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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1043830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5-06-05
책 소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양남 주상절리에서 10
어머니의 동화 11
모든 육체는 다 풀이다 12
낮은 굴뚝 14
오디나무 아래 그늘 16
조각가 K 18
만취晩翠 20
수樹수水카페 옆에 청보리가 피어 있었다 22
학의 걸음으로 새벽이 돌아온다 24
비자림 산책 26
석류꽃 28
별을 잡는 소녀 30
내원사 세진교洗塵橋 32
푸른 말 34
곶감 할매 36
숯 38
문자 40
제2부
깃털의 암호 42
오래된 빈집 44
오미크론 46
마지막 선물 48
향일암 햇살 경전 50
낙장과 낱장 52
수많은 길 중에 54
낙타를 찾으러 56
촉촉한 꿈 58
가마우지 59
셰넌도어 폭포 60
삼포해변 해돋이 61
천태암 62
뛰어라 63
슬픔 포식자들 64
그림자 66
제3부
바다 경마장 70
업히라 가자 72
유월의 텍사스 74
오코콴강 올드타운 76
미루나무 숲길을 지나 78
민들레 홀씨 80
명상의 숲 81
도토리 애벌레 82
거미의 곡예 84
횡단보도 86
나의 고도를 찾아서 88
세미원의 연밥들 90
동주의 골목 92
코카야마 합장마을 94
하늘을 우러르다 96
꿈속에서도 꿈꾸는 98
제4부
능, 선덕여왕 100
알펜루트의 숲 102
천전리 각석계곡 104
호수와 잿빛 오리 105
가랑잎 초상화 106
그 섬에서 107
고령 대가야 유적지 108
대숲 109
옹달샘 110
봄비 111
텍사스 피칸 나무 112
▨ 박분필의 시세계 | 최준 113
저자소개
책속에서
모든 육체는 다 풀이다
― 제주 샛별오름에서
바람과 빛의 파노라마 속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오르는 샛별오름
파도가 푸른 바다를 소용돌이치듯 하얗게 펼쳐 보이는 억새꽃 물결
빛 너머에는 또 다른 빛이 있었고 바람 너머에는 또 다른 바람이 있었다
포효하며 흐르는 바람강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물살이 어딘가 먼 곳으로 나를 실어 갈 것만 같아 나를 바닥에 가라앉힌다
휘파람 소리에 눈을 뜬다 휘파람의 이랑과 골에 뭉텅뭉텅 남아 있는 묵직한 통증들 온몸을 휘저어 온다
마치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처럼 또 다른 바람이 불어오면 정월 대보름의 들불 축제
이곳은 다 불길에 휘감길 것이고 까맣게 타버릴 것인데 죽음의 씨앗처럼 심어진 저 봉분도 싹틀 수 있을까
새롭게 피어날 날개들이 부활의 춤을 춘다 하얀 억새꽃과 보라색 하늘에 감도는 깊은 침묵을 메워 줄
모든 육체는 다 풀이다
향일암 햇살 경전
붉은 해가 나뭇가지에 걸리자
나뭇가지에 걸린 오늘이
살금살금 가지를 타고 내려온다
햇살의 발길에 몰려 한 발 한 발
뒷걸음질 치던 밤이 꼬리를 말고 달아난다
떠나온 곳과 떠나갈 곳의 경계
울고 웃었던 기억의 사이
참이면서 참이 아닌 저 그림자
꿈이 실려 있는 내 생의 연속이 또 다른
시간으로 길을 내는 중이다
내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고
정지하면 따라 정지하던 내 그림자
바위 속 그늘에 숨어버렸다
뒷모습뿐인 구름과
모습 없는 바람이 그늘 속을 통과하고
햇살과 바람이 관음전 앞 나무에 세월을 새기는 동안
나무 밑에 떨어진 붉은 동백을 새들이 쪼는 동안
고향 냄새는 참 참기가 힘들던지
햇살 경전 한 질씩 등에 싣고
돌산 앞바다를 향해 턱 괴고 있는 돌거북들
매번 마음만 먼 곳까지 다녀오는
세미원의 연밥들
꽃은 이미 다 지고
진흙 연못 빽빽이 서 있는 연밥들
마치 대꼬바리 가득 담배를 채운
장죽을 닮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긴 담뱃대를 물고
뻐끔뻐끔 근심을 뿜어낼 때마다
문풍지가 바르르 떨던 그때처럼
늦여름 열기를 내뿜고 있는 연밥들
너는 푸른 혁명을 갖춘 씨앗이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감시관이
눈치채지 못하게
백동으로 된 대꼬바리에는 태극무늬가
새겨져 있었지
있는 듯 없는 듯 새겨진 태극무늬는
초당에서도 사랑채에서도 수많은
남녀노소 민초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애국의 줄기는 숨은 개울이 되어 스며들었다
아름답다
밤낮으로 온몸을 떨었던 매서운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은
세미원 가득 핀 풀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