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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0909182
· 쪽수 : 200쪽
· 출판일 : 2025-03-01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돌보는 사람
무너지는 순간
변해가는 것들
숲과 호수 사이
어떤 여름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도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리치빌
다정한 밤
닮아가는 사람들
미류의 계절
보내는 마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모는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 색이 변해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거나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이 경이로웠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나무들의 늠름한 몸통과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가지들, 촘촘하거나 듬성듬성한 나뭇잎들을 보고 있으면 나무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온몸으로 기운이 번져나갔다. 윤은 주로 호수를 보며 물멍을 즐겼다. 호수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잔잔히 펼쳐진 물을 보며 어떤 기분과 감정을 흘려보내곤 했다.
의도하거나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모와 윤은 지치고 마음이 다쳤을 때마다 그곳에 갔다. 그 카페의 창을 통해 사계절의 풍경을 보았다는 건 계절마다 마음 다치는 일들이 생겼다는 뜻인 동시에 거기 앉아 있던 시간 덕분에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_「숲과 호수 사이」에서
미진은 그 표정과 감정이 자신의 마음에 가만히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왜 할머니인 연희의 마음이 이토록 와닿는지, 왜 이토록 기진하고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기분이 찾아들며 마음속에 쓸쓸한 바람이 부는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이 흐느낌으로 변해 소리 내어 울면서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슬퍼하며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를 다 본 뒤에도 노인이 된 연희가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과 주름진 얼굴 위에 내려앉던 각별한 평온함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연희의 죽음은 삶의 끝을 거부하고 저항하면서 마무리되지 않았다. 모든 감각과 감정이 볼륨을 줄이듯 서서히 작아지다가 마침내 고요해지는 것에 가까웠다.
_「미류의 계절」에서
할머니는 세수하고 나온 인정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앞머리를 잘라주기도 하고, 손톱을 깎아준 다음 이모 방에서 가져온 화장품 상자를 보여주며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보라고 했다. 그 안에는 색색의 매니큐어가 잔뜩 들어 있었다. 인정은 신중하게 핑크나 오렌지색을 고르고는 손가락을 쭉 폈다. 그러면 할머니가 열 손가락에 차례대로 매니큐어를 발라주었다. 손을 편 채로 매니큐어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자신의 손에도 같은 색깔 매니큐어를 칠했다. 공기 중에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냄새가 떠다녔다. 할머니와 인정은 양손을 펼친 채 마주 보며 웃었다.
_「보내는 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