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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8151208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5-08-08
책 소개
목차
서문 | 정복선
신神들린 마술의, 태초의 순수純粹한 시간을 넘보다·4
김현지
불이문不二門 지나며·14
세한도歲寒圖·15
연어 일기·16
만어산萬漁山·18
봄길, 수채화·19
빗장·20
2025 만화경·21
꿈, on, off·22
박분필
자작나무 자서전自敍傳·26
목련붕대·28
낡아가는 그늘·29
청동의 손·30
가거도佳居島 이야기·32
파웅도우 불상·34
파노라마언덕·36
계단·38
우정연
괜찮다·40
등짐·41
입학다완立鶴茶盌·42
모란이 피고 지는 사이·43
연을 심다·44
방생·45
대자보大慈報·46
먹대·48
유동애
복사꽃길·50
꽃·51
목련애사·52
봄날·53
토란을 심으며·54
관음전 가는 길·56
고향바람·57
쪽파·58
이보숙
등나무·60
백로가 사는 법·61
새와의 대화·62
섬초롱꽃 사랑·63
엄마는 선생님·64
우주를 돌리는 손·66
은행나무 실록·67
잃어버린 반달·68
이섬
이섬 선생님께·70
붉은 씨앗의 노래·71
안개를 그리다·73
작명료·74
하현달·75
허물을 벗자·76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77
또 다른 소통·78
이혜선
유사비행·80
차마고도·82
프르프록의 밥숟갈 연가·84
환생, 허난설헌과 프리다·85
다이옥신을 배다·88
늙은 독수리 일기·90
시계 소요유逍遙遊·92
그 기도 덕분에·94
정복선
여유당與猶堂 시편·98
어버이날·100
그는 푸른 도라지꽃·101
정원의 원형을 복원한 사람·102
트라우마·104
지례예술촌의 추억·106
담다, 청우산·108
백조자리 캠핑·110
주경림
빗방울 못자리·112
갈대 손, 복조리·113
느티나무 상모돌리기·114
보석사리 만화경·115
사슴 모양 뿔잔 토기·116
천경자의 「생태」·117
장미 무덤·118
버력,·120
해설 | 황정산_서정의 숲을 거닐며·121
유유동인 주소록·140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문
신神들린 마술의, 태초의 순수純粹한 시간을 넘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해가 뜨지요.
46억년 된 지구에서 거의 비슷한 나이의 태양을 만나는 거지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한반도는, 시생대로부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까지, 화산폭발과 대륙 간의 충돌 및 이동 또 지각변동을 거쳐 무려 30억년 동안 형성되었다 하고,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도 자전하는 한편, 이 태양계의 행성들을 모두 데리고서 우리은하의 중심부에 묶인 채 약 2억5천만년 주기로 공전하고, 우리은하조차도 이동하고 있다는, 전혀 실감 안 나는 이야기는 잊고 삽니다.
이리 늙으신 지구에 날마다 새로운 풀이 돋아나고 어린 나무들이 자라나고 다년초가 꽃망울을 맺고 일년초도 뒤질세라 핍니다.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의 조합 혹은 조화야말로 이 지구를 기운생동하게 하는 원동력이겠지요.
봄날입니다.
꽃밭에 꽃나무를 심었을 뿐인데, 난데없이 허공에서 꽃망울이 펼쳐지는 순간의, 나비와 벌들도 함께 벌이는, 나풀나풀 신神들린 마술을 봅니다. 문득, 태초의 순수純粹의 시간이 열리는.
나 기다리고 있으니
그대는 와야 하리
놓쳐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이런 날에는
“초대”- 「이스탄불을 위하여」에서(오르한 웰리 카늑)
어느 날 책상머리에 ‘포스트잇’으로 붙여놓고 기도문처럼 읽던 시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쓰는 모든 시는 기도문이고, 현생의 오류를 고치고 싶은 참회문이기도 합니다.
봄이 오기 전에 참 많은 일들이 이 세상을 휩쓸고 있었지요.
불확실한 미래,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되풀이되는 말이겠으나, 앞 세대의 공덕과 현 세대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미래가 불안스럽기만 하군요.
내우외환內憂外患 속에서도 우리는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고 타인들에 대한 공감 내지 연민 없이 하루를, 또 일 년을 속절없이 넘겨버리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시를 쓰며, 삶의 비탄과 기쁨을 중화시키고, 혐오와 아름다움을, 또 우울과 도약을 조율하여 노래함으로써, 생존자체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씁니다.
시인은 언어를 초월하는 이미지를 창조함으로써 그 본성을 회복시키기에, “언어의 봉사자”(옥타비오 파스, 『활과 리라』)라고 합니다. 언어를 순화하는 것이 시인의 과제이고, 시 속에서 일상 언어가 구속을 벗어나서 원초原初의 상태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유유 동인〉은 2016년 4월 12일에 결성되었습니다.
자유로운, 동시대의 도반道伴으로서, 소통과 교유를 통해 주어지는 시간까지 우리가 지향하는 바, 유유하게, 유장하게 시를 쓰고자 합니다.
아직은 시인으로 견디고 있다는 것, 지구 한구석에 꽃나무를 심는 것은, 꽃과 더불어 나비와 벌들을 초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연이라는, 신神의 눈부신 마술에 참여하듯이, 시도 지구상에서 꽃나무로 존재함으로써, 동인들끼리 서로서로 나비로서, 벌로서, 초대하고 초대에 응할 수 있길 원합니다. 고적孤寂이나 불안의 구름층도 가벼이 통과하여 건널 수 있길 원합니다.
유유 동인의 첫 회장은 이혜선 시인이, 2대 회장은 이섬, 3대 회장은 정복선, 그리고 이제 4대 회장은 박분필 시인이 맡고 있습니다. 그간 2권의 동인지, 『깊고 그윽하게』(2020년, 시와 표현)와 『날마다 피어나는 나팔꽃 아침』(2022년 5월, 도서출판 지혜)을 상재했습니다.
이번에 3년 만에 제3집을 묶으면서, 가신님 이섬 시인을 추모하는 슬픔이 큽니다. 새로운 임 우정연 시인과 유동애 시인을 맞이한 설렘도 있지요.
김현지, 박분필, 우정연, 유동애, 이보숙, 이혜선, 정복선, 주경림.
이 여덟 시인들이 유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채로운 꽃잎들을 펼쳐 보이려 합니다.
2025년 오월의 무량함 속에서,
정복선 절
불이문不二門 지나며_김현지
도끼 하나로 지은 집, 못 자국 하나 없이
단아한 짜임새 어디에도 틈 없이
겹처마 단층 팔작지붕 대패로 밀고 끌로 파서
나무와 나무끼리 단단히 여며진 한 몸
통도사 불이문
그 몸속 지나며 생각한다
내 몸 어디 한 곳, 바늘 한 땀 뜨지 않고
하나로 지어내신 그 분 누구시던가,
이른 봄, 저 부신 햇살 안고 내게로 오는 것들
내게로 와서 네가 되고 내가 되는 것들
不二, 不二, ....
자작나무 자서전自敍傳_박분필
자작나무 숲속에 들어서자
반듯하게 갖춰진 지필묵부터 먼저 보인다
눈부신 백지 한 장이 바닥에 깔려 반짝이고
명암이 깊은 하늘에 자작나무 붓끝이 막 묵墨을 찍는 중이다
붓을 떼자 기러기 한 마리
깃털에 묻은 먹을 털고 푸른 하늘로 날아오른다
쭉쭉 곧게 세워진 붓대들의 연결 사이로
가득한 여백의 연결이 도드라져 보이고
붓과 여백이 마음껏 필묵의
자유를 누리며 작품을 자작自作하는 중이다
먹을 갈고 붓을 다듬는다
찍고, 긋고, 맺기를 반복한다
자작나무 숲 백지 위에
구김 없는 또 한 장의 백지를 반듯하게 펼친다
자작자작 찢어 흩뿌리는
파지조각이 내 어깨에 하얗게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