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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국제사회비평/칼럼
· ISBN : 9788964620502
· 쪽수 : 228쪽
책 소개
목차
피폭, 1999년 9월 30일
첫 만남―피폭 2일째
도쿄대학병원 집중치료실로―피폭 3일째
피폭 치료팀, 해도 없는 항해에 나서다―피폭 5일째
조혈모세포 이식―피폭 7일째
인공호흡기, 무언의 싸움―피폭 11일째
여동생의 세포는……―피폭 18일째
잇따른 방사선 장애―피폭 27일째
궁지, 그리고 아주 작은 희망―피폭 50일째
제발, 다시 뛰어! 뛰란 말이야!―피폭 59일째
끝나지 않은 싸움―피폭 63일째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오우치 씨―피폭 83일째
종이학
후기/ 옮기고 나서/ 참고문헌
리뷰
책속에서
오우치는 무균실에 마련된 두 개의 침대 중 입구에 가까운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신장 174센티미터에 몸무게 76킬로그램. 고등학생일 때 럭비 선수였다던 만큼 다부진 체격이었다.
오우치의 상태를 본 순간, 마에카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보아도 중환자 같지 않았던 것이다. 얼굴이 조금 붉어지고 붓고 눈의 흰자위 부분이 약간 충혈되기는 했지만, 피부가 타들어가지도 않았고 벗겨지거나 떨어져나간 곳도 없었다. 물집조차 없었다. 의식도 또렷했다. (…)
“오우치 씨는 받은 질문에 대해 정확하고도 솔직하게 대답해주었고, 내용도 매우 분명했습니다. 세 사람 중에서 피폭선량이 가장 높다고 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침착한 상태였어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그가 쬔 방사선량이나 계속 줄고 있는 림프구 데이터 같은 것과 관계없이, ‘목숨을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둠의 매뉴얼에서는 가늘고 긴 형상의, 즉 표면적이 넓은 저탑을 씀으로써 임계를 막고자 했지만, 사고가 일어난 이번 작업에서는 심지어 이 어둠의 매뉴얼조차 무시되었다. 균일화 공정에서 저탑을 쓰지 않고 좀 더 구형에 가까운 땅딸막한 모양의 침전조를 썼던 것이다. 저탑보다 높이가 낮아서 작업하기 쉽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오우치는 지금까지 전환시험동에서 작업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고가 일어났던 이번 작업이 그에게는 전환시험동에서 하는 첫 번째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는 상사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진행했고, 임계에 이를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듣지 못했다.
“백혈병 같은 병에 걸리게 되나요?”
이렇게 물었던 오우치의 말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나 천천히, 오우치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10월 5일. 피폭한 지 6일째. 무균치료부의 히라이 히사마루는 오우치가 도쿄대학병원으로 옮긴 다음날 채취한 골수세포의 현미경 사진을 받았다. 그중 한 장을 들여다본 히라이는 제 눈을 의심했다. 현미경으로 확대한 골수세포의 염색체가 찍혀 있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사진에 담겨 있는 것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까만 물질이었다. (…) 염색체가 산산이 흩어졌다는 건 앞으로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피폭한 순간, 오우치의 몸은 설계도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