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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건너, 요단강 넘어

대동강 건너, 요단강 넘어

(서용문 목사 순교 60주년 추모문집)

서광선, 서인선, 서철선, 서만선, 홍경만 (지은이)
동연출판사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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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 건너, 요단강 넘어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대동강 건너, 요단강 넘어 (서용문 목사 순교 60주년 추모문집)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 인물
· ISBN : 9788964471272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10-10-23

책 소개

순교자 서용문 목사 슬하의 5남매 중 남한에 피난 온 4남매가 추모문집을 엮었다. 모두 네 개의 에세이와 논문 한편, 그리고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세이는 고 서용문 목사의 맏아들부터 막내아들까지 각자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회고와 피난 내려오면서 겪은 고초,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써 내려 갔다.

목차

머리말
순교 60주년 회고록을 내면서 _서광선

순교자 서용문 목사 - “오직예수”의 신앙과 열정의 삶 _서광선
순교자의 딸 -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_서인선
아버지 없이 신앙으로 살아온 아들의 편지 _서철선
순교자의 아내, 어머니를 기리며 _서만선
박해와 순교 - 교회사학자 사위의 특별기고 _홍경만

부록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1988년)_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저자소개

서광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1년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났으며 대한민국 해군에서 복무했다(1951~1956년). 미국에서 철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고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M.Div)를 수료했으며 밴더빌트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1964~1996년) 동 대학교 문리대학장, 교목실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치적 이유로 해직당했다가(1980~1984년) 그 기간 중에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수학해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목사로 안수를 받고 압구정동 현대교회를 담임했다. 세계 YMCA 회장을 역임했고(1994~1998년) 미국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 미국 드류 대학교 신학대학원, 홍콩 중문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했으며, 홍콩 주재 아시아 기독교고등교육 연합재단(United Board for Christian Higher Education in Asia)의 이사 및 부회장을 역임했다(2001~2006년). 저서로는 ??종교와 인간??,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반성??, The Korean Minjung in Christ 등 다수가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신학과 교회≫ 편집위원장 일을 했다(2014~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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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6년 평북 초산 출생. 서울대학교 음대 성악과,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교육학 석사). 관악고, 경기여고 교사. 서울 여학생교육원 연구사, 서울 교원연수원 연구사. 서연 중, 연서 중 교감. 예수교 장로회 봉원교회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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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8년 평북 만포진에서 출생. 숭실대학교 중퇴. 한국장로교복지재단 애란원 직원. 예수교장로회 봉원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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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만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0년 만주 통화성 쾌대모자 출생.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졸. 조선호텔, 롯데호텔 이사 역임. 숭실대학교 총동창회장 역임. 현 북한전통음식연구소 상임고문. 예수교장로회 봉원교회 시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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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만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4년 평북 구성군 서산면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과,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교육학 석사), 숭실대학교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신구대학 교수(1979-2002), 예수교 장로회 봉원교회 원로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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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950년 10월 평양 대동강 가에서 아버지 얼굴에 수 없이 박힌 총알 자국을 어루만지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 다시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아버지의 순교는 6·25한국전쟁의 비극입니다. 아버지의 순교 앞에서 “원수를 갚겠다.”는 분노와 함께, “전쟁은 안 된다.”는 전쟁에 대한 분노로 온 몸을 떨게 했습니다. 아버지의 순교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위기의식과 회심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원수에 대한 복수로 되풀이 할 수 없고, 용서와 화해의 생명의 길, 평화의 길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결단을 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교의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로 다시 살아나는 신앙의 사건이 된 것입니다. 6·25한국전쟁에서 죽어 간 남과 북의 수많은 젊은이들과 피난민들의 희생의 뜻은 무의미한 희생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는데서 살아남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순교의 뜻은,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화해와 평화 만들기와 통일로 연결되어야 살아남습니다. 증오에서 동정으로, 복수에서 용서로, 적대감에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싸움에서 화해로, 전쟁에서 평화로, 분단에서 통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혁명적 의미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말한다면, 순교의 십자가, 민족의 분단의 십자가를 뛰어 넘어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 민족의 부활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 눈물을 거두고 순교자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_서광선 글 중에서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1학년 입학하자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은 방과 후에 남아서 미술선생님이 특별지도를 하셨다. 나는 포스터를 잘 그린다고 남한의 김구, 이승만이를 북한 노동자 농민이 망치와 낫으로 머리나 목을 치면, 부산 앞 바다에 빠져 넘어지는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승만 대통령과 김구 선생님은 훌륭하신 분이신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그릴 수가 없었다. 내가 만일 안 그리면 아버지를 호출 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구도를 잡고 대강 스케치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집에 가서 그림을 완성하여 내일 갖고 오라는 것이다. 나는 밤새 색칠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림이 없어졌다. 아버지는 찢어버렸다고 하시며 그냥 학교에 가라고 하셨다. 종일 벌을 서고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를 내무서에서 호출했다고 하신다. 아니 자녀 그림 하나 가지고 잡아가다니! 이럴 수가 있나... 나는 완성하지 못해서 내일 가지고 온다고 선생님께 틀림없이 말씀드렸는데... 북조선은 너무 싫었다. 나는 학교에서의 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교회에 항상 형사가 와서 설교 중 북한정치를 비난했다고 끌려가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식의 사소한 일가지고... 선생님께 직접 그런 그림은 안 그리겠다고 거부했으면 차라리 내가 벌을 받든지 고문을 당하든지 할 것 아닌가하고 후회했다.
아버지는 안 돌아오셨다. 다음날 새벽에 들어오신 아버지는 그냥 자리에 누워버린다. 아무 말씀도 안하셨다.
_서인선 글 중에서


어머니와 김봉화 집사님이 사선을 넘기 위해 인민군이 주둔한 곳을 답사하면서 인민군에게 “우린 남쪽에서 살다가 폭격이 심해서 이곳으로 피신했다가 내일 다시 이곳을 지나 다시 남쪽 고향으로 내려 갈 테니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어제 어머니와 김봉화 집사님이 인민군 주둔한 곳에 도착하여 어제 보내 준다고 해서 왔노라고 하자, 갑자기 인민군이 땅속에서 튀어 오르며 제가 들고 있던 놋그릇을 열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 했던지 그 기억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때 그 인민군이 놋그릇을 뒤집었다면 성경도 쏟아져 나왔을 테고 우리는 모두 총살감이었지요. 그 인민군은 놋그릇을 덮어 놓았던 삼천리표 연필들만 보고는 “다시 덮어,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식구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우리 가족을 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떨리는 손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두 말 없이 앞을 향해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인민군이 주둔하고 있던 곳과 남쪽 치안대가 있는 곳 중간 정도를 지나칠 때 인민군의 총소리가 들려 왔고 남쪽 치안대에서도 총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_서철선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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