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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목회일반
· ISBN : 9788960921580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0-07-15
책 소개
목차
추천의 글
감사의 글
글을 열며
프롤로그
1부 진단
1장 음악, 록 그리고 CCM
1. 음악
- 사람을 움직이는 음악의 힘
- 콘텍스트와 결합된 음악의 힘
- 과학으로 증명된 음악의 힘
- 음악의 긍정적 효과
- 음악의 부정적 효과
- 부정적 효과를 내는 음악은 나쁜 음악인가
2. 록
- 록의 본질
- 록의 특징 1 지속적인 반복
- 록의 특징 2 커다란 사운드
- 록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3. CCM
- 찬송가
- 복음성가
- 워십송
- CCM
- CCM의 정의
2장 CCM 옹호론에 대한 반론
1. 성경이 특별히 금지하는 음악 스타일은 없다는 주장에 대해
2. 전통적인 찬송가도 당시에는 CCM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 신앙의 선배들이 처한 당시의 상황
- 찬양은 가르침을 위한 바른 목적으로 쓰여야 한다
3. 중요한 것은 가사지 음악 스타일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 음악은 중립적인가
- CCM의 가사가 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
- 이유 1 록이 가진 고유의 특징, 그 중에서도 ‘반복’ 때문이다
- 이유 2 기독교의 메시지와 록의 특징이 충돌한다
- 이유 3 가사에 성경 구절이 많다고 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 CCM 가사의 핵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점점 더 ‘나’를 향하고 있다
4. 한국형 CCM의 등장
3장 오늘날 교회 속의 CCM
1. CCM이 복음 전파의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 어느 청소년 전도 집회의 풍경
- 지향해야 할 복음의 메시지
- 과도한 CCM 속에 약해지는 복음의 메시지
- CCM이 복음의 통로가 될수 없는 이유
- CCM이 복음의 통로가 된 결과
2. CCM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 CCM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집회의 한 풍경
- 임재의 핵심은 반복
-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임재
4장 과도한 CCM이 불러온 결과들
1. 예배는 공연이 되고 공연은 필연적으로 스타를 만든다
- 사람을 드러내는 노래
- 사람이 스타로 드러나는 오늘날의 모습
- 찬양 인도자는 특히 더 스타가 되기 싶다
- 왜 교회에서도 스타를 필요로 하는가
2. 청소년의 신앙 색깔을 결정한다
- 신앙의 시작은 말씀이어야 한다
- 음악이 없어도 되는 기도와 예배를 위해
- 음악으로 자란 청소년의 신앙 수준
3. 세상을 향해 왜곡된 메시지를 전한다
- 연관성의 함정
- 연관성의 함정에 빠진 결과
-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자
4. 구원관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
- 가짜 회심자를 만든다
- 심각한 불신앙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2부 치료
5장 성경적 예배의 회복
1. 위로부터 받아 누리는 예배
- 혼자 이루시는 언약
- 예배의 오염
- ‘어떻게’는 중요한가
- 구약의 제사
- 나답과 아비후가 추구한 창의적 예배
- 하나님이 정하신‘어떻게’를 지키는 것이‘진심’이다
-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제사
- 신약 시대의 예배
- 예배는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
-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가
2.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 말씀
- 말씀을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
- 아이러니의 시대: 넘치는 설교와 말씀의 실종
- 두 가지의 설교
- 성경이 없어도 되는 설교
- 성경이 없으면 안 되는 설교
- 구속사적 설교
- 복음 설교
- 오로지 하나님이 홀로 이루시는 구원
- 복음이 주는 자유함
- 신자에게도 복음은 끊임없이 선포되어야 한다
- 연관성의 함정에서 벗어나자
- 설교자의 자존심을 회복하자
3.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 성례
- 의식에 대한 거부감
- 지나친 영적화의 위험
- 성례는 하나님이 직접 베푸시는 푸른 초장
- 성례의 근거
- 성례는 하나님이 명하신 것
- 드리는 예배에서 받는 예배로의 전환
- 성례의 유익
4. 성도를 하나로 만드는 예배
- 예배를 나누는 기준
- 어머니의 생신상
- 다양하게 준비된 예배
- 예배를 통해 나의 취향의 만족을 추구
- 음악으로 예배가 분열된 현실
- 김연아의 점프
6장 성경적 찬양의 바른 모습
1. 찬양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반응이다
- 찬양이 말씀과 성례 수준으로 격상된 현실
- 찬양 인도자가 예배 인도자가 된 현실
2. 찬양은 바른 신학 내용을 담아야 한다
- 반응은 감탄사만이 아니다
- 시편은 찬양의 모범
- 시편을 불구로 만드는 시편 인용 찬양들
- 나를 생각하며 부르는 애국가
- 록으로 부르는 애국가
- 찬양을 통한 바른 배움을 추구하자
- 서정적 멜로디의 과도한 사용: 백 뮤직
- 바람직한 찬양의 한 사례
7장 CCM의 바른 위치
1. 워십송의 바른 위치
- 록을 기반으로 하는 한 워십송은 예배에 쓰일 수 없다
- 워십송은 전도의 수단이나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흥분제로 쓰여서는 안 된다
- 교회적 차원에서 워십송에 대한 선별 작업이 필요하다
2. CCM의 바른 위치
- 바른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자
- 배우 송강호 씨
- 하나님의 주권은 교회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 크리스천의 삶은 무엇이 다른가
- CCM은 세상으로 나가자
- 예술성과 신앙으로 영향력을 끼치자
에필로그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마치며
참고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얼마 전 우리나라를 잠시 방문한 기간에 난생처음으로 헬스클럽에 등록 했습니다. 클럽에 있는 러닝머신에 올라 모니터를 켜고 이어폰을 꽂았습니다. 느린 속도로 러닝머신을 작동시킨 후 운동하며 볼 만한 채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60~70개가 넘는 케이블 채널 중 제 기억으로 거의 삼분의 일에 가까운 방송들이‘강호동,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예능 프로’들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나라 헬스클럽을 처음 간 저에게 이건 큰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편안히 앉아 TV를 본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한 제게 그날 헬스클럽은 우리나라 TV 프로의 현실을 가감 없이 생생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강호동, 유재석 씨의 인기 그리고 그들이 주가 되는 예능 프로의 위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프로들이 재방송들을 등에 업고 이토
록 압도적으로 케이블 TV를 장악하고 있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포탈 뉴스들도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에 나와서 떠든 ‘잡담’으로 상당 부분 채워지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제 더 이상 뉴스를 통해 전달되는 사건들은 ‘터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능 프로를 중심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예부터 할리우드에서는 ‘가십을 지배하는 자가 할리우드를 지배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할리우드에 해당하는 현상이 우리에게는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일까요? 실로 뉴스가 만들어질 뿐 아니라 때로는 읽는 이의 구미에 맞도록 적절히 과장 또는 왜곡되는 현재의 모습이 한국의 인터넷 포털 뉴스에 서처럼 생생하게 드러나는 곳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제 뉴스는 더 이상 발생한 사실을 전달하는 통로가 아닙니다. 뉴스는 이제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창조의 영역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설혹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 주변의 자극적인‘스토리’입니다. 그리고 숨겨진 사건 주변 스토리들을 파내어 더 극적이고 더 흥미 있게 만들어 내는 것이 기자의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뉴스도 재미 있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어떤 뉴스가 진실인가 아닌가보다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 있는 뉴스인가에 뉴스의 가치를 결정하는 무게의 중심이 옮겨 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 전체를 휩쓸고 있는 이슈는 바로‘재미’라는 두 글자입니다. 예능 프로에 물든 한국 TV는 이 사실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재미에 대한 욕구는 다른 말로 하면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욕구입니다. 채우고 또 채워도 결코 다 채워지지 않을 재미 또는 엔터테인먼트의 욕구를 누가 남보다 앞서서 채우는가 하는 것이 그 어떤 곳보다도 치열한 경쟁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에서 생존을 약속하는 열쇠입니다.
‘제발 날 재미있게 해 줘. 틀린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도 지루한 것만은 참을 수 없어.’이렇게 외치는 우리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갑을 꺼내고 시간을 갖다 바칩니다. 재미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나의 정신마저 비우고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의 황당무계한 잡담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같이 웃습니다. 나와 함께 사는 가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는 모르면서도 어떤 탤런트 부부가 서로 방귀를 뀌면서 사는지 아닌지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합니까?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미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재미는 우리에게 결코 충족감을 주지 않습니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방귀를 텄다는 한 연예인 부부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충족감을 주지 않습니다. 또한 재미는 즉각적입니다. 충족감과 아무 관계가 없는 재미는 아무리 쌓여도 모이지 않습니다. 부어도 차지 않는 밑 빠진 독과 같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재미는 끝없는 반복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시간과 함께 재미는 점점 더 무뎌집니다. 다음 단계의 재미를 위해서는 더 큰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재미에 목마른 사회는 위험하고 얕은 사회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교육 방송만 보는 사회가 더 낫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균형입니다. 재미에 지나치게 편중된 사회는 필요 이상으로 심각한 사회만큼이나 위험합니다. 그러나 재미에 빠진 사회보다 더 위험한 곳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재미에 중독된 교회입니다. 이렇게 무서운 재미가 이미 오래 전 교회 안으로 파고들어왔습니다. 재미에 장악된 교회는 재미에 중독된 사회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치명적입니다. 교회 안에 파고든 재미가 주는 위험은 한국 사회를, 케이블 TV의 상당수를 차지한 예능 프로들이 주는 위험보다 더 무섭습니다.
날마다 예능 프로들만 보는 자신이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각종 예능 프로들을 다 섭렵한 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허무감만을 약속하는 이 재미가 교회로 들어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교회에서 느끼는 재미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고 심각 한 착각에 빠지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재미가 쓰고 있는 영적 가면들 때문입니다. 교회 속에 파고든 이 재미는 무서운 영적 가면을 쓴 채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재미가 남기는 각종 허탈감마저 중화시키는 힘을 발휘합니다. 그렇기에 사회 속의 재미보다 교회 안의 재미가 더 위험하고 치명적입니다.
교회 안에서 느끼는 재미는 무엇보다 감정적 흥분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흥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성령 충만, 성령의 기름 부음 등. 흥분으로 대표되는 교회 안에서의 재미가 하나님의 임재가 되고 성령 충만이 되며 또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탈바꿈합니다. 이런 가면을 쓴 채 교회 안에 스며들어온 수많은 재미 가운데 가장 선
봉장을 꼽으라면 우리는 서슴없이 오늘날 CCM으로 불리는 찬양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재미의 선두주자이자 교회 속을 파고든 엔터테인먼트의 맏형격인 찬양, 그 중에서도 CCM에 대한 책입니다. 2년 반 전『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처음 생각할 때 저는 교회 속의 엔터테인먼트를 구성하는 요인을 1. 음악, 2. 신비주의(이머징 처치, 관상 기도 등), 3. 은사주의(방언, 신유, 예언)의 세 가지로 정리했었습니다.
은사주의, 그 중에서도 방언을 공부하던 중 저는 방언이라는 주제 하나가 책 속에 일부로 들어갈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애초에『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의 한 부분으로 넣을 예정이었던 방언에 대해 아예 한 권의 책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방언은 이미 다루었기 때문에 저는 이번『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새롭게 준비하면서 은사주의를 빼고 음악과 신비주의, 두 가지 주제로만 이 책을 구성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방언을 공부하던 때와 동일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음악이라는 주제 하나만 다뤄도 한 권의 책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또한 사람들이‘엔터테인먼
트’라는 단어와 음악은 쉽게 연결하지만 엔터테인먼트와 신비주의 또는 은사주의와는 쉽게 연결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엔터테인먼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는 음악이라는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게 되었습니다(물론 크게는 음악이지만 작게는 찬양, 그 중에서도 CCM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신비주의와 은사주의에 대해서는 부족한 기독교라는 시리즈와는 별개로 자세히 다루고 싶습니다.
애초에 생각했던 주제가 두 개나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이라는 이 한 주제를 통해 우리는 교회 속에 스며든 엔터테인먼트의 위험을 너무도 생생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위험을 더 정확하고 심도 있게 보기 위해서라도 음악이라는 한 주제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지난 2년간 부흥과개혁사를 중심으로 신비주의와 은사주의에 대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를 파고든 음악에 대한 책은 불모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이 주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출발점이자 촉매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교회 속에 파고든 음악의 위험은 단순한 음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회 속의 음악의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예배의 본질에 대한 위협일 뿐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서는 구원이 무엇인
가라는 주제와도 연결되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결코 교회 속에서 음악을 몰아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우리에게 찬양하라고‘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찬양하지 않는다면 기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중대한 명령들 중 하나를 어기는 것입니다. 음악, 특히 교회 안의 음악은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지 교회 속의 음악이 원래 있어야 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속의 과도한 음악의 사용은 거의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물인 음악을 자기 자리로 되돌려야 합니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예배가 회복되고 예배 안에서 찬양이 바른 위치를 차지하며, 나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노래들 대신 하나님의 영광에 감격한 찬양들로 넘치는 한국 교회를 소망합니다.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가 나오고 거의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참으로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마음은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가 나온 후 가능하면 6개월 안에 이 책을 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준비하던 중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를 먼저 출판하게 되면서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긴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읽었던 여러 책들과 또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제게는 이 책을 준비하는 데 좋은 토양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를 표할 사람이 참 많습니다. 먼저 오랜 시간 인내를 가지고 이 책을 기다려 준 많은 분께 가장 먼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이 책의 늦춰지는 발간 때문에 여러 가지 마음고생을 한 부흥과개혁사 직원 분들에게도 미안함과 더불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가 나온 이후 지난 3년 사이에 제 개인적으로나 또는 사회적으로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 오늘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여전히 병마로 씨름하는 아버지와 그 곁에서 눈물과 땀을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수많은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버지의 병을 ‘잠시만이라도’ 고쳐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하나님께 쏟습니다. 단 1년 만이라도 건강한 모습으로 아버지가 사역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자식의 지나친 욕심일까요? 이 책 속에 배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제 열정이 두 분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지난 몇 년 간 여러 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삶에 최선을 다해 준 가족에게 따뜻한 감사를 전합니다. 항상 필요한 자극과 따뜻한 격려로 지난 몇 년 간 여러 부침을 겪은 제게 가족은 변함없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백 목사님과 김은주 사모님의 기도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두 분의 기도와 믿음 때문에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마이클 호튼과 관련한 백 목사님의 조언이 없었다면 이 책은 결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의 집필 과정은 백 목사님을 통해 제가 미처 몰랐던 많은 점을 깨달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몇 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지난 몇 년 간 꾸준히 기도하시며 저를 믿어 준 윤광무 형님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복음을 향한 형님의 열정과 교회를 향한 그 애정이 주님의 때에 가장 아름답게 열매 맺을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강규형 형님의 저를 향한 끊임없는 기도와 믿음에 감사를 전합니다. 게다가 규형 형님이 만드는 3P 바인더는 제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이정석 집사님의 사랑과 우정에 감사를 표합니다. 어른이 되면 좋은 친구 만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집사님의 우정은 제게 시간의 길이를 뛰어넘는 그 무엇입니다. 집사님이 꿈꾸는 ‘사람 사는 세상’이 빨리 도래하기를 저도 함께 바랍니다. 오랜 친구 김준환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삶의 의미와 ‘진실한’ 사랑을 향한 그의 열정은 제게 항상 신선한 자극입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그가 앞으로 세상에 내놓을 역작들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감사하고 싶은 분에게 제 사랑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나의 예수님!
예수님과 저는 분명히 압니다. 예수님이 제 곁에 계시지 않았다면 이 책은 애초에 시작될 수도 없었고 시작은 했어도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며 결코 마칠 수도 없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두가 나를 버려도 결코 내 곁에서 내 손을 놓지 않을 나의 예수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나의 보석, 예수님께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한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