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가출 중

열네 살
열열곱 살
스물일곱 살
마흔두 살
일흔세 살

옮기고 나서

...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후, 아버지가 퇴직금 4분의 1을 들고 사라졌다며 집으로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나는 통장의 잔액을 확인하고 당황했다. 잔액은 천만 엔이 조금 넘었다.
어머니와 나, 즉 모자인 동시에 남남인 두 사람은 그 숫자를 응시하며 잠시 침묵했다. 그 몇 초간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나는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불쑥 내뱉은 말은 "다행이야"였다.
(중략)
"류 짱이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머뭇거리자 어머니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 그거였군. '누군가가 어떻게든 벌어야 한다'의 '누군가'가 바로 나란 말인가. 아, 바로 그런 거였어. 과연, 요즘 치매가 시작된 할아버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으니 어머니가 일하러 나갈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남는 건 나뿐이잖아.
하지만 이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건 지독히 주먹구구식인 데다 그 초보적인 산수도 엉터리다.
당연히 '사실은 나도 회사를 그만 둔 지 얼마 안 돼서' 라는 말을 하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떤 기분 나쁜 감촉이 가슴을 스치며 나의 말을 가로막았다.
17년 전 어머니가 나를 버려두고 이 집을 나갔을 때 느꼈던 무겁고 쓰라린 감촉이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엄마에 대한 분노가 아버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는 당신입니까?' - 본문 127~128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