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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54695176
· 쪽수 : 376쪽
책 소개
목차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007
김의경 순간접착제 013
서유미 밤의 벤치 045
염기원 혁명의 온도 073
이서수 광합성 런치 101
임성순 기초를 닦습니다 137
장강명 간장에 독 165
정진영 숨바꼭질 205
주원규 카스트 에이지 243
지영 오늘의 이슈 273
최영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방식 303
황여정 섬광 333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언니, 방금 동생이 회사로 전화했어. 언니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말 전해달래. 혜영이가 위급하대. 지금 안 오면 못 볼 수도 있대.”
할머니는 아무 소리 못 들었다는 듯 밥에 소를 올렸다. 반장이 큰 소리로 말했다.
“소순 언니, 병원에 안 갈 거야?
할머니는 태연한 표정으로 목을 돌리며 말했다.
“이거 마저 마치고. 내가 갈 때까지 버텨줄 거야. 괜찮아, 괜찮을 거라고.” _김의경 「순간접착제」
그만두겠다고 말한 뒤에야 경진은 차분히 자신이 했던 일을 돌아보았다. 잘 모르고 가본 적이 없는 동네를 걸어다니며 학생들의 집을 방문했고 수업시간을 맞추기 위해 빠르게 걷거나 뛰었다. 교육에 대해 잘 모르면서 한글이나 수학을 가르쳤고 학습에 대한 상담도 했다. 새로운 수업을 권유했고 수업을 그만두겠다는, 돈이 아깝다는 얘기도 들었다. 선생님이지만 집까지 학습지를 배달하는 사람이었고 영업을 못해서 수업이 줄어들면 눈치가 보이고 월급이 줄었다. 보람과 모욕이 하나의 그릇 안에서 녹아내렸다.
일을 그만둔 뒤에도 경진은 걸으면서 나무를 보고 공기 중에 섞인 비의 냄새를 맡던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어딘가에 도착해서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렸다. 나무 하나를 찬찬히 보며 걷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_서유미 「밤의 벤치」
군무원 처우에 불만을 쏟아내는 단톡방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반박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아니, 군무원이라는 게 국군조직법을 근거로 생긴 직업인데, 이게 무슨 배부른 소리인가. 군무원 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 본인들이 원해서 선택한 직업 아닌가? 그들의 성토를 보다 짜증이 나서 휴대폰을 내려놓고 넷플릭스를 틀었다. 두둥. 퇴근한 독신 군무원을 위로하는 짧고 강렬한 소리.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외로워서였나. 단톡방에서 나온 오프라인 모임 얘기에 금쪽같은 휴일을 바쳐 참여했다. 온라인에서 아무리 뜨거워도 정작 오프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은 한 줌에 불과한 게 ‘국룰’인데, 그날은 꽤 많은 사람이 모였다. 전날이 10일, 그러니까 월급날이었던 것과 상관이 있었을까? 첫 번개에 마흔 명이 넘는 군무원이 모였다.
“우리 없으면 군대가 돌아갈 거 같애? 씨발, 현역들? 전세규 내용도 몰라서 나한테 물어보는 주제에 말이야!”
3차를 마치고 종로 길바닥에서 누군가 외친 소리가 혁명의 시발점이었을지 모른다. 군무원에게 총기와 군복을 지급한다는 뉴스가 나온 후 일 년 동안 가열된 분노가 폭발하는 소리였다. _염기원 「혁명의 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