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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2802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1-04-29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헤어밴드를 하고 데미안을 읽어야 해
불가피한 정원 10
2퍼센트 동화 12
데미안 읽기 14
바탕체 10포인트 16
유성우를 기다리는 동안 18
비행 일기 20
뒷소문은 얼른 눈이 덮었지요 22
아침이 되려면 칠십 리를 가야 한다 24
이면지 26
마분지 28
눈 감으러 간다 30
카사블랑카 애인들 32
제2부 그의 품사는 시의 대명사였다
웜홀 36
Pink Moon 38
물길 사이사이 바람 40
미슬토 42
井 44
수요일을 사러 간다 46
푸른 빛 하나 48
문명 농법 50
사유하는 TV 52
폐각근 54
시설(?雪) 56
제3부 이 별에서는 이별이 제외될까요?
케플러, 안녕~ 60
뒤를 묶다 62
어둠이 날아간 곳 64
산소리 66
보름달을 채집하다 68
디지털 지니 70
지지직거리는 정체 72
고양잇과 74
바다의 뿌리 76
빗장 78
바람의 볼트 80
모닝콜 82
지하와 지상의 차이 84
석류꽃 시집 86
제4부 동백꽃은 자기가 활자라고 우기고 있다
동백꽃 활자 90
선물 91
그날 베르겐에 비가 오지 않았다 92
무엇을 견뎌야 할지 몰라 그냥 춤을 춘다 94
한 바퀴 96
니느웨 씨앗 98
참 다르다 100
타워 크레인 101
울티마 툴레(Ultima Thule) 102
맞춤법 공부 106
이사 108
이발사가 되었다 110
▨ 김은후의 시세계 | 조대한 112
저자소개
책속에서
2퍼센트 동화
태초에 술 한 모금이 있었다
촘촘히 밀봉해도
빠져나가는 2퍼센트의 취기가 있다
지고 가지는 못해도 마시고 가라면 다 마실 수 있다던 작은 아버지의 변명
술버릇을 만나는 순간
불콰한 흥이 되기도 온갖 욕설이 되기도 하지
벌겋게 달아오른 광기 속, 가끔 제정신이 들 때도 2퍼센트라 하자
비가 오고 우묵한 데 물이 고였다 버찌가 떨어지고 2퍼센트 주정이 숨어들었다 사슴이 와서 불안을 마시고 갔다 뿔이 한바탕 노래를 불렀고 노래에선 진한 벚꽃 냄새가 났다 동무들 데려와 홀짝홀짝 들이키고 궁둥이를 맞대고 춤을 추었다 구름으로 잘 덮어두고 다시 찾은 주점에 술이 사라졌다 뿔들은 구름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건 천사의 몫이야
다시 비를 기다리고 버찌를 기다려야 해
한 해를 기다리라고!
뿔들은 뛰어가며 술,술,술 했다
마지막까지 술이 가득 차 있던 작은아버지 몸에서
생전이 빠져나갔다 우리는
누구도 만나지 않은 발효 기간과
선량한 2퍼센트와
취기의 독과
천사의 몫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무엇을 견뎌야 할지 몰라 그냥 춤을 춘다
산골 마을에 댕댕이들이 하나둘 죽어 나갔다
옆구리 상처에 큰 짐승의 이빨 자국이 역력했다
작은 몸뚱이에 피가 흥건했다
동네는 연일 수런거렸다
산 쪽 김 씨네 풀어놓은 큰 개가 그랬다는
새벽녘 똘이를 물고 가는 흰 짐승을 향해
놓지 못해!
소리치자 떨어뜨리고 달아났다
똘이는 수술 후 집 밖을 나오지 않는다
예쁜이는 김 씨네 산 근처에서 사체로 발견되었고
보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피투성이로 죽어 있었고
주인 내외 허리 수술하러 간 뒤 꼬맹이는
빈 집 지키다가 새벽녘 현관문을 긁어대었으나
결국 옆구리를 물려 반죽음이 되어 있다
흰 짐승에게 물리지 않은 댕댕이는 동네에 없다
용케 짐승 이빨 사이에서 빠져나온 겨리는
헛신음으로 새벽을 찢는다
산골 바깥세상에는 고삐 풀린
마이크로 짐승 같은 것이 사람들 호흡기를 물어
두문불출의 명령이 떨어지고
겨우 집 밖에 나갈 일이면 마스크를 쓰고
집안에서 헛신음으로 뉴스를 찢는다
지켜줄 주인을 찾는 현관문 긁는 소리가
산골에도 산골 밖에도
비밀처럼 전염되고 있다
부메랑은 되돌아온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우리
무엇을 견뎌야 할지 몰라 그냥 춤을 추고 있다
이면지
내 등을 본 적이 없는 나는
가장 많이 내 등을 본 아이에게 물어보기로 한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한다잖아
나는 나의 안부를 한 번도 내게 물어본 적이 없어
원래는 없던 이면
구분하는 일은 참 간단하다
반으로 접든지, 기호를 풀어놓으면 되지
이면이 없다는 것은 비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일까
알만한 기호가 없다는 것일까
이면지에 시를 인쇄한다
남편이 준 이면지 앞면에는
먼 곳의 여행계획서가 한가하고
마흔세 줄, 아홉 칸에 숫자와 글자가 빽빽하다
이면이란 든든한 뒷배일까
하찮은 후면일까
등이 굽은 어머니는 더 접히지 않으려고
종종 뒤로 젖힌다
접힌 부분이 안쪽이라면
중요한 것은 안쪽에 놓는 법이라면
어머니의 이면은 업어 키운 곳이고
어머니의 안쪽은 먹여 살린 곳이다
일방적으로 접히는 나이들은
텅 비어서 이면이 없을 것 같지만
앞도 뒤도 아닌 그저 온 마음이 이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