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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88966550753
· 쪽수 : 222쪽
책 소개
목차
책을 내며 / 4
1부/ 똑같은 눈은 내리지 않는다
찬란 / 13
벽 / 17
훌륭한 그 자리는 / 21
결 / 25
황금기 / 29
빛나는 수고 / 33
액막이 / 37
환(環) / 41
풍경을 빌려 보다 / 45
똑같은 눈은 내리지 않는다 / 49
모자 뜨기 / 53
하얀 원피스 / 57
색동 기억 / 63
송편 빚기 / 67
한여름 단잠 자고 일어나듯 / 71
2부/ 그 남자의 시
작은엄마 / 77
그리움의 연줄 / 81
화려한 듯 은은하게 / 85
탱자꽃 / 89
점(點) / 93
별과 함께 / 97
복숭아 모양 잔 / 101
먼 곳 / 105
그 남자의 시 / 109
하얀 구두 / 114
남간정사에는 고요가 / 118
찐빵은 여전히 / 122
즐거운 상상 / 126
페트라의 나그네 / 130
동굴에서 부른 노래 / 134
피에타 상에는 포도송이처럼 / 139
금문교에서 샌프란시스코를 / 144
3부/ 알베르토의 착의식
어머니의 빈손 / 151
달아나는 봄 / 155
개구리 소리 / 159
매미 소리 벗 삼아 / 163
빨간 손수건 / 167
누군들 부럽지 않으랴 / 171
올가미 / 176
목화솜 이불 / 180
물레를 돌리다 / 185
모시적삼 / 189
빛나는 여름 / 193
파란 앞치마 / 197
운명의 그 사람을 / 201
고리 / 205
수산나 피정의 집 / 209
수도원에서 / 213
알베르토의 착의식 / 218
저자소개
책속에서
미국인 윌슨 벤틀리(Wilson Bentley, 1865~1931)는 15세 때 현미경을 선물로 받고 눈을 관찰했다. 다양한 눈 모양을 보면서 그림으로 그리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림을 완성하기 전에 눈이 금방 녹아버리곤 했다. 교사였던 어머니가 사진기를 사주자 사진기 앞에 현미경을 장착하여 자신이 제작한 특수 카메라로 1885년에 처음으로 눈 결정체를 찍는 데 성공했다. 기둥이 다섯 개나 일곱 개인 결정체를 찾아보려고 애썼으나 허사였으며 모양이 서로 다른 눈 사진 6000여 종을 찍어 눈의 결정은 육각형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농부이며 아마추어 사진가인 그는 1931년에 눈 사진 4000종을 골라 『눈 결정』이라는 사진집을 내고 “세상에 똑같은 모양의 눈은 내리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긴 채 몇 주일 후 세상을 떠났다.
―「똑같은 눈은 내리지 않는다」 중
시는 작가의 심적 나상이고 숨기고 싶은 치부이고 헤집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이며 진솔한 자기 고백이었다. “중학교도 못 가면서 책은 읽어서 뭐하니? 수를 놓던 누님들이 눈을 흘기며 약을 올렸다” 그는 자랑스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멍석 위에 쌀 쏟아붓듯, 확성기 들고 마을에 소식 전하듯 천연스레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낟알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것처럼 시어들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빛을 발했다. 그의 이야기를 썼는데 치유되지 않은 내 상처가 덧난 듯 통증이 왔다. 별스러울 것 없이 떠돌던 고향마을 이야기가 이웃들의 아픈 사연이 그대로 전이되어 왔다. 그의 시는 상처를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손길이고 인정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막막하던 젊은 날 세상 어느 곳에서도 둥지를 틀지 못한 서러움에 언 새벽 강물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구나. 억울하여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밤 뜬눈으로 하얗게 날밤을 새웠었구나. 주저앉고 싶으리만치 힘들게 살아온 세월이 파도리 해변의 조약돌처럼 하얗게 깔렸구나.
―「그 남자의 시」 중
어느 가을날 여학교 담 모퉁이를 걷는데 진달래꽃이 화사했다. 때아니게 웬 꽃일까 이상하여 뒤돌아보았다. 손수레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분홍색 솜사탕이 꽃다발인양 소담스러웠다. 영락없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무더기 같았다. 양철로 만든 손수레가 유난히 작아 보이기에 모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아, 그곳에는 난쟁이 아저씨가 잰 솜씨로 솜사탕을 만들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솜사탕 다발이 양철통 가장자리에 꽃송이처럼 꽂혔다. 아이들 장난감 같은 손수레가 아저씨 키에 딱 맞는 듯싶었다. 나도 모르게 황급히 발길을 돌렸다. 걸어오다 뒤돌아보니 아저씨는 솜사탕에 푹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솜사탕도 아저씨도 그대로 한 무더기 꽃, 화사하게 어우러진 꽃이었다.
저 솜사탕이 대체 하루에 몇 개나 팔릴까. 아저씨가 나이가 좀 들어 보이던데 식구는 몇이나 될까, 저걸 팔아 생계는 이을 수 있을까, 나는 공연히 걱정이 되었다.
―「물레를 돌리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