치아의 상업 _ 57
2장 첫 세계화
근대를 향한 대항해 시대 _ 66
포르투갈의 동인도 항로 발견 _ 68
포르투갈의 동인도 무역 _ 72
스페인의 미국 발견 _ 74
상업혁명과 자본주의의 길 _ 78
스페인의 미국 지배 _ 80
미국산 은과 세계화의 출발 _ 84
삼각무역 _ 88
포르투갈, 스페인의 쇠퇴 _ 89
3장 동서무역로
실크로드 _ 94
해상 실크로드 _ 96
말라카의 위상 _ 99
향신료와 향료무역 _ 102
4장 무역전쟁 시대와 네덜란드
대양무역의 접점 앤트워프 _ 108
영불의 각축 _ 110
네덜란드의 독립 _ 112
네덜란드의 경제 상황 _ 115
튤립 열풍 _ 120
동인도 회사 _ 124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_ 130
네덜란드의 쇠퇴 _ 133
프랑스의 노력 _ 137
5장 근세 유럽의 사회사상적 배경
르네상스 전개 과정 _ 140
주권체제 _ 143
종교개혁의 사회 경제적 파장 _ 146
부르주아 문화의 대두 _ 153
계몽전제정치 _ 158
계몽사상의 대두 _ 161
6장 프랑스 혁명
사회제도의 모순 _ 170
국가 재정의 위기 _ 173
계몽사상의 영향 _ 175
혁명의 시작 _ 177
바스티유 습격 _ 179
혼돈 속의 혁명 _ 182
귀족과 시민의 다른 희망 _ 185
혁명의 결과와 한계 _ 187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_ 190
미국에서의 혁명 _ 193
7장 혁명 후 사회 경제
유럽의 경제성장 _ 198
산업환경의 변화 _ 202
사회의 변화 _ 206
부르주아지 _ 210
8장 영국의 상업화
영국의 근대무역 _ 221
동인도 무역 _ 226
캐리코와 차 무역 _ 230
식민지 전략과 항해조례 _ 233
산업혁명의 시작 _ 238
잉글랜드 은행 _ 240
기계의 등장 _ 242
산업혁명의 시작 _ 238
운하 _ 247
산업자본과 자본주의 _ 250
중상주의의 비판 _ 253
철도의 등장 _ 255
근대 회사의 탄생 _ 260
해상보험제도 _ 262
영 제국 _ 264
9장 미국의 산업화
미국의 독립 배경 _ 273
독립전쟁 _ 280
미국의 독립과 그 영향 _ 283
미국의 상업화 과정 _ 286
독립 후 대영 무역 _ 288
남북전쟁 _ 290
산업화 과정 _ 294
산업화의 그늘 _ 299
새로운 미국 _ 300
10장 세기말 산업문명
또 다른 20세기 _ 306
공업경제 시대 _ 309
과학기술과 산업문명 _ 313
새로운 계급사회 _ 318
부르주아 계급 _ 319
에필로그 _ 333
저자소개
책속에서
로마 멸망 이후의 세계
아피아 가도(Via Appia) 같은 고속도로와 함께 거대 제국을 이룬 로마는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the Great)가 죽은 후 395년 동로마와 서로마로 양분되었고, 476년 서로마제국은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함으로써 서유럽에 중세시대가 도래했다. 동쪽에서는 비잔틴제국이 천여 년 가까이 제국을 유지해 나가며 서유럽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1453년에 오스만제국에 의해 비잔틴제국은 멸망했지만 비잔틴제국이 보전해 오던 유럽의 고대문화가 서유럽에 전파되어 르네상스가 도래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서기 330년, 거대해진 로마제국을 지배하게 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수도를 옮길 구상을 하게 된다. 대상지는 보스포루스(Bosphorus) 해협의 유럽 쪽 해안에 있는 식민도시 비잔티움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알렉산더가 세운 알렉산드리아처럼 자신의 이름을 따서 새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명명했다. 그 이후의 역사는 화려하다. 서로마가 게르만족에게 유린당해 느리게 문명화되는 동안 동로마는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을 보존하고 발전시켰다.
‘로마법’ 역시 테오도시우스 2세(Flavius Theodosius II) 때 처음으로 ‘테오도시우스 법전(Codex Theodosius)’으로 편찬되었다. 이 법전은 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로마법 대전’으로 다시 정리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이슬람 학자들을 통해 기독교 세계에 전파됐지만 플라톤 철학을 서구에 전해 준 것은 동로마의 학자들이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비잔틴의 역할 역시 컸다. ‘삼위일체’의 교리를 확립한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소집한 것이었다. 비잔틴은 동지중해 전역을 지배하며 최대 판도를 이룬 6세기부터 14세기까지 국가가 아닌 제국으로 존재했다.
먼 지역의 사람들까지 콘스탄티노플로 끌어당긴 코스모폴리탄적 특성은 비잔틴제국 전체의 제국적 현상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은 시장과 상인이 넘쳐나는 부유한 도시였고 시민들 역시 윤택한 삶을 살았다. 이러한 비잔틴 즉, 동로마제국은 그동안 서구 사학계에서 부정적 인식 속에 무시당해 왔으나 실상은 달랐다.
비잔틴의 정체성은 법률과 군사제도, 언어에 잘 나타났으며 로마제국의 법치주의와 군대편제는 계속 이어받았고, 언어는 지역적으로 가까운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로마제국의 쇠망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가들은 다양한 사후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이란을 상대로 벌인 불운한 모험 때문에 로마제국이 붕괴했다는 것이다. 로마제국과 페르시아-이란제국은 군사적 확장정책, 법률, 문화적 성취, 도로건설, 화려한 건축물 등에서 거울처럼 닮아 있다.
이 두 제국이 서로 세력확장을 거듭해 나가면서 충돌하게 되었던 것은 두 커다란 힘의 반복적이며 연속적인 경쟁에서 비롯되었다. 두 제국은 무려 7세기에 걸쳐 무기, 제도, 문화 등에서 수축과 확장의 경쟁을 되풀이했고, 그리하여 소아시아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그 경쟁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로마제국은 왜 멸망했는가.『로마제국 쇠망사』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흥망사가 아닌 쇠망사(衰亡史)로 표현했다. ‘왜 로마제국이 망하게 됐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입장은 다르지만 데이비드(David Levering Lewis)의 관심도 어쩌면 기번과 같을 수도 있다. 기번이 주로 로마제국 내부에서 붕괴 이유를 찾은 데 비해 루이스는 외부에서 찾았다. 그가 찾은 결론은 이슬람의 번영 때문이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