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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73324345
· 쪽수 : 212쪽
· 출판일 : 2026-01-15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너희’라는 별명이 붙은 그 선생은 교과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할 때 갑자기 생기가 돈다. 수영장이 있는 가운데 운동장으로 난 유리창에 눈길을 주면서, “너희는 흥미가 없겠지만”이라고 전제하는 것도 늘 같다. 에피소드의 태반은 역사상의 인물이 왜 망하게 되었는지, 왜 중요한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승패의 분기점, 패퇴에 이르는 판단과 행동을 보고 온 것처럼 이야기한다. “질 만해서 진 거야”가 ‘너희’의 단골 멘트였다.
“이 시점에서 잘못된 거지”라고 분필로 하얗게 된 손끝으로 허공을 노크하는 듯이 하면서 ‘너희’가 말한다. 노크하는 문 너머 보이는 것은 ‘너희’가 연출한 대하드라마다. 어디에서 뭐가 잘못되어서 이 멋대가리 없는 남자고등학교에 와서 일본사를 가르치게 되었는지…… ‘너희’는 그 분기점을 생각해보기나 했을까?
등교중인 같은 학교 학생과 부딪치지 않게 전방을 신경 쓰면서 공원 바깥쪽을 걷고 있으려니까 흥분한 직박구리 여러 마리가 가오루를 발견하고 끼욕끼욕끼욕 요란하게 운다. 가오루는 직박구리가 싫다. 자기들보다 몸집이 작은 참새라든가 동박새, 박새를 쫓아내고, 이겼다는 듯이 지저댄다. 흥분하면 머리의 빨간 털을 곤두세운다. 울음소리도 모양새도 수선스럽다.
나한테는 고정해줄 압정pin이 없다, 라고 가오루는 생각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기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해줄 것이 없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매일 학교를 다님으로써 임시로 압정이 주어졌었다. 체육 특별활동부에 들어가고 운동을 하며 날이 새고 날이 지고 녹초가 되면, 좀 더 나를 꽉 고정하는 압정이 되었다. 학교를 그만둬버리면 어떻게 될까? 압정이 빠진다. 나는 지금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늘하늘한 얇은 종이나 같다. 학교에서 박리되어 바람에 날리고, 강에 떨어졌다가 그대로 바다로 흘러가서 가라앉는다. 바닷물에 녹아서 가루가 된다.
냉방이 시원하다. 샌드위치랑 핫도그, 커피와 우유 냄새가 뒤섞이고 담배 연기가 그것을 감싸고 있다. 베이스 소리가 나고, 그 뒤에 드럼이 치고 들어온다. 피아노가 테마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모두 제각각인 개인들이 음과 리듬을 내보낸다. 재즈는 밴드로 통일이 되는 록과 달리 하나의 개인이 내는 소리와 또 하나의 다른 개인이 내는 소리의 주고받음이라고 생각한다. 트리오(삼중주)라든가 퀸텟(오중주)이라는 이름도 개인의 모임이라는 느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