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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88966550982
· 쪽수 : 203쪽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4
아무도 없는 곳에 / 9
아떼 / 33
가면 / 61
팥죽 / 85
개다리소반 / 111
동태 대가리 / 133
길례 언니 / 161
해설 | 인간의 말을 찾아서 · 고영직 / 183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 비는 그쳤다. 물결이 칠 때마다 노파의 옷은 꽃잎처럼 팔랑거렸다. 알록달록한 옷은 피로 물들인 것처럼 붉었다. 여러 날 검던 하늘이 붉은 태양 빛으로 변해 개울물은 주황색 물감 같았다. 개울물은 빛을 받아 흘렀다. 작은 쪽배 같은 슬리퍼 한 짝이 생솔가지에 걸려 있었다. 또 한 짝의 슬리퍼는 진흙 속에 박혀 있었다. 노파의 손엔 찰무리떡과 몰아 쥔 생솔가지가 한 움큼 쥐어 있었지만, 경찰은 자살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진흙에 파묻혀 있던 신발 한 짝을 들어 올렸다. 잠시 후 경찰차와 구급차는 노파를 싣고 멀어져갔다. 한적한 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지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중
비 오는 날,이라는 말에 나는 내 고향 마을이 떠올랐다. 내 고향 마을에는 비가 자주 왔다. 집을 받치고 있는 네 개의 기둥 밑으로 흐르는 물은 황토 빛깔이었다. 전기가 끊어지고 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빗물을 받아 흙물이 가라앉은 물로 씻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진흙물이 맑아졌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남자아이들은 해가 지면 꼴뚜기를 잡아왔다. 부모들은 꼴뚜기로 전통 음식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교육은 먹고사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벤치에 앉아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는 것도 공부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었다. 필리핀에 살 때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책을 주워 읽곤 했다. 지금은 경호 책을 몰래 읽고 있다.
―「아떼」 중
소반 하나 만드는 데도 이렇듯 다양한 연장들이 필요한데 도시는 같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깨끗해지고 편리해진다. 흙길은 콘크리트 회색 도로가 되고 낮은 집들은 벌집처럼 한 기둥 안에 모여 산다. 백오십 년 동안 소반의 역사를 이어온 내 공방 때문에 비만 오면 저지대라 참사가 난다나. 150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았을 리 없는데 나는 물에 쓸려 죽지도, 물에 잠긴 적도 없다. 철거 핑계치고 얼토당토않다. 나는 가슴으로 외친다. 우회하라. 우회하라. 도로를 우회하여 길을 터라.
―「개다리소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