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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30820507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3-05-26
책 소개
목차
흰 보자기
걸똘마니들
16년 후
불평도 자란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
그날
샛문
죽음의 섬
개집
뒤바뀐 쌍둥이 형제
슬픔으로 낳은 생명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제주에는 기생충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들의 횡포를 좀 자세히 듣고 싶군요.”
편안한 분위기를 틈타 이명철이 화제를 바꾸었다. 해미는 물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시작했다.
“지금 제주에는 서북청년단들이 반공이라는 광기로 무장해 내려와 있소. 5월 10일에 있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 활동을 지원하고 군정 실패로 인한 도민들의 불만을 누르기 위해 광기를 부리고 있소. 서북은 경찰의 권력을 등에 업고 죄 없는 민간인들을 끌어다 고문을 하고 빨갱이로 몰아가고 있소. 도민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있소. 서북은…….”
가정이 있는 부녀자와 젊은 처녀들을 노리개로 삼고 있다고 말하려다 말을 삼켰다. 패거리들에게 끌려가던 질레가 생각나서였다.
평화협상이 있은 지 5일째 되던 날 오라리 방화 사건이 터져 협상은 파기되고 말았다. 김익렬과 남수가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해본 결과 경찰과 우익청년단원의 소행임이 명백했지만, 경찰 측이 오라리 방화사건은 무장대 짓이라고 우겼다. 또한, 김익렬의 보고는 전부 거짓이며 공산당과 한패라고까지 모함했다. 김익렬은 분노했다. 선거를 앞둔 미 군정은 사태를 조기 진압하기 위해 잘잘못을 가리지도 않고 사건을 덮어버렸다. 게다가 최고 수뇌 회의를 통해 미국 딘 장군이 강경 진압 토벌 작전으로 방침을 선포해버렸다. 다음 날 김익렬은 해임되고 박진경 중령이 후임에 앉았다. 연대장이 된 박진경은 취임하자마자 무고한 도민까지 희생시켜가며 중산간 마을을 악랄하게 초토화하기 시작했다.
조선은 해방됐어. 우리는 나라를 되찾은 거라고. 난 되찾은 나라를 식민 교육 노예들에게 맡길 수 없어. 지금 섬에는 식민 교육 노예들이 무고한 도민들을 학살하고 있어. 노부유키가 한 말처럼 되고 있다고. 노부유키의 말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말인지 나는 이곳에서 실감하고 있어. 헐뜯고, 음모하고, 누명 씌우고, 죽이고 있다고…….
형! 날 설득하려 하지 마. 형은 언제나 그랬지. 할머니가 우리 때문에, 아니, 나 때문에 경찰서에 감금되어 고문당하고 있을 때도 형은 지금처럼 말했어. 이럴 때일수록 법을 지키자고, 법에 어긋나지 않게 하자고. 형! 법은 희망이 없어. 약자의 편이 아니니까. 죄인을 잡아야 할 경찰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끌어다가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죽이고 있으니까. 형! 비록 나를 버린 고향이지만 내 고향이 피로 물들고 있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어.