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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63572420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0-08-15
책 소개
목차
1. 외래신화의 소용돌이
2. 일제강점기의 우화
3. 덴노헤이카의 영장
4. 대동아공영권의 부도수표
5. 해방공간의 이전구투
6. 좌익과 우익의 분란
7. 삼류 이데올로기의 폐해
8. 국군과 인민군의 허와 실
9. 자유와 평등의 사상누각
10. 민족 정통 신화의 태동
작가의 말
책속에서
영우의 입장
“공산주의란 문자 그대로 모든 재산을 공동의 것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세계의 역사는 재산을 어느 특정 계급에 속한 사람만 독차지했기 때문에, 사회가 불안했고 갈등과 고통에 찬 생활을 강요받아왔습니다. 또 문화적 혜택은 그들 재산을 가진 사람만 누렸기 때문에, 재산을 갖지 못한 대다수의 무산대중은 도둑질과 협잡 사기 등의 범죄에 연루되었습니다. 조선조는 양반들만 재산을 독차지하여 일반 백성은 밥을 굶고 살아야 했어요. 조선이 일본에게 그처럼 쉽사리 나라를 빼앗긴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봉건왕조가 소멸한 뒤에도 옛날 왕족이나 양반이 누렸던 모든 권세를 재산가들이 누리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요즘의 재산가는 과거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번영을 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현대판 양반이고 귀족입니다. 일제강점 후에는 일본 놈들이 귀족의 자리를 차지하여 모든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내가 취직을 하려면 편지 한 장이면 할 수 있어. 그러나 난 시세에 따라 오늘을 사는 남자가 아니고 내일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이야. 지금 내가 뿌리고 있는 씨앗은 앞으로 오 년 후에 싹이 틀 것이고 십 년 후면 곡식을 거두어들일 수 있을 거야. 그 곡식이 내가 아닌 아들 상민이 거둘지라도 나는 씨를 뿌릴 거네. 상민은 곧 우리의 내일이니까. 또 내 포부가 실행되지 않아도 좋아. 노력하는 그 과정으로 만족해. 현실과 부딪쳐 난파할지라도 그것이 차라리 안이한 평화보다는 가치가 있다고 봐. 공산주의는 덴노헤이카를 몰아내는 가장 확실한 이념이며 조선의 독립과 번영을 가져다줄 유일한 사상이야!”
한우의 입장
“과거 오천 년 동안 못난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 준 것이 무엇이죠? 일본에 합방된 나라밖에 준 것이 없어요. 나는 이 한일합방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에 복속된 것과 같아요. 우리나라는 땅덩어리가 너무 작습니다. 조선 반도만으론 국민에게 영광을 줄 수 없습니다. 요즘 소위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병처럼 나돌고 있는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사해동포주의니 하는 것들 모두 잘 살기 위한 방법에 불과해요.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굶주리기보다는, 일본에 속하여 격양가를 부르면 족하다고 믿어요.”
“형님은 엉뚱한 말을 하고 있어요. 자기 앞도 닦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양 여겨, 모든 사람의 불행을 걱정하는 것은 건방지고 주제넘은 생각입니다. 한일합방 때문에 우리가 남폿불 아래 살 수 있는 것이고 편한 양복을 입게 된 겁니다. 단 하루 만에 경성을 갈 수 있고 기차와 버스가 달리고, 앉아서 멀리 있는 사람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이것 모두가 누구의 덕이에요? 덴노헤이카의 은혜입니다.”
정우의 입장
“형수님은 나더러 역적이 되라는 말씀입니까? 우리 집안에 역적은 한 사람으로 충분합니다. 그런데 나까지 기피를 하면 역적이 두 사람이나 되잖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죄가 바로 반역죄라는 죄입니다. 나는 역적이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공산군을 죽여야 합니다. 큰형님이 공산주의자였지만 공산주의는 사람을 영혼이 없는 기계로 만드는 고도의 논리체계를 가진 미신입니다. 공산주의는 곧 새로 만들어진 하느님입니다. 이십 세기에 날조된 유령이 나타난 겁니다. 내일이면 정든 집을 떠나 전선으로 갑니다. 피를 흘려서라도 자유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사람이 이 지구 상의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형수님들은 아세요? 그것은 바로 형수님들이 그렇게도 못마땅해하는 이념을 인간은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에게 이념 혹은 사상이라 해도 좋겠지요, 그 이념이 없다면 말입니다, 먹고 자고 누기만 하는 저 마당의 개와 무엇이 다르겠어요? 그 관념이 문명과 문화를 이룩한 역사의 원동력이며 역사라는 기계가 끊임없이 줄기차게 돌아가게 하는 기름입니다. 왜왕을 앞세운 대동아공영권 등의 청사진은 일제가 배양한 빛깔 고운 독버섯에 불과했어요. 빛깔만 보고 곱다고 그 버섯을 먹으면 가차 없이 죽습니다. 공산주의 역시 때깔 좋고 먹음직스러운 독버섯입니다. 그래서 두 분 형님은 명분도 없는 개죽음을 당한 거예요. 자유는 독버섯처럼 빛깔이 곱지는 않지만, 예컨대 송이버섯과 같습니다. 따라서 독버섯의 씨앗을 뿌리려는 공산 괴뢰군을 쳐부숴야 할 의무가 있고 송이버섯이 자라는 이 대지를 지킬 의무가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