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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88965744368
· 쪽수 : 272쪽
· 출판일 : 2014-02-20
책 소개
목차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소설에 등장하는 조선 왕실 가계도
영영이별 영이별(49…0)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리하여 나는 우는 듯 웃으며 죽었습니다. 육신에서 벗어나 혼을 일으킬 때 지상에 홀로 남은 몸이 잠시 꿈틀하며 뒤척였으나, 그것이 삶에 대한 게염이나 미련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런 번거로운 감정이 깃들기에는 이미 지치도록 긴 시간이 흘러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별의 의식처럼 한동안 내가 빠져나온 거푸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만하면 거두기에 번거롭지 않을 만큼 조촐한 몽동발이였습니다. 병들어 자리보전하지 않고 잠든 채로 죽을 수 있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지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도 모르게 절로 그 대자대비의 이름을 읊조렸습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당신이 계신 그곳으로 갈 일밖에 없네요. 깊고 어두운 숲을 지나고 안개 자욱한 강을 건너는 머나먼 길이라지만 흔연한 마음에 한달음에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다만 심사에 깃드는 걱정은 헤어진 지 꼬박 예순다섯 해, 이제는 여든두 살의 백발노인이 되어버린 나를 행여 당신이 알아보지 못할까 하는 것뿐입니다.
연산은 분노의 칼자루를 움켜잡고 있었습니다. 연산을 그토록 화나게 한 것은 친모가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죽었다는 사실 한 가지가 아니라, 감쪽같이 속은 채 살아온 이십여 년에 대한 두려움과 배신감인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할머니, 수다한 종친들, 내시와 궁녀들, 조종의 신하들…… 그 모두가 공범이 되어 자신을 얼뜨기 바보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연산은 끝내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 전부를 믿지 못하게 된 그가 자기 자신은 믿을 수 있었을까요? 깜부기불만큼이라도 스스로를 믿는 자라면 그토록 잔인한 광기에 자신의 영과 육을 내던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갑자년의 난리는 결국 자신까지 포함해 세상 전체를 믿을 수 없게 된 연산이 벌인 한바탕 광란의 푸닥거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계유년의 난리에 정희왕후는 이미 자신의 본색을 낱낱이 드러냈습니다. 처음에는 거사를 말리는 입장이었다지만,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는 긴박한 상황에 처하자 주저하는 수양대군에게 손수 갑옷을 입혀주며 돌아설 길이 없으니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격려하였다지요.
하지만 그들이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어야 했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에게 동정과 연민을 바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따라 배우고 싶었던 숙모의 의젓하고 점잖은 행동거지까지도 무서운 위선으로 보이더군요. 세조가 등극하고 하루가 지나 가족들이 모두 궁궐로 거처를 옮길 때, 정희왕후는 이사를 하지 않고 사저에 남겠다고 고집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저에서 침모 노릇을 했던 여인이 일약 제조상궁이 되고 하인배와 노비들까지도 궁중의 무감이며 궁녀로 들어와 직첩을 받는 마당에, 홀로 사저에 남아 버티는 것은 무슨 셈속이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