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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사
· ISBN : 9788964361351
· 쪽수 : 262쪽
· 출판일 : 2017-12-25
책 소개
목차
감사의 말
시작하면서 : 두레방과 신학에 대하여
첫째마당 : 두레방 여인들의 증언
들여다보아야 할 이야기/마음의 검은 그림자 입양 보낸 아이들/A B C 인연/다시 찾은 우리 가족/내 주변의 모든 남자/상처보다 선명한 삶의 힘/꽃상여 기억을 안고/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꿈/갓길 없는 일상의 외발걷기/어린아이와도 같은 김은숙/가족이 있어도 보육원으로 보내진 임영희/무가지 신문 광고를 보고 뺏벌로 온 가정주부/두 번 이혼 당하고 재기한 김인실/기지촌으로 모이는 사연들/필리핀 피해 여성들의 상담사례
둘째마당 : 두레방 여인들의 한
두레방이 걸어온 길/두레방 여인들의 공통점 ; 빈곤/폭력의 희생자들/수탈과 착취의 사례/두레방은 옹달샘
셋째마당 : 미제국주의 수탈의 역사
미국의 현실적 삶/아메리카 선주민의 역사와 문화/콜럼버스를 뒤따른 유럽인의 삶의 형태/미합중국 독립/선주민 청소 작전/미국이 민주주의의 전령자라고?/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계속되는 도살 행위/미국의 변화/미국 정치사의 숨은 비밀/무산자의 항거/노동 운동/전쟁과 평화
넷째마당: 에덴동산과 하느님의 경륜
J기자가 본 인류의 역사의 틀/떠돌이들의 에덴동산 창출의 비밀/출애굽 공동체의 모습/다윗 왕조/북왕국 예언자의 역할/실패한 종교개혁/샘 줄기를 막는 다윗 왕조/뒤집힌 사고와 예언/포로들의 여러 목소리
다섯째마당 : 두레방 여인들을 보듬은 예수 사랑과 이후 분열
갈릴리에 치솟은 샘 줄기/예수운동의 분열/종교개혁의 여파
맺으면서 : 두레방에서 희망을 보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감사의 말
시작하면서 : 두레방과 신학에 대하여
첫째마당 : 두레방 여인들의 증언
들여다보아야 할 이야기/마음의 검은 그림자 입양 보낸 아이들/A B C 인연/다시 찾은 우리 가족/내 주변의 모든 남자/상처보다 선명한 삶의 힘/꽃상여 기억을 안고/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꿈/갓길 없는 일상의 외발걷기/어린아이와도 같은 김은숙/가족이 있어도 보육원으로 보내진 임영희/무가지 신문 광고를 보고 뺏벌로 온 가정주부/두 번 이혼 당하고 재기한 김인실/기지촌으로 모이는 사연들/필리핀 피해 여성들의 상담사례
둘째마당 : 두레방 여인들의 한
두레방이 걸어온 길/두레방 여인들의 공통점 ; 빈곤/폭력의 희생자들/수탈과 착취의 사례/두레방은 옹달샘
셋째마당 : 미제국주의 수탈의 역사
미국의 현실적 삶/아메리카 선주민의 역사와 문화/콜럼버스를 뒤따른 유럽인의 삶의 형태/미합중국 독립/선주민 청소 작전/미국이 민주주의의 전령자라고?/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계속되는 도살 행위/미국의 변화/미국 정치사의 숨은 비밀/무산자의 항거/노동 운동/전쟁과 평화
넷째마당: 에덴동산과 하느님의 경륜
J기자가 본 인류의 역사의 틀/떠돌이들의 에덴동산 창출의 비밀/출애굽 공동체의 모습/다윗 왕조/북왕국 예언자의 역할/실패한 종교개혁/샘 줄기를 막는 다윗 왕조/뒤집힌 사고와 예언/포로들의 여러 목소리
다섯째마당 : 두레방 여인들을 보듬은 예수 사랑과 이후 분열
갈릴리에 치솟은 샘 줄기/예수운동의 분열/종교개혁의 여파
맺으면서 : 두레방에서 희망을 보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가정환경이 어려워지자 여섯 살인 나를 의정부 뺏벌에 있는 한 업주에게 수양딸로 보냈다. 그러나 실상은 수양딸이 아닌 식모살이였다. 업주 집에서 내내 연탄에 밥을 짓고 아기를 봐주는 등의 일을 하고 학교는 다니지도 못했다. 그래서 지금도 글자를 쓰기가 어렵다. 나는 커서야 내가 식모살이에 종살이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집에서 나왔다. 갈 곳이 없던 나는 친구 집에 머물다가 친구 소개로 클럽 일을 하게 되었다.
뺏벌 언덕배기에 있는 빠삐용 클럽인데 당시 내 나이 열아홉(1976년경)이었다. 소개소에서 일자리를 얻은 것이 아닌 데다 부양할 가족이나 동생이 없어서 빚은 별로 없었다. 원래 카운터 보는 일을 하기로 하고 들어갔는데 업주는 집요하게 성매매를 강요했다. 그때마다 거절했지만 업주는 싫은 내색을 강하게 드러냈다. 나는 그런 업주의 비위를 맞추려고 업주의 집 청소나 그 집 자녀를 돌보는 식으로 다른 일을 더 많이 했다.
어느 날 업주는 한 미군이 계속 나를 맘에 들어 하니 한번 만나보라고 또다시 강요했다. 나는 계속 싫다고 거절했다. 미군이 포기하지 않자 업주는 결국 나를 방으로 끌고 가서 폭행했다. 입 안이 터져 피가 나고 온몸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나마 여자 업주가 오면 진정이 되었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은 그런 식으로 매를 맞았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남자를 받게 되었다.
그 후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보건소에서 검진을 받았다. 그러다가 차츰 검진을 받는 횟수가 줄어 일주일에 한 번씩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대토벌이 나왔다. 그때 검진표가 없던 나는 경찰서에 사흘 동안 갇혀 있다가 벌금을 물고 나왔다. 가끔씩 보건소에서 네댓 명이 나와 보건소 건물이나 클럽 홀을 하나 빌려서 성병 관련 교육을 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세월을 보내다 스물두 살 때 미군 남자 친구를 만나 업소에 남은 빚 약 200만 원을 갚고 클럽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 남자 친구와 4년을 살았다. 그 사이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네 살 되던 해에 남자가 미국으로 떠나 할 수 없이 아이를 입양 보냈다. 나중에 알아보니 남자는 본국에 자녀 셋과 부인이 있었다.
아이를 입양 보내고 나니 오갈 곳도 없고 배운 것도 별로 없어서 일반적인 일을 찾을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그래서 다시 빠삐용 클럽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이 스물일곱이었는데 클럽 뒤에 있는 방에서 손님으로 온 미군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클럽 안은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내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같이 있던 미군들은 도와주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업주에게 이야기했지만 업주는 그들이 자기 손님이라서 신고하지 않았다.
다시 나는 스물아홉 살에 미군을 만났고 그 미군이 빚을 갚아 주어 클럽을 다시 나왔다. 그 남자와 3년 정도 살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남자가 미국으로 떠나 다시 아이를 입양 보냈다. 두 아이를 입양 보내고 나니 너무나 힘들어 그 전에는 잘 못하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 없이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오갈 곳도 없는 데다 그나마 업주 아줌마는 잘해주는 편이어서 그곳에서 계속 일을 했다. 나중에 클럽이 없어져서 그만두고 나이트클럽에서 40대까지 바텐더로 일했다. 그 후 나이가 많아서 클럽 일은 그만두고 뺏벌의 한 식당에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 두레방 여인의 증언 <한국 신랑이나 미국 신랑이나 마찬가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