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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사상가/인문학자
· ISBN : 9788964362921
· 쪽수 : 467쪽
· 출판일 : 2025-11-20
책 소개
목차
사진 화보
추천의 말_김경재
개정판에 붙이는 글
책머리에
감사의 말
용어 설명
시작하는 말
사자섬 아이에서 ‘생각하는’ 기독 청년으로 (1901~1923)
평안북도에서의 어린 시절
3/1운동에 기독 청년으로
오산학교에서
‘감방 대학’에서 노자를 만나다 (1923~1945)
일본에서의 생활
역사 교사, 그리고 『성서조선』
조선사편수회
함석헌의 고민, 시대의 고민, 그리고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
민족주의자, 동양적 농사꾼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더 위대하다 (1945~1961)
해방, 그리고 문교부장으로
해방된 남한에서 광야의 소리로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1961~1989)
군사 정변과 퀘이커리즘
『씨알의 소리』와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이 남긴 것
한국 민주주의와 함석헌
서구 기독교와 동양 철학의 융합
마치는 말 :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
쓰고 나서
주석
함석헌 생애 연표
찾아보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지난 20여 년간 이 책으로 인해 참으로 많은 분들을 만났다. 찾아온 분들의 유형은 다양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분들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무언가를 추구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서 나도 많이 배웠고 지금도 영감을 받고 있다. 그분들은 내게 정말 '씨알의 소리'가 무엇인지 삶의 매 순간에,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잔잔하게 들려주었다. 함석헌에 대한 강의를 이곳저곳에서 할 기회도 많았다. 심지어 외국인들과 외국 학생들에게도 영어로 함석헌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서 '함석헌 사상의 보편성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가졌는가?」 등 그의 시 몇 편을 영어로 번역했고, 외국인들로부터 호응도 좋았다. "문화와 언어를 넘어서 훌륭한 생각은 어느 하늘 아래서나 통한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사이 함석헌의 위상도 더욱 분명해졌다. 한국조폐공사에서 "비폭력 인권운동으로 민주화 실현에 앞장선 사상가 함석헌"을 한국의 인물 시리즈 메달로 선정했고, "건국 후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운동가"로 함석헌이 1위(77퍼센트)로 선정되었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대학 신입생을 위한 추천 도서에, 아시아 명저 100권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함석헌의 사상적 저력이 놀라울 뿐이다.
함석헌은 한국 역사를 씨알의 입장에서 보았다. 기득권자나 가진 자의 통치 논리가 아닌 소외된 서민, 소수자, 패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시선을 갖고 고난에 찬 삶을 살았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나? 함석헌의 추종자들 또한 최소한 기득권자나 "부자의 대변자"가 아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줄 모르는 서민, 씨알의 대변자, 즉 '씨알의 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팽배한 극단적 양극화와 혐오의 분위기 속에서도 함석헌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강자 독식과 정글의 법칙이 횡행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이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함석헌이 주장한 '같이살기운동'의 정신은 더욱 절실하다. 이른바 '작은 정부'의 구호 아래 강자가 약자를 유린할 때 '중립'이라는 미명으로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은 결코 함석헌이 걸었던 길이 아니다.
1928년 봄, 함석헌은 동경사범에서의 유학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는 귀국과 동시에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역사, 일반 윤리 등을 강의하기 시작한다. 이즈음 함석헌은 타고르와 간디의 책들을 흥미롭게 읽는 한편 계간지 『성서조선』을 편집하고 여기에 글을 실었다.
『성서조선』은 함석헌의 오랜 친구인 김교신이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1927년 7월에 창간한 잡지였다. 김교신은 함석헌보다 약 1년 먼저 귀국하여 오산학교에서 지리학과 자연사를 강의하는 틈틈이 『성서조선』을 만들고 있었다. 우치무라가 예수와 일본을 동시에 중시했듯이 김교신 역시 '성서' 와 '조선'을 그렇겝앗다. 그의 이런 생각은 곧 잡지 『성서조선』의 성격과 방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김교신은 지도력이 뛰어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