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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프 씨, 안녕하세요?

스탬프 씨, 안녕하세요?

오덕순 (지은이)
한국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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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프 씨, 안녕하세요?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스탬프 씨, 안녕하세요?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3823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5-04-25

책 소개

화자는 가독성 높은 일반적인 수준의 생활 언어를 활용하면서도 단어의 선택과 문법적 요소의 결합에 있어 기묘한 개성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화자가 전달하는 ‘말’, 문장은 개별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별다른 특이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연을 이루고 작품을 구성하는 순간 기묘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나에게 돌아오는 나에게

날아가는 1초 10
줄기 속을 지나가는 11
나에게 돌아오는 나에게 12
목구멍 속의 앵무새 14
블랙홀 16
오감의 싱크홀 18
파우치를 이해하다 20
단 한 줄 22
생각을 주고받았지만…… 24
내 정수리 위에 26
하루가 가을의 빛으로 28
눈의 눈은 젖은 눈이다 30
25시의 달 32
0.1초의 응시 34

제2부 스탬프 씨, 안녕하세요?


맑은 날의 스카이라인 38
보도블록을 깨다 39
오늘의 무늬 40
나는 보건소에서 탁구공처럼 42
먼지의 방 44
스탬프 씨, 안녕하세요? 46
그림자를 스캔하다 48
블라인드 뒤에서 낮달이 뜨다 50
그 많던 호랑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52
뻐꾸기가 된 우울증 54
터널증후군 56
제로섬 58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60
자기 고백의 저녁 불빛 속에서 62

제3부 식물성의 어둠 속에서


유리병의 몸속에서 66
예각을 버리다 68
사각 이중 유리창 너머의 저녁 70
식물성의 어둠 속에서 72
연보랏빛 메일을 날린다? 74
번호 인간의 비밀 76
마스크의 방식 77
비대면으로 호젓해지는 사이 78
꽃의 작화(作話) 80
해마 속 검은 꽃 82
언제 또 올 거야? 84
하하하, 웃음치료사와 함께 86
착시 88

제4부 파워포인트, 물수제비 뜨다


육(肉) 92
파워포인트, 물수제비 뜨다 94
꽃잎 풍선 96
생활 다이어리를 넘기다 98
뭘, 골똘하세요? 100
탁상이 좋아요 102
나는 커튼을 바꾼다 105
터널을 지나가는 스크린도어 106
블랙 프라이데이 108
아침뉴스의 채널을 돌립니다 110
해가 바라보고, 꽃이 뒤돌아보아요 112

▨ 오덕순의 시세계 | 임지훈 114

저자소개

오덕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울산시 울주군 출생. 서울여자간호대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병원행정 석사. 1980년부터 2005년까지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간호사. 2006년부터 2023년까지 보건소 금연클리닉 금연상담사. 1983년 『간호사신문』 제6회 간호문학상 당선. 2007년 『시사사』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2019년 제5회 시사사작품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어느 섬의 나이팅게일』이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스탬프 씨, 안녕하세요?

그들은 물고기 모양을 A4용지에 찍고 있지요.
문서의 물고기는 어항 속의 금붕어를 닮았나요.
그날의 그들은, 그들만의 날짜를
한 손에 꿰차고 있지요.
아라비아숫자로 나열된 지느러미가 팔다리를 흔들어요.

그들은 자기들만의 작은 무늬를
자신을 닮은 그들만의 금붕어를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그날만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풀어놓지 않아요.

당신의 형상을 드러내는 상징물을 만들어보아요.
구체적인 서술어를 간략하게 해요.

금붕어는 새가 될 수 있나요.
날짜를 까먹은 당신은, 당신의 나이를 까먹어버렸나요.
어항 속에서 수평지느러미를 휘젓는 물고기는
비행기처럼 날아갈 수 없나요.

물속을 유영할 수 없는 모형 물고기와
하늘을 날 수 없는 모형 비행기 안의 그들은,
시간을 소모하며 날짜를 넘기고 있어요.
당신의 표정 없는 얼굴을 본뜨지 말아요.

그녀는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낙서를 남겨요.
안녕하세요? 당신은 말없이
그들의 자기들은 서로를 닮을 수 없는 작은 무늬들
어제를 지우고 오늘의 날짜를 찍고 있어요.


식물성의 어둠 속에서

문을 걸어 잠그면
방안은 다른 불빛으로 채워진다.
벽을 타고 뻗어가는 줄기를 잘라내도 한층 더 푸른 잎을 펼친다.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갈 때까지 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는
잎처럼, 빛은 사람의 정신을 곧추세운다.

구부러진 등에 흘러내리는 불빛은, 발을 빠뜨린 깊은 구멍 속으로
희미해진 그림자를 끌고 사라져간다.

유리 창문에 심장을 대고 톡톡 두드리는 노크 소리,
창밖의 소란을 잠재우고 방안의 고요를 뒤척거린다.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는 숨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온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기척에 온몸이 젖는다.
정수리 위에 홀로 반짝이는 빛 한 점으로
두 눈을 안대로 가린 한 사람의 뒷모습과 마주친다.

붕대를 동여맨 나뭇가지의 귀에 걸린
서로 잡을 수 없는 손을 맞댄 유리창을 바라본다.
거울 속 어둠으로 밀봉된 얼굴,
진홍빛 잔광을 지우는 블라인드 뒤에 숨는다.

노크하지 않는 창문을 달고
여닫을 수 없는 시간이 신발을 벗는다.


줄기 속을 지나가는

자꾸자꾸 나는 휘어지고 꺾어진다.
지금 껍질 속의 나와 결별하는 순간이다.
물컹거리는 내피의 감촉은 출렁인다.

빌딩의 각이 서로 교차점에서 미끄러진다.
하늘정원은 소리 없이 흐르고
나무의 물관은 한때 슬픔이었던 물방울을 길어 올린다.

초롱초롱 눈망울은 새로움으로 반짝반짝 떠오른다.
연초록 바람은 멈추지 않는 끝없는 움직임이다.
햇볕과 어깨를 맞댄 나뭇가지를 쓰다듬는다.

당장 사라지는 나의 일각과 맞닥뜨린다.
검은 머리카락은 어둠을 삭인 빛의 흔들림이다.
그늘을 지우는 뜰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다.

몸을 던지는 봄볕의 결말은 슬프지 않다.
마음의 둘레에 눈빛을 꽂는다.
마지막은 늘 처음의 길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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