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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88966477258
· 쪽수 : 376쪽
· 출판일 : 2013-10-14
책 소개
목차
1권
1.
2.
3.
4.
5.
6.
7.
8.
9.
10.
11.
12.
2권
1.
2.
3.
4.
5.
6.
7.
8.
9.
10.
11.
에필로그 1.
에필로그 2.
작가 후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잠시 생각한 끝에 윤은 예전에 자주 다니던 호텔의 바(bar)로 지수를 불러냈다. 평소 지수를 불러낼 때는 언제나 섹스가 목적이었지만 오늘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휴식이 필요할 뿐이었다. 지수가 곁에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니까, 술을 마시는 동안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오늘은 웬일이야?”
조금 늦게 도착한 지수가 옆에 앉으며 물었다. 그야 평소 호텔에 도착하기만 하면 방으로 데리고 올라가기 바빴으니까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오늘은 일이 좀 힘들었거든. 완전히 녹초가 됐어.”
무심코 그렇게 말했는데 지수는 안쓰러운 눈으로 윤을 쳐다보았다.
“사람들 상대하는 거, 많이 힘들지?”
그제야 윤은 정신을 차렸다. 지수는 자신의 진짜 직업을 모른다.
“뭐,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얼버무려 넘기려 했다. 지수가 자신이 누군지 끝까지 몰라줬으면 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나중에 이 관계가 안 좋게 끝나더라도 지수가 질척거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모르고 있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지수가 사실을 알게 되면 지금처럼 그녀 앞에서 솔직하게 마음 턱 놓고 있을 수는 없게 되니까.
생각해보면 아이러니였다. 자신을 숨김으로써, 진짜 자신의 모습을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있게 된다는 건.
“신경 쓰지 마, 지수 씨. 괜찮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 보이자 지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있잖아. 그 일, 그렇게 힘든데 꼭 계속해야 해?”
“왜, 그만두면 지수 씨가 나 먹여 살려주게?”
장난스럽게 대꾸했는데 지수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윤 씨가 새 일을 찾을 때까지는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지수는 패션 센스가 엉망이기도 했지만, 값나가 보이는 물건을 지니고 다니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지금 신고 있는 구두도 몇 년은 되어 보이고, 입는 옷들도 언제나 깨끗하고 단정했지만 비싼 옷은 단 한 벌도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지수가 줬던 명함에 찍혀 있던 회사 이름도,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없는 걸 봐서는 그저 그런 작은 회사인 것 같았다.
그런 네가, 나를 도와주겠다고? 윤은 웃음을 참으며 되물었다.
“그렇게 내가 다른 여자들 만나는 게 질투 나?”
“아니.”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 상대하는 거, 정말 힘든 일이잖아. 지윤 씨가 힘든 게 싫어.”
윤은 잠시 입을 다물고 지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진지한 얼굴에 가슴이 뭉클했다. 지수는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다. 자신이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지수 씨.”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윤은 말없이 손을 뻗어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돌아보았다가 윤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맥주병을 떨어뜨릴 뻔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보고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나였다. 옆에는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나나…….”
뜻밖의 만남에 윤은 당황했다. 나나가 왜 여기에?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호텔은 예전부터 나나와도 자주 만나던 곳이었다.
“누구야?”
나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남자가 물었다. 나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간단하게 말했다.
“전에 좀 알고 지내던 오빠야.”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가 윤의 자존심에 작은 생채기를 냈다. 그러더니 나나는 지수에게로 시선을 돌려 살짝 미소 지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나나라고 해요. 실례지만 오빠랑은 어떻게 되시죠?”
위기다. 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지수는 이 관계를 연인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대로 대답하는 순간, 지금 나나 곁에 있는 남자의 질투 섞인 눈빛이 경멸의 그것으로 바뀔 게 뻔했다.
나나가 지수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 윤은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그리고 지수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외치다시피 말했다.
“아,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이야.”
나나가 지수와 윤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윤의 말을 따라서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일.”
나나가 그 말을 진짜로 믿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 이만, 만나서 반가웠어. 방해해서 죄송해요.”
윤과 지수에게 각각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네고 이윽고 나나는 남자의 팔짱을 낀 채 바를 나가버렸다.
지수와 둘이 남겨지자 윤은 뒤늦게 난처함을 느꼈다. 방금 자신은 대놓고 지수의 존재를 부정했다. 아무리 쿨하고 고분고분한 지수라도 화가 잔뜩 났을 게 분명했다.
지수는 나나가 뒤돌아 나간 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뭐라고 변명을 해야 좋을까, 하고 머리를 굴리며 윤은 일단 입을 열었다.
“지수 씨. 방금은…….”
“되게 예쁜 아가씨네.”
지수가 불쑥 말했다.
“응?”
“저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봐. 혹시 연예인이야?”
뜻밖의 반응에 윤은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아……, 모델이야.”
“어쩐지. 보통 사람 같지가 않았어.”
예쁘다, 정말. 너무 예뻤어. 지수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가만히 중얼거렸다. 잠시 후, 거의 비어가는 윤의 맥주병을 보더니 물었다.
“한 병 더 시킬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윤은 지수의 쿨함에 새삼 놀랐다. 세상에 이런 여자가 또 있을까. 질투도, 간섭도 일절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고 걱정해주는 여자.
다시 한 번, 이 여자를 파트너로 고른 자신의 안목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