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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58967161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25-10-30
책 소개
목차
제1부
크레이터•13/빵의 모양•14/굴절•16/그 뒤에 내가 서 있어•18/등 돌린 집들•20/눈치•22/빨래방 옆 빨래방•24/포장이사•26/앞서가는 것들•28/서북쪽으로 밀리는•30/틈은, 반드시•32/앵무새와 부사•34/산책(散冊)•36/새들은 다리를 언제 쓸까•38/60초 후, 딱따구리처럼•40/무더운 피•42/찬물이 식는 동안•44
제2부
교차•47/파 냄새•48/날짜변경선•50/안녕하세요•52/그러면, Fe•54/잼 만들기•55/지문•56/너는 어떻게 부드러워지니?•58/다이어트•60/인디언 감자•62/상자들•64/손을 흔들면•65/보상마을 미스터 제페토•66/페이지•68/호두나무 소식•70/우리는 모두 혼자 죽는다•72/집중•74
제3부
수요일 물요일•77/예쁜 엄마•78/전부와 많음•80/자각몽•82/발아 프로그램•84/이동 제한•86/불온한 식욕•88/새 연•90/빗장 2•91/손•92/파리의 저녁•94/사각의 유효기간•96/말없음표•98/의문•100/봄 통장•102/울음•104/묵언•106/깨진 글씨•108
해설 문신(시인·문학평론가)•109
저자소개
책속에서
몸에 별똥돌의 흔적이 있습니까 어떤 질병이나 실패는 불타는 별과 같지만 출처가 소행성대가 아니라 세상이고 또 대부분 예상치 못한 충돌이었으니 흉터는 필연으로 풍화되었을 겁니다 겨우 쏜살같은 속도로만 빛나는 별똥별은 어디에 떨어지건 움푹한 깊이를 갖게 됩니다 별똥별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느릴 것입니다 그러니 미래로 갈 수는 없겠습니다 사과나무 밑엔 불시착하는 여름이 있습니다 파랄 때 가장 무거울까요 빨간색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모든 낙하가 동일한 품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름일 때 가장 잘 보인다는 달의 크레이터, 흉터는 언제 가장 잘 보일까요 누구나 제빛을 태우며 살아 있지만 무거운 곳과 가벼운 곳은 사선과 직선으로 다릅니다 무중력에도 저쪽은 있고 충돌할 때 얻은 것은 아마도 가장 낮은 무게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별똥돌의 주인일까요 우주일까요 빛일까요 크레이터일까요 동심원상으로 흩어지는 파편 같은
― 「크레이터」 전문
우리 집 사람들은
연습 따위는 모두 앵무새에게 시켜요
열쇠나 현관 비밀번호 같은 말투를
앵무새의 부리에 걸어놓고 다닙니다
앵무새는 말을 가려 하지 않아요 우리 일상의 시놉시스를 부리에 맡겨놓은 것처럼 툭툭 흉내로 읽어냅니다 아이가 되었다가 할머니가 되었다가 잔소리가 되기도 해요 구강 구조가 비슷하거나 같으면 그 어떤 말도 흉내 내는 겁니다 고작이란 부사가 적절하겠지요
비슷한 것은 흉내 내는 것과 같을 것일까요
나팔꽃과 메꽃 누가 누구의 무리 속에 끼어들고 싶은 걸까요
모른 척해 달라는 것일까요
할머니 보내준 팥 속에 메꽃 씨앗이 섞여 있어요
메꽃 씨앗이 난민 흉내를 내는 겁니다
‘나 좀 받아줘’일까요
‘모른 척 해달라’는 걸까요
이럴 때는 고작보다는 부디가 적절하겠지요
할머니가 밭에서 메꽃을 몰아냈어요
난민 난파선이 과적으로 침몰했다고 합니다
이때 쓸 수 있는 적절한 부사를 찾고 있습니다
― 「앵무새와 부사」 전문
골목엔 지정과 비지정이라는 히스테릭한 규정이 있어
차와 차 사이, 차와 담 사이
끼어 있는 깻잎 한 장
나는 키보드와 상상력 사이를 좋아해 틈 사이에 두꺼운 이야기를 얇은 문장으로 배치한다든지 또는 물기 뚝뚝 떨어지는 직유를 몇 볼트의 전기가 묻은 자판으로 식자하는 일 같은
이상해
자꾸 부딪히는 글자들을 모았는데
주차된 문장이 왕창 구겨질 때가 있어
알다시피 문자는 구겨지지 않아 다만
기술(記述)의 방식을 구기고 펴는 것은 실력이라 하지
편파적 백미러를 믿은 것이 잘못이었어
모든 장소는 선점으로 반듯해지거나 삐뚤어지는 것을 알아야 해
흰 천을 덮어놓은 궁금증을 휙 걷어버린 듯한
지정된 장소들과 사이, 그 사이들
남은 글자들로 식탁을 차리려고 고기를 샀어 고깃집 주인이 쌈을 먹을 때 깻잎을 뒤집어 먹으면 부드럽다고 했어
사이와 사이가 부드러워져야 하니 아니면 사이들이 부드러워져야 하는 거니
뒤집지 않은 한쪽은 지정일까 비지정일까
부드러움은 어느 쪽이든 다 배울 수 있어야 하잖아
그러니, 중간쯤이라 말하면 곤란해
한쪽은 다른 한쪽을 규정하니까
― 「너는 어떻게 부드러워지니?」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