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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음악 > 음악가
· ISBN : 9788964493076
· 쪽수 : 458쪽
책 소개
목차
1 『프롤로그』
2 19세기 러시아史
o 정치·사회 흐름
o 문학의 르네상스
o 강력한 패거리(5인조) 태동
o 동성애 동향
3 출생과 성장배경
4 기질과 예술세계
5 『오데사』에서 초상화 제작
o 제작 배경
o 관련 화가
6 불멸의 女人관계
o 가정교사 뒤르바흐
o 오페라 가수 아르토
o 아내 밀류코바
o 철도부호 폰 멕 부인
__ 『차』와의 인연 모색
__ 『차』와의 관계단절
__ 파산위기 직면설의 진상
__ 형제들 간의 질투
__ 『차』조카와 성혼(成婚)
7 대표적 교향곡
o 교향곡 1번(겨울날의 幻想)
__Symphony No 1 in G minor, Winter Daydreams , Op 13
o 교향곡 4번(運命)
__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
__LP음반 표지 그림 해설
o 교향곡 5번
__Symphony No 5 in E minor, Op 64
__LP음반 표지 그림 해설
o 교향곡 6번(悲愴)
__Symphony No 6 in B minor, Op 74, Path__ique
__LP음반 표지 그림 해설
8 死因 논란
o 콜레라 사망說
o 자살說
9 명지휘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o 출생 및 성장배경
o 인터뷰 내용<全文>
o 초상화와 관련 화가
10 1812년 서곡 해설
__The Year 1812 Overture in E flat major, Op 49
o 역사적 배경
o LP음반 표지 그림 해설
11【總論】차이코프스키의 성공과 비극
12 『에필로그』
13 수록된 화가들 주요작품
o 니콜라이 쿠즈네초프(Nikolai Kuznetsov)
o 야곱 오치테르벨트(Jacob Ochtervelt)
o 데이비드 콕스(David Cox)
o 니콜라에 베르몽(Nicolae Vermont)
o 얀 팝센드레흐트(Jan Papsendrecht)
o 레브 루소프(Lev Russov)
14【부 록】
o 차이코프스키 연보
o 관계 인명록
o 책에 수록된 작품정보
o 참고 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밀류코바와의 결혼 7개월 전인 1876년 말, 차이코프스키는 음악대학원 학생이었던 로시프 코텍(losif kotek)과도 깊은 동성애 관계에 빠졌다. 이와 관련, 차이코프스키는 1877년 1월 31일 모데스트에게 쓴 편지에서 코텍과의 관계를 언급하며 하나의 열정이었다면서 그를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1877년 봄 코텍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열정은 돌연 식어 버렸다. 이는 또 다른 동성애 상대이자 제자였던 블라드미르 실로브스키가 갑자기 결혼을 발표해 버린 시기와 때를 같이하는데, 자신에게 좁혀져 오고 있는 동성애 의혹과 특히 실로브스키의 결혼 발표에 충격을 받아 동성애자도 결혼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작용해 밀류코바와의 결혼을 추진했던 요인에 한몫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두 사람은 결혼 후 20일 간의 동거생활이란 날짜가 흘렀음에도 여전히 합방을 하지 않았다. 차이코프스키가 아내에게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에 대해 고백했는지, 아니면 그의 아내가 그 같은 고백을 일축해 버렸는지 여부에 대해선 확실치가 않다. 8월 8일 차이코프스키는 아내 곁을 떠나 동생 알렉산드라가 살고 있는 카멘카로 가서 1개월 반 동안 체류했다.
그는 모스크바로 다시 돌아와 9월 24일∼10월 6일까지 음악원으로부터 그리 멀지않은 볼샤 니키츠카야(Bolshaia Nikitskaia) 거리 소재 아파트에서 다시 아내와 함께 살다가 그녀 곁을 떠나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결혼 초기부터 엄청난 곤경을 겪었다고 할 수 있고 결혼을 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 또한 중대 실수였다는 것도 알았다. 게다가 그는 자기 자신이 그의 아내의 개성과 특성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심지어 그녀의 가족이나 친구들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한편, 파경 과정에서 밀류코바의 탓으로 돌려진 경향이 많았다. 특히 차이코프스키 동생인 모데스트가 “밀류코바한테 발광증세가 있다.”라고 까지 주장하는 등 이에 가장 적극적인 편이었다. 차이코프스키 역시 밀류코바의 지적 수준이 모자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음악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강변했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 전기 작가 안토니 홀덴은 정신적인 면에선 밀류코바가 차이코프스키보다 훨씬 더 정상적이었다면서 차이코프스키와 그 가족들이 파경 책임론에서 오히려 거짓말을 더 많이 한 것이라고 지적, 밀류코바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아내 밀류코바 내용중에서.....)
불행했던, 행복했던 간에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의 아내 묘지가 흔적도 없다는 점에 대한 인생무상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루마니아 수도 부카레스트 인근에 있는 독재자 차우세스크와 그의 부인 엘레나의 묘지를 예전에 찾아가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차우세스크 묘지만은 관리되지 않은 채 초라하게 남아 있었으나 그의 부인 엘레나의 묘지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권력무상과 함께 왠지 모르게 엄습해오는 허무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인류에게 단순히 음악만이 아니라 영혼으로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해준 위대한 예술가라 할 수 있다. 차우세스크는 독재자였기 때문에 말로가 비참했다고 해도 비록 불행한 결혼이기는 했지만 차이코프스키의 부인 밀류코바의 묘지 흔적이 없다는 점에 대해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조선 성종시대 중전 尹씨가 폐비된 데 이어 사약을 받고 죽은 후 묻힌 묘지가 흔적도 없었다고 한다. 연산군은 외할머니로부터 자신을 낳아준 생모가 모함으로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참아낼 수 없는 격분과 함께 그와 관련된 많은 신하들을 무참히 죽이게 된다. 그가 아무리 왕이었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그 격분을 한편으론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다.
여기에서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그럼 왜 동성애자였던 차이코프스키가 아르토와는 그토록 결혼하고 싶어 했을까? 만약 그녀와의 결혼이 성사됐다고 해도 서로 간의 부부생활이 원만히 이뤄지고 과연 오래토록 행복한 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었을까? 지금으로서는 오로지 神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심리묘사 대가 중 한명인 영국의 서머셋 모옴이 1925년에 발표한 페인티드 베일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서 세균학자 월터가 한 사교클럽에서 매력적인 여성 키티에게 첫눈에 반한 나머지 그녀에게 청혼, 행복한 신혼생활도 잠시였을 뿐 결국에는 비극적인 종말로 끝을 맺는다. 밀류코바의 입장이나 기타 사례들에서 첫눈에 반해 결혼하면 정말 모두 불행해지는 것일까?
결혼 실패 후, 발표되는 일련의 차이코프스키 작품들 속에서 여성들에 대한 그 자신의 내면세계를 어렵잖게 엿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남편의 사랑을 열렬히 원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내 밀류코바가 연상되기도 하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나 “오네긴”에서도 어쩌면 차이코프스키 자신을 그려 내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니깐 말이다. (아내 밀류코바 내용중에서.....)
나중에 거론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돈에 대한 개념도 없었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폰 멕 부인이 적절히 대처해 나가곤 했다.
다시 말해, 폰 멕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와 플라토닉한 사랑을 추구하기에 앞서 그가 정상적인 생활 속에서 위대한 예술가가 되가는 길을 유도해 가는 일종의 관리자 역할에 더 치중했다는 점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은 차이코프스키와 폰 멕 부인 간에 오간 편지들 속에서 두 사람 모두 노이로제나 신경쇠약, 인간혐오증뿐만 아니라 변덕스러움과 심지어 괴팍증 징후까지도 감지됐다는 점이다.
이 같은 징후는 예술이나 문학세계에 깊이 빠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 중의 하나로 보고 싶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왕래된 편지 가운데 현재 768통만 남아 있다고 한다. (폰 멕 부인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