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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88961221603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09-09-28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조선과 명의 살수들은 삽시간에 공황 상태에 빠졌다. 무섭게 타오르는 화염 기둥에 둘러싸인 그들은 우왕좌왕했다. 겨우 그 불기둥을 빠져나온 병사들도 무참히 일본도를 휘두르는 일본군에 의해 목이 달아나기가 일쑤였다.
이에 송응창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순화는 무심한 표정으로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그도 몰랐다. 지휘 체계가 문란해진 탓에 도통 명을 내려도 씨도 먹히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적의 후면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연기가 피어오른 지점부터 도미노처럼 왜군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음?”
순화군은 넋 잃은 표정을 거두고 전황을 찬찬히 살폈다. 확실히 적에게 무슨 불상사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적군은 이전보다 더 술렁거렸다.
‘대체 무엇 때문에 저들이 동요하는 거지? 더 살펴봐야 알 것 같다…….’
산등성이에서 갑자기 뱀의 눈이 그려진 깃발이 아닌 사뭇 다른 문장이 새겨진 수많은 깃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바탕에 아로새겨진 검은색 십자가…… 고니시의 문장이었다!
그 군대는 애벌레가 잎을 갉아 먹듯 가토군의 후면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좋다! 속히 아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려라!”
한창 화공에 흠씬 두들겨 맞고 있긴 했지만 최대한 그들로 하여금 공격에 돌입하게 해야만 했다. 지금 상태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오오, 분열인가!”
송응창도 한 가닥 희망을 잡았다는 사실에 감격해하고 있었다.
화공에 휩싸인 아군도 그들을 포착한 듯했다. 그 때문인지 뜨거운 화염으로 타오르는 바리케이드를 죽음을 무릅쓰고 빠져나오려 애썼다.
그 결과, 상당수의 군사가 빠져나오게 되었다. 먼저 죽음을 불사한 몇몇 병사들이 빠져나오자 그들을 따라 대다수의 병사가 애를 쓰며 탈출한 탓이었다.
일단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빠져나온 병사들은 더욱 억세져 있었다. 이젠 정말 말 그대로 결사항전하게 된 것이다. 압도적인 승세를 이어 가던 가토군이 갑자기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앞뒤로 밀고 들어오는 탓에 도리어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순화는 이 기회에 적을 찍어 누르고자 본군의 군사를 탈탈 털어 내려 보냈다. 이 기회에 적을 잡지 못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명을 내리고 관전에 열중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말을 탄 사내 몇몇이 달려오고 있었다. 고니시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을 등에 달고 펄럭이고 있었다.
고니시였다.
“오오, 고니시 장군!” - 본문 중에서
에스파냐 본대는 일자진을 형성하고 마구 달려들었다. 돛과 노를 동시에 단 평저선인 판옥선의 경우엔 방향 전환이 용이하고 진형을 갖추는 것이 쉬웠다. 그래서 원 역사에서 이순신의 연안 함대는 학익진을 구사할 수 있었다.
허나 에스파냐의 주력 함선인 겔리온은 범선으로, 노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한 곳을 집중 공략해야 하는 이때에도 에스파냐 함대는 일자진을 형성한 채 비효율적인 공세를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양쪽 끝의 함선은 포격을 하고 싶어도 포문을 닫아야만 하는 상태였다.
확실히 안개가 짙게 깔리고 거기다 희뿌연 연기에 휩싸인 물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귀선이라 규정한 물체에 대규모 포격을 가했다. 포연까지 허공을 뒤덮어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었다.
“사정 봐주지 말고 계속 포격하라! 적군이 닿기 전에 완전히 침몰시켜!”
제독을 비롯한 각 함선의 장령들은 연거푸 소리를 지르고 지휘도를 내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여기에 포탄을 나르고 쏘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제독은 짠 내가 가시지 않은 바닷바람에 흰 수염을 휘날린 채 땀조차 뻘뻘 흘려가며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한참을 포격했지만 적군으로부터 답은 없었다. 이때쯤 되면 더욱 진한 연기를 흘리며 마구 포를 쏘고 좌충우돌해야 정상이었지만, 적은 어찌 된 영문인지 잠잠했다.
“벌써 침몰했나?”
제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귀선을 대하는 그로선 귀선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지 못했다. 동승한 한 명국 장수가 뿌연 안개 속을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그도 영 찜찜하다는 말투였다.
“글쎄요……. 벌써 침몰할 리가 없는데…….”
“당최 보이질 않으니!”
마침내 그 작은 선체가 전소(全燒)되었다. 그리고 연기가 걷힌 바다에는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았다. 제독의 주위에 군집한 명나라 장수들은 눈을 멀뚱히 뜬 채 껌뻑거리며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가라앉은 것인가? 한데 나뭇조각만 보이고 철갑은 보이지 않으니……. 어찌 된 영문인고?”
제독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심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젠장! 감히 나를 농락하다니……. 용서치 않겠다!”
- 5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