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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88966272310
· 쪽수 : 134쪽
· 출판일 : 2022-12-01
책 소개
목차
1부
부서진 살점/ 화장지를 쓰다듬었다/ 잔기침/ 겨울이 온다, 잘했다/ 잘 참았다/ 합석/ 명세서/ 은행가는 날/ 늑대가 떠났다/ 기계와 나/ 혼자가 아니었다/ 답답한 이야기/ 수건이 걸레가 되기까지/ 산길/ 나는 흐른다/ 투명한 꽃/ 슬프고 우울한 날/ 외로움
2부
굳은살/ 내일을 생각하면/ 이불에 핀 꽃/ 맛도 모르면서/ 일요일의 불면증/ 집 잃은 박새/ 사라진 것들/ 신은 우리를 버렸다/ 독사/ 꺼지지 않는 불빛/ 먹구름 때문에/ 밤마다 우는 새/ 회식/ 그곳을 떠난 이유/ 젊은 시인을 추모하며/ 나무에 매달린 거짓말
3부
나비를 사냥하기 전에/ 그림자와 진실/ 집에 가고 싶다/ 아이스티/ 친구와 소주 한 병/ 희생/ 달은 아름답다/ 아파트에 사는 나무/ 악성 댓글/ 마스크는 퍼즐이 아니다/ 노을이 달아오른다/ 아끼고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 한 여름날의 순례자/ 어린 물음표/ 내면의 앵무새
저자소개
책속에서
밤새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거칠게 불었다. 버티고 서 있던 가로수에서 검은 살점이 떨어졌다. 아스팔트에는 빗물이 넘실거린다. 빗물을 머금은 검은 살점. 옆집 강아지가 산책할 때마다 짖어대던 그 자리는 검은 살점이 차지했다. 늘 그렇듯이 비는 또 내리고,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고, 우산이 없는 나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이 길을 벗어날 수 없다. 발끝에 걸리는, 발밑에서 부서지는 검은 살점. 살점이 떨어지는 고통은 온전히 가로수의 몫이겠지만, 내 발걸음은 가볍지 않다. 거리를 지나가는 누군가의 구둣발에 짓눌려 내 살점이 부서진 듯이.
―「부서진 살점」 전문
끝이 보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차가운 그곳에 걸터앉아 쓸모없는 상념에 잠기고
길게 토하는 한숨이 습한 공기에 묻히고
가만히 눈물을 닦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려도
너는 말없이 내 곁에 있었구나.
두툼했던 지난날이 언제였던가.
너의 살은 어느덧 야위고 찢기고 뺏기는데도
하소연 없이 묵묵히
너의 자리를 지켰구나.
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발가벗은 네 얼굴을 보기 전까지
네가 앉아있던 빈자리는 처량하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나는,
내게는 너무 가혹한 시간이구나.
아끼고 더 아낄걸,
이런 망상 따위는 찝찝한 후회로 남고
오늘을 사랑해야지.
맨몸으로 구르는 화장지를 붙들고
나는 한참을 쓰다듬었다.
―「화장지를 쓰다듬었다」 전문
어쩌다가 찾아온 손님,
손님이 국물이 뜨겁다고 숟가락을 던질 때,
반대편 테이블에 앉은
다른 손님은 국물이 차갑다고
젓가락으로 허공을 찌를 때,
그는 뚝배기를 던지지 않았다.
불 꺼진 간판 아래, 담배를 깨물며 한숨을 쉬던
족발집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그는 손에서 뚝배기를 놓치지 않았다.
넘치는 음식물 쓰레기에
날파리가 넘실댈 때,
하필이면 그 날파리가 손님상에 날아들 때,
손님이 먹던 음식을 물리고 한숨을 쉴 때도
그는 뚝배기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장사가 잘되는 날,
이제 풀리나 싶지만,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역학조사관에게 전화 올 때,
그는 뚝배기를 버리지 않았다.
뚝배기야,
함께 참아줘서 고맙고
깨지지 않아서 고맙다.
―「잘 참았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