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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88964360965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15-04-22
책 소개
목차
시작하는 말
첫째 마당: 마당 고르기
첫째 마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둘째 마디: 하느님 이해에 관한 두 개의 흐름
둘째 마당: 예수의 삶과 선교
첫째 마디: 갈릴래아의 구도자 예수
둘째 마디: 예수의 선교
셋째 마디: 하느님 나라 건설
넷째 마디: 예수의 마지막 결단과 당부
셋째 마당: 바울의 삶과 선교
첫째 마디: 사울이 바울이 되기까지
둘째 마디: 바울 신학에 대한 오해 풀기
셋째 마디: 바울의 선교
넷째 마디: 바울의 선교 과정
다섯째 마디: 바울의 선교 대상
여섯째 마디: 바울을 심려하게 한 문제들
일곱째 마디 : 바울의 마지막 인사
넷째 마당: 예수와 바울의 대조
다섯째 마당: 대망 공동체와 공권력의 쌍무곡(雙舞曲)
첫째 마디: 바울의 대망 공동체와 콘스탄티누스 대제
둘째 마디: 공권력으로 이룩된 공교회와 힘의 철학
셋째 마디: 개신교회와 공권력
넷째 마디: 한국 선교의 진상
다섯째 마디: 찬송가를 통한 선교사들의 신학
여섯째 마디: 분단된 한국과 기독교
여섯째 마당: 종교에서 생명문화공동체운동으로
첫째 마디: 새 술은 새 부대에
둘째 마디: 생명문화공동체를 위한 교육-성서적 입장에서
맺는 말: 새 술은 새 부대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여기서 또 한 가지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있을 것을 있게 하시는 야훼 하느님은 어느 한 민족만을 그의 선민으로 삼으시는 편협한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민족이 서로 축복하면서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세 번째 약속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민족들이 서로 축복하면서 사는 생명공동체를 이룩하라는 것이었다. 출애굽 공동체도 다민족 공동체였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그곳에 있는 ‘하비루’들과 더불어 야훼를 섬기는 평화공동체를 이루었다. 따라서 어느 민족이나 모두 그들 속에는 하느님의 생명의 영이 있어서, 악을 악으로 보고 새 내일을 찾아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하느님은 그들의 영과도 기화하여 새 내일을 창출하게 하시는 분이다.
-‘첫째 마당: 마당 고르기’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그는 하느님이 예수를 부활시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신이라고 하는 로마황제의 세력이 정치범으로 몰아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를 하느님이 다시 살리셨다고 믿은 것이다. 이 놀라운 사건이 바울의 생각을 사로잡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당시 그의 마음을 괴롭혔던 것은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였다. 로마황제는 스스로 평화의 신이라고 자처하며 갖은 폭압을 일삼았다. 신이신 그는 무엇이나 해도 좋다며 다른 나라들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그들을 노예로 삼아 혹사했다. 그 폭압이 너무나 비참했다. 그랬던 그가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를, 하느님이 다시 살리신 것이 아닌가?
바울은 이 질문을 가지고 아라비아로 간 것이다. 그곳에서 이 문제와 씨름을 하고 그의 신학을 조성했다. ……
이런 신학을 구성하는 데 틀을 준 것은 메시아사상의 변형인 계시록 사상이었다. 계시록 사상에 따르면 역사의 주이신 야훼 하느님은 얼마 동안 이 세상 통치자들에게 권한을 주어 다스리게 하신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자신의 종을 보내어 이 세상 권력들을 정리하고 역사를 자신에게로 돌리신다는 것이다. 이제 때가 이르자, 하느님은 그의 의로운 경륜대로 그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어 로마의 형틀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시고, 그를 부활하게 하시어 그의 거룩한 경륜을 이룩하시려는 것이라고 바울은 확신했다. 따라서 그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외에는 다른 것은 알 필요가 없었다고 거듭 말했다. 그는 아무와도 의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셋째 마당-바울의 삶과 선교’에서
바울은 자신이 믿는 복음을 철저히 말로 전했다. ……그러나 아래에서 더 설명을 하겠지만, 그가 전도한 교회들에서 갖가지 문제가 일어나 바울을 괴롭혔다. 왜 그랬는가? 그가 말로 전한 복음은 복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윗 왕조가 야훼를 다윗의 수호신이라고 한 주장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로마제국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메시아라고 확신했다. 야훼 하느님이 그를 다시 살리시어 그의 오른편에 앉아 있게 하시다가 때가 이르면 다시 세상으로 보내어 이 세상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다윗 왕조의 망상에 불과하였다. 그런 조작된 이념이 좋은 열매를 맺을 리가 없다.
-‘셋째 마당-바울의 삶과 선교’에서
사실 예수가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동등한 분이라는 것을 현대인이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가? 그가 하느님과 같이 계시다가 다시 오시어 이 세상 나라들을 심판하시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이룩하신다는 것 역시 어찌 믿을 수 있는가? 무려 200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 말이다. 이것은 기원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교회의 신조로 결정된 것인데, 그것도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압력을 넣어 그렇게 결정되었다. 이에 반대하는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데도 말이다.
왜 이런 사고가 형성되었나? 무엇이 이런 생각을 조성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바울이 신봉하고 있던 다윗 왕조의 메시아사상이다. 제2이사야를 위시한 많은 예언자들이 야훼 하느님은 다윗의 후손 중에서 메시아를 보내어 다윗 왕국을 재건하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이 땅을 적시어 오곡백과를 열리게 하고야 마는 것처럼 틀림없다고 선언하였다.
-‘셋째 마당-바울의 삶과 선교’에서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을 가장 중요시 한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라고 한다. 이 역시 예수가 삶을 대하는 자세와 다르다. 바울은 예수가 하느님의 독생자로서 우리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나 하느님이 그를 살리시어 그를 믿는 자의 구주가 되게 하신다고 믿는 것이다. 소망이란 그런 예수가 언젠가 이 세상에 재림하여 메시아왕국을 이룩할 것을 바라는 소망이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형제자매들 사이의 사랑을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러한 메시아사상을 강력히 거부하셨다. 메시아사상 자체도 부정하셨다. 그가 믿은 것은 있을 것을 있게 하시는 야훼 하느님이 한 많은 떠돌이들을 깨우치시어 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 위에서 이룩되게 하실 것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을 다 던져서 떠돌이들을 깨우치시어 생명문화공동체의 주역이 되게 하셨다. 참된 생명의 길을 찾으면서도 다윗 왕조의 그릇된 문화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을 위해 예루살렘의 대사제들에게 도전함으로 십자가에 달리시어 많은 사람들을 깨우치는 각성교육까지 단행하시었다. 그럼으로써 예수가 사시고 가르치신 길만이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믿게 하셨다. 에덴동산의 재연을 바라면서 그의 뒤를 따르게 하셨다.
-‘넷째 마당: 예수와 바울의 대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