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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2012년 12월 우리가 뽑아야 할 12번째 대통령

12 - 2012년 12월 우리가 뽑아야 할 12번째 대통령

고성국, 노회찬, 원희룡, 윤여준, 박영선 (지은이)
위즈덤하우스
13,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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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2012년 12월 우리가 뽑아야 할 12번째 대통령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12 - 2012년 12월 우리가 뽑아야 할 12번째 대통령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선거전략/대통령 만들기
· ISBN : 9788960865655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12-09-28

책 소개

정치평론가 고성국이 참여해 좌와 우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핵심쟁점들에 대해 질문했으며, 보수의 원로 윤여준과 개혁 보수 원희룡이 참여해 이승만 이후 지도자들 11명(장면 포함)의 흑과 백을 꼼꼼하게 비판하며 12번째 대통령의 조건을 제시했다.

목차

1장. 대통령의 격格 거울에 비추어 나갈 길을 다듬다
첫 번째 이야기 이승만, 보수와 진보를 가르다
두 번째 이야기 박정희, 지워지지 않는 빛과 그림자
세 번째 이야기 전두환, 역사의식의 부재가 낳은 비극
네 번째 이야기 노무현, 자연인으로서의 매력과 정치인으로서의 무모함
다섯 번째 이야기 이명박, CEO 대통령은 몰랐던 민주주의의 효율성
여섯 번째 이야기 안철수, 박근혜, 문재인을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다
보수에게 묻다 우리의 대통령 역사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나오지 못한 이유

2장. 대통령의 가치 정치와 경제의 민주화 실현을 위하여
첫 번째 이야기 진보의 가치란 무엇인가
두 번째 이야기 실패한 진보가 박정희를 욕망하게 한다
세 번째 이야기 진화하고 진통하는 진보의 지형도
네 번째 이야기 나꼼수와 주사파, 진보와 진부의 사이에서
다섯 번째 이야기 민주공화국과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대통령을 꿈꾸며
여섯 번째 이야기 야권 연대, 80퍼센트를 울려야 한다
진보에게 묻다 다시, 개혁과 안정의 기로에서

저자소개

고성국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8년 대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1995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부터 방송 활동을 시작해 KBS <추적 60분>, CBS <시사자키-오늘과 내일> 등 다양한 시사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며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유튜브 채널 크리에이터 및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머리는 진보 가슴은 보수 당신은 어느 쪽인가?》(킹덤북스, 2021), 《고성국의 정치 평론 그리고 정치》(실크로드, 2020), 《10대와 통하는 정치학》(철수와영희, 2007)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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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다. 1979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고, 1980년 5월의 광주를 보며 노동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1983년 전기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고 서울, 부천, 인천 등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창립을 주도하고,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백기완 선거대책본부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 후 진보정당추진위원회와 진보정치연합 대표, 『매일노동뉴스』 발행인, 국민승리21 정책기획위원장, 민주노동당 부대표와 사무총장을 거쳐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와 상임대표를 지냈으며, 2012년 서울 노원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2016년 경남 창원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정의당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평생 진보정치의 길을 걸으며 노동자와 농민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2005년 삼성에서 떡값을 받은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하고 거대 권력에 맞서서 한국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을 해왔다. 호주제폐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정리해고제한법 발의 등 서민 보호를 위한 입법 활동에 앞장섰으며, 사법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2018년 12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하고, 2019년 5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이해 제정된 ‘프라이드 어워드’의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노회찬, 함께 꾸는 꿈』, 『노회찬의 진심』, 『우리가 꿈꾸는 나라』, 『노회찬과 삼성 X파일』, 『나를 기소하라』, 『힘내라 진달래』,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는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 『생각해봤어?』,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등이 있다. 2018년 7월 23일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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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4년 추격의 시대에 태어났다. 온 나라가 가난과 맞섰던 때 어머니를 눈물짓게 한 가난이 미웠다. 공부는 꿈이었고, 미래로 가는 사다리였다. 1982년 무학無學 농민의 아들로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지만 정의에 대한 공분으로 청춘을 민주화 운동에 바쳤다. 노동야학 시절 아들을 먼발치로 보고 발길을 돌리셨던 아버지의 마음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다고 믿고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새로운 대한민국을 모색했고 검사의 일을 선택했다. 이성의 안내에 따라 나라와 국민을 위한 실질적인 길을 걷고자 정치를 시작했다. 보수의 개혁이 조국을 혁신할 수 있게 하리라 믿고 2000년부터 한나라당 개혁의 기치를 들었다. 서른여섯 살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외로운 외침이었지만 오늘의 변화를 예고하는 밀알이 됐다. 7년 제주 행정을 통해 아름다운 제주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국가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한 7년이었다. 2021년 추월의 시대에 섰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질주할 수 있도록 자유와 혁신의 세상을 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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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소론의 영수 명재 윤증의 후예들이 거주하는 집성촌의 종손으로서 대지주인 할아버지 댁에서 7살 때까지 자랐다. 선친 윤석오(尹錫五, 1911~1981) 선생은 위당 정인보의 제자로서, 해방 직후 고하 송진우가 이승만 박사에게 추천해서 이승만 박사의 비서 역할을 하게 됐다.. 그래서 윤여준은 해방된 다음 해인 8살 때 상경해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됐다. 혜화국민학교에 다니게 됐으며, 본인을 첫 번째 한글세대라고 짐작한다. 선친 윤석오 선생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엔 총무처 차관으로서 2년여간 활동했다. 이 기간 중 반년 조금 넘는 시간은 경무대에서 거주했으며, 어린 윤여준도 이승만 대통령 내외의 지근거리에서 지내며 여러 인연을 맺게 됐다. 윤석오 선생은 1950년 6·25전쟁 중 서울 수복을 계기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평생을 초야에 묻혀 한학자, 서예가로 살았다. 윤여준은 십대 시절 병마가 닥쳐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들었고 경기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못하고 요양을 하며 지냈다. 그 시절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책을 접했다. 이후 단국대에 재학하며 대학생으로서 한때 인연이 있었던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4·19혁명을 경험했다. 5·16쿠데타 다음해에 입대하여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했음을 실감했고, 기자시험을 치르고 1966년부터 동아일보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69년부터는 경향신문에서 근무했다. 유신 이후에는 언론의 무력함을 절감하고 퇴직했는데, 이후 지인들의 권유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 주일대사관 공보관으로 관계에 투신, 도쿄에서 2년 일한 이후 싱가포르 대사관 공보관으로 옮겨 4년을 더 일했다. 싱가포르에서 귀국 후 국회의장 공보비서관을 거쳐 1984년에는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됐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3대에 걸쳐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면서 청와대 의전·공보·정무 비서관과 국정원장 특별보좌관, 대통령 공보수석 비서관 등의 이력을 쌓았다.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환경부장관을 역임했으며, 2000년에는 이회창 총재의 측근으로서 한나라당 소속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두 차례에 걸쳐 여의도연구소장을 역임했다. 2004년 총선 한나라당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으로서 박근혜 대표를 보좌한 것으로 27년 간의 공직생활을 마쳤다. 윤여준은 오랫동안 ‘보수의 책사’로 불렸으나, 본인은 그 호칭을 좋아하지 않는다. 국록을 먹을 때는 원칙을 지킬 것을 권유하는 참모이고자 했고, 은퇴 후 시민사회 활동을 할 때엔 수십 년 간 국록을 먹은 책임감으로 본인의 경험을 후학에게 전달하고자 했을 뿐이다. 스스로는 굳이 규정하자면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자’ 혹은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해왔다. 이 책엔 선친으로부터 두 세대에 걸쳐 권력자들을 경험하고 실천가 혹은 관찰자의 위치에서 그들을 보좌하거나 비평해온 저자의 경험이 응축되어,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치국경륜)란 무엇인지를 동서양의 통치학 및 제왕학 논의를 통해 고찰하고 그 내용을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을 향해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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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냈다. 4선 국회의원으로서 헌정 사상 첫 여성 법사위원장, 여성 원내대표를 지냈다. MBC 앵커, LA특파원, 경제부장을 역임했다. 경제부 기자 시절 1980년대 말 삼성 이건희 회장과 전경련 제주 포럼에서 만나 반도체에 관한 얘기를 나눈 후 반도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반도체 주권국가》?를 펴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서강대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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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원희룡: 저는 박정희 대통령을 뽑은 대한민국의 시대적 과제는 당시의 매우 인상적인 캐치프레이즈였던 ‘조국 근대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조국 근대화는 분단국가로서 앞서나가던 북한의 경제발전에 대한 안보와도 연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아주 절실한 문제였지요.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근대화를 이룩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였고, 결국 군부 쿠데타에 의해 근대화 주도 세력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에는 다른 선진국처럼 기업가 집단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시민사회가 형성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군부, 그리고 군부가 동원한 관료가 주도적으로 기업의 투자를 이끄는 방식으로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동원 방식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고 시민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동원이 발생했기 때문에 반발 세력에 대해서는 국가 폭력이 동원됐지요. 여기에 박정희라는 지도자의 빛과 그림자가 있는 겁니다. 빛은 조국 근대화를 효과적으로 달성했던 혁신의 기수이자 영웅이었다는 측면입니다. 대신 그 주체의 한계와 동원 방식으로 사용된 유신 헌법이 그림자라고 할 수 있지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인권을 유린당했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당시는 아주 무자비한 국가 폭력이 동원된 압제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박정희에게는 빛과 그늘이 함께 있고 이를 동시에 평가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근대화를 이룩한 공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자, 하지만 앞으로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보편화되었으니 민주주의를 희생시켜 발전을 이룩하는 전체주의적인 방식은 이제 안녕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정희는 우리가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대상이지 과거 자체를 통째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는 역사에 대한 현실성과 연속성을 무시한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어렵나요?
‘박정희, 지워지지 않는 빛과 그림자’ 중에서


윤여준: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창업의 과정만 성공하면 수성은 잘할 수 있다는 잘못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원 의원이 말한 대로, 12월 19일에 영웅이 탄생했다가 다음 날부터 욕을 먹는 이유도 수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이전에 도대체 5년간 자신이 다스릴 국가라는 게 무엇인가 이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이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다른 능력이 뛰어나도 내가 다스릴 국가라는 게 무엇인지를 모르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내 것인지 공공의 것인지 모르는 상태가 되게 돼요. 민주주의를 모르면 민주주의 과정을 무시하게 되고 결국 비민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고 많은 문제를 양산한다는 것이지요. (중략) 미국의 경우는, 대통령이 되기까지 상당한 수준의 민주주의 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만 훈련을 받는 게 아니라 사회가 전체적으로 훈련을 받지 않습니까? 또한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올라갈 때까지 상당한 경쟁 과정을 거칩니다. 유럽 같은 데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우리는 불행하게도 중간 과정 없이 휙 날아드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지요. 왜 김영삼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이면서 통치방식은 비민주의적일 수밖에 없었는가? 그 분들도 민주주의 훈련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기를 일본 식민지배 시기에 태어났고, 성장하고 교육받은 시기도 철저하게 그런 시기였고, 이후에 민주화 투쟁을 할 때도 권위주의 시기였기 때문에 민주주의 훈련을 받은 기간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겠지요. 이런 요인들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퇴임할 때 좋은 평가를 받는 대통령이 등장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대통령 역사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나오지 못한 이유’ 중에서


박영선: 저는 12번째 대통령은 우리나라 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조항과 헌법 제 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진정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느냐의 측면에서 봤을 때,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이 지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에요. 저도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CEO로 있던 시절에는 참 친했습니다. 제가 경제부 기자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분은 평생 기업의 이윤, 그러니까 무엇이 가장 효율적이고 무엇이 가장 많은 이익을 내느냐 생각하는 데 시간을 보낸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주변에도 전부 그런 사람들만 모이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그게 부패로 연결되면서 지난 4년 동안 국민들이 정신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이 평생 동안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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